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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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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은 기존의 우리가 예술 작품을 받아들이는 고전적인 방식. 그러니까 화가의 그림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해석이나 화가들마다마다 사용되어진 오브젝트들, 선의 방식, 색감, 구성 등에 대해서 학술적인 내용들을 전부 걷어내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 또한 the way of seeing이 아니라 ways of seeing이 되는 것이다.


책이 쉽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많았지만, 재미있게 다가왔다. 정말 우리가 어떤 그림이나 이미지들을 볼 때 상투적인 고정관념에 얽매여 받아들이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주류를 따라가며 받아들이려고 하고, 그것에 대해 오로지 문외한인 개인의 생각은 비주류라 생각하며 의견을 굽히기 일쑤다. 나도 모르게 권위 있는 학자들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고 자주적인 판단력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에 대해서 그렇게 어긋났다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고, 나만의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 주류의 지식을 배워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렇게 나 또한 고정관념을 습득함으로써 정해진 방식으로 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편견은 걷어내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이 책은 기존의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묘사를 한다. 이미지에서의 여성은 벗은 몸을 통해 남성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역할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벗은 몸에 대해서 naked와 nude로 구분을 짓는다. 과거 테이트 누드 전시회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보여지는 누드를 컨셉으로 남성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림들, 그런 불평등한 시선의 역사를 전시해둔 전시였다. naked는 자연적으로 몸이 벌거벗겨진 상태이지만 그 상태에 타인의 시선이 깃들어 간다면 nude가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전시의 대상으로써의 벌거벗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용어로 정의를 하는데, 현대 광고의 대다수가 그런 누드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성적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다. 현실 속 이미지에 대한 불평등한 시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었다.


주관없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작품들을 보면서 자신만의 보는 독창적인 시각을 길러낸다면, 그것처럼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도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까? 

p 10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중세 사람들이 보는 불타는 광경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타는 광경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불에 타서 재만 남고 모든 것이 다 소멸되는 시각적 정경과 불에 덴 고통의 체험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p 39
하지만 이런 변화를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복제 수단은, 이제 대중들도 그런 복제 덕분에 한때 문화적 헤택을 받은 소수들만 누릴 수 있었던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환상을 끊임없이 선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대중은 여전히 무관심하고 회의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p 76
하지만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면 된다.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해도 좋고 직접 그려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

p 171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는 만인의 권리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실제의 사회적 환경은 개인으로 하여금 무력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그는 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상태와 현재 그 자신의 상태와의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모순과 원인을 충분히 깨닫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인 투쟁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의 무력감과 함게 뒤섞여서 백일몽으로 융해되어 버린 선망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야 한다.
왜 광고가 그럴듯해 보이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대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광고가 실제로 제공하는 것과 광고가 약속하는 미래 사이의 간극은,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는 사람 자신이 느끼는 현재의 처지와 그가 되고 싶어하는 처지 사이에 벌어진 간극과 일치한다. 그 간극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실제 행동과 생생한 경험에 의해서 다리가 놓여져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은 매혹적인 백일몽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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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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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이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한 존재로 태어나서 내가 우선인지, 세계가 우선인지 정확히 확답을 내릴 수 없는 공간에, 나와 같은 상황을 생각하고 공유하는 '타인'이라는 존재가 있다. 그 역시 나처럼 불안을 가지고 있고 방대한 세계와 무언가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관계에 대한 정의이다. 이 글을 쓰면서 두개의 원이 겹쳐져 공통된 공간을 형성시킨다는 표현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게 사람들간의 교류를 이어가고 그 관계는 타인 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세계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40가지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채사장은 나와 타인, 세계와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서 정리를 했다. 


채사장의 책은 지대넓얕으로 붐을 일으켰을 때부터 줄곧 읽어왔지만 이리도 감성적이었던 적이 있던가 할 정도로 그의 서정적인 문체가 책의 전체를 사로잡고 있었다. 작은 이야기들을 곁들여가며 관계에 대한 고찰을 심화시키는데, 그것으로부터 세계를 설명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독창적이다. 책 읽기를 거의 대학시절부터 시작했다는데 흔한 삶에서 도출시켜내는 삶의 지혜들이 무척 통찰력이 강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책은 내 삶의 경험을 정리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무척 와닿았다. 나도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면서 어느정도의 뻔한 내용을 한다는 사실이 이제는 익숙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정도로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내가 내 삶에 더욱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면 인문학 서적 뿐만이 아니라 고전문학들을 읽으면서도 더욱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물론 확실히 지금보다 더 경험이 없을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지금에서야 다시 보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들이 많다. 이렇듯 정말 경험은 많이 해야된다라는 사실을 요즘들어 무척 실감하고 있다. 책은 언제까지나 간접경험일 뿐이니까... 그런 직접적인 경험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해서 아쉬워하거나 겁내지 말아야겠다. 가치있는 경험들에 들어가는 비용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흥미로운 답안이다. 고대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철학에 대한 단골 질문이지만 직접적으로 생각한적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도 답변이 달라지겠지. 스스로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겠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생각하고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살다보면 우리의 의식이 우주를 떠돌다가 언젠간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다소 소설같다고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저자의 주관이 무척 짙게 배어난 책이지만 왠지모를 그 부드러운 통찰에 괜시리 동감하며 읽은 기분 좋은 책이다.


p 5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건다면
짐승들도 너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러면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p 21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비단 입시뿐만이 아니다. 전공이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모든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p 36
그래서다. 연애를 한다는 것이 놀라운 까닭은.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얼굴과 맑은 눈동자와 나를 반기는 미소를 보자.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 밤을 보내는 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을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p 43
인생이란 무엇일까? 길고 긴 인생 중간에서 만나는 인연이란 무엇이고, 그 인연이 나의 세계에 남기고 가는 흔적들은 무엇일까?

p 85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국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이 제대로 된 선택으로 시작하지 못할 것임을. 따라서 다른 길과 다른 가능성을 마음에 품은 채 느슨하게 출발해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목표점으로 향하는 중간 어딘가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했었구나. 이제 당신은 그곳에서부터 다시 선택해야 한다. ... 만약 당신이 한눈팔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이곳가지 왔다면, 그래서 당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면, 당신은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에 계속 걸어가야 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자신을 아끼면서 이곳까지 왔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고, 걸어오는 동안 발견한 풍경들을 감상하며 이곳에 도달했다면, 당신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걸을 것인가, 쉴 것인가,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히 걷는 것이다.

p 128
나이가 든다는 건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격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만 고마웠다. 연인의 불안을 나누어 지고 젊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게해준 그녀에게 다만 고맙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무거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무엇이 그리 무겁다고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엄살을 부렸던 것일까.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건, 그런것들은 생각처럼 무겁거나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르는데.

p 139
그래서 ‘이야기‘는 통증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완화된 방식으로 우리가 세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비로소 작은 개인을 거대한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게 한다.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낯선 영화를 보고, 여러 음악을 듣고, 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예민한 감수성으로 보편적 윤리와 은폐된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야기. 그것이 세계의 둘레와 경계까지 나의 감각을 확장하고, 결국 세계의 고통을 내가 감지하게 한다.

p 149
그래서 의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믿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의 크기가 너무나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심리적 위안보다 진실의 이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의심해봐야 한다.

p 161
역할은 명확하다. 사유와 지식을 생산할 수 잇는 권한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있고, 그것을 다만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여야만 하는 소비자로서의 대중이 있다. 이것은 이상하다. 인문학이 우리 모두의 것이고 또한 질문하고 사유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생산자의 역할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p 176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한글이 아니라 선체험이다. 우리는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p 185
퇴근하는 버스 뒷자석에 앉아 어두워진 노량진의 거리를 보고 잇으면 스쳐가는 네온사인과 함께 유리창에 비치는 얼굴을 보게 된다. 더 이상 웃지 않고 즐겁지 않은 그 얼굴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없는 거냐고. 그리고 궁금해졌다. 내가 어른이 될 대가지 왜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일까.

p 241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일 것이라고 믿지만, 세계는 그렇게 보편과 특수로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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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 만화, 가능성을 사유하다
닉 수재니스 지음, 배충효 옮김, 송요한 감수 / 책세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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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갇혀있는 사고 체계를 깨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철학이다 를 컨셉에 잘 맞는 그림으로 설명을 한다.

철학은 우리가 받아들이고 인지하는 시각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준다. 작가는 그런 정해진 시각에서만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을 2차원의 평면적인 선 밖에 볼 수 없는 세계의 플랫랜드인이라고 말한다. 그런 평면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3차원의 공간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근데 사실 이런 것들이 말이야 쉽지. 권태로운 일상에 타협하고 아등바등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네 인생에 갑자기 다가올 수 있을까?. '단조로움'이란 부분에서 묘사하듯 세상은 규격에 맞는 적당한 일꾼들을 요구한다. 스스로가 유별난 인물이 아닌 이상.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모난 사람으로 규정하고 선을 긋는다. 모든 사람마다 각자 마음 속에 모난 부분 한 가지 씩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그 모난 부분을 잘 가다듬고 예리하게 갈고 닦는 이것 아니면 저것에서 어떠한 길을 가야할 진 모르겠지만 가슴 속에 철학을 품고가는 이상. 마음이 쉽게 병들일은 없을 것 같다.


책은 다양한 관점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생각. 시선을 새롭게 재구성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플랫랜드를 벗어나는 언플래트닝을 할 수 있게 된다. 생각보다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제시되지 않지만 그것이 우리의 몫이 아닐까. 규겻없이 자유로이 표현된 그래픽아트 구성 또한 재미있었다.

p 35
새로운 접근 방식은 앞으로 우리가 떠날 여행의 목표와 완전히 부합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발견하고, 수많은 가능성의 문을 열고, 생생하게 깨어 있기 위한 ‘신선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반드시 윤며하자. 이 목표는 날개 달린 샌들이나 말처럼 영웅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p 47
우리의 관점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의 관점도 내 관점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에 접근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그저 ‘보이는 것‘에 만족한다.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수많은 사상가가 필요하다. 현상을 바라보는 각각의 고유한 관점 말이다. 단, 이같은 시각의 다양화는 위계적으로 조직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p 60
언어는 우리를 심원한 이해로 이끄는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그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언어는 또한 덫이 될 수 있다. 언어의 영역을 마치 세상 전부인 양 착각하여 플랫랜드인처럼 우리는 언어가 만들어낸 인위적 한계 너머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그런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 한계를 극복할 수단도 확보하지 못한채로. 사유의 수단이 우리 시야를 규정짓는다.

p 66
우리는 어떤 관점과 언어적 표현방식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방대한 감각 경험을 증류해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추출해내기 위해서다. 언어는 선을 따라 이동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차례로, 미국의 철학자 수잔 랭거가 말했듯 일련의 개별 단어는 ‘묵주 구슬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를 꿴다.‘ 반면 시각은 그 모습을 단번에 드러낸다. 동시에 곳곳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다. 한 장의 그림은 수천마디의 언어만큼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가능하다. 그림과 언어가 지닌 서로 다른 이질적인 특성 때문에 이 둘 사이에는 직접적 연관성은 없다. 위계적이고, 조직적인 시작도 끝도 없는, 서로 연결된.

p 84
인간이 인식하는 근본 개념은 탈육체화된 순수한 이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우리가 존재하고 보는 것에 뿌리를 둔다.
즉, 일상적 지각 활동 및 신체 활동을 통해 우리는 이미지와 유사한 역동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일르 통해 우리는 경험을 체계화하고 이해할 수 있다. ‘행복은 위/ 슬픔은 아래‘ 이런 이미지 구조는 우리의 자각적 의식 기저에서 작동하며 생각과 행동을 형성한다. 구체적 경험은 임지 구조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이로부터 우리는 사고 능력을 신장시키며 보다 추상적인 개념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기존 지식을 토대로 새로운 개념을 이해한다.

친밀함은 가까움이다. 고립은 멀어짐이다. 중요함은 크다. 어려움은 부담이다. 중앙은 안정적이고 벗어남은 불균형이다. 배제와 포용.

p 89
아티스트와 그림은 이렇게 점차 미지의 세계로 함께 진입한다. 우리는 본래 아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이해한다. 다시 말해 유사하지 않는 것들끼리 엮으며 새로운 지식을 구축한다. 이를두고 바버라 스태퍼드는 ‘그럴듯한 인어를 만드는 상상력의 노동‘이라 비유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본래 시각적인 과정이라 주장하는데, 관계 안에서 사물을 보는 행위는 분리된 대상을 연결해 그리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객관적인 고나점이란 없다. 우리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지각을 한다. 고정된 시각은 관계 속 역동적인 관찰을 방해한다. 지각은 불필요한 과정이 아니다. 장식이나 잡생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각은 사유와 불가분의 관계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서로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다. 사유와 관찰을 재통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사유와 그정의에 고나한 개념을 확장한다.

p 98
우리가 제한된 세계를 넘어 새로운 세상과 조우하려면 춤추듯 기민하게 움직이는 우리의 눈은 찰나의 순간을 몇 차례 포착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어떤 대상에 시선이 고정된다. 그런 다음 눈은 다시 다른 흥미로운 대상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고정된 순간을 불연속적으로 포착하는 우리 시선은 마치 수수께끼로 가득찬 불완전한 그림과 같다. 에티엔 팰러프랫과 마이클 콜이 설명했듯 상상력은 시각정보의 빈틈을 메우고 파편화된 장면들을 연결해 안정적인 단일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 이미지는 곧 상상하는 행위이며 우리는 늘 그 행위에 참여한다. 행위자와 행위를 결합시키는 상상력 덕분에 우리는 지각 사이의 끈을 이을 수 있다. 이는 독특한 것에서부터 진부한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개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서로 다른 원천에서 비롯된 개별 정보들을 제 3의 공간에서 하나로 엮는 행위이며, 각각의 주요 특징들이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비상하게끔 하는 정신의 틀이다. 상상력은 우리 존재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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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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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그. 그리고 그런 형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줄곧 지원해주던 테오.

이 책은 그런 고흐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기 까지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테오와의 형제애가 여실이 드러나있다. 생전 별로 인정을 받지도 못하고 유화 작품은 한 작품 밖에 못팔던 고흐를 테오는 계속해서 믿어주었다. 

중간에 고흐는 이런 말을 편지에 남긴다. '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그렇게 고흐는 스스로를 '새장에 갇힌 새'라고, 환경에 묶여 있는 가난한 예술가로 스스로를 묘사했다. 보통 예술가라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변의 반응에 힘을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흐는 그런 결핍된 상황 속에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척 확고했던 것 같다. 어쩌면 테오. 단 한사람만을 위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작품을 믿는게 진정한 아티스트로의 첫걸음일까?  난 아직도 내 작업에 대한 확신이 없고 불안한 고민을 떠 안은채 살아가고 있다. 고민은 끝이 없겠지만 그런 모습 덕분에 자신감 까지 잃어버리게 되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조금 더 내 작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믿어보기로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아티스트로써의 가장 중요한 자세인것 가다. 아무래도 이맘 때 쯤에 이 책을 읽기를 잘한 것 같다.


생애 전체가 가난과 불안의 연속인 것처럼 보였던 그는 사실 인간에 대한 생각이 무척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동생이나 다른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예쑬가로서의 사명감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혹독한 삶 속에서의 고통이 위대한 걸작을 남기게 되는것일까? 어떻게 보면 그 고통스렁누 삶이 잇었기에 그의 예술작품이 진한 여운을 남겨 우리의 마음 속에 와닿는 것이 아닐끼? 마지막 까지 처연한 삶을 살다 간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p 24
새장에 갇힌 새는 봄이 오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실행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게 뭘까? 잘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는 알고 있어서 혼자 중얼거린다.

p 68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p 134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술을 형식의 문제로만 생각한다. 그래서 부적절하고 공허한 용어를 마음대로 지껄인다. 그냥 내버려두자.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는다. 화가의 영혼과 지성이 붓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붓이 그의 영혼과 지성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캔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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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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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대를 존중해주는 특성. 수평성을 전제로 하는 라틴어. 언어는 사고의 틀


라틴어는 모든 유럽어와 영어의 근간이 되어 유럽 언어를 이해하는데 좋은 도움이 되어준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일상적인 라틴어에 익숙해져있기도 하다. 고대 언어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유럽에서는 라틴어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가 배움을 희망했던 건명원이라는 학당에서도 라틴어를 필수 교육코스로 지정해 놓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토록 라틴어에 끌려하고 중요성을 설파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아무래도 대다수의 유럽언어의 근간이 라틴어인 것처럼 그들 삶의, 인문학의 근간이 되어주는 고대 로마인들의 지혜로운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성찰해나아가며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왜 살아가는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유명영화에서 나온 구절처럼 현재를 즐기는 (carpe diem) 삶을 살고 있는지 우리가 성공과 물질에 집착하며 본질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할 수 잇는.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지혜를 . 고대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마의 그런 자세는 라틴어의 한 문장으로써 표현이 되어지고 고상한 격식을 지닌 엉어에서부터 그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책은 라틴어를 학습하기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니지만 언어의 어원인 라틴어를 보며 단어에 담긴 유래라던지, 그것들의의미를 분석하면서 라틴어에 대한 접근성도 더 친숙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 인문학 내용은 수수하고 섬세한 저자의 느낌은 좋지만 여느 인문학 서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책에서 봐왔던 문장들이 고대인들의 지혜와 함께 곁들어져 다가오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고 설득력있었던 것 같다. 


사실 종교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흥미가 없기에 지루함이 있었는데 이렇게 얻은 지식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도우트 데스같은 삶의 자세를 갖추어야겠다. 결국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


si vales bene est, ego valeo

si vales bene, valeo . 당신이 잘 잇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사회에 보기 힘든 아름다운 문장을 적으며 글을 맺는다.


carpe diem 근시안 적인 내일이 아닌,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며 오늘을 살아가기./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


내삶에 조금은 더 충실해질 수 있는.

책 자체의 구성은 흥미롭다면 흥미로울 수 있다. 특히 로마의 역사, 사회의 규율 등 다양한 설명들이 함게 어우러져 있어 방대하다. 그 속에서 제시되는 삶의 지혜는 또 한번 나를 환기시킨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진정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p 45
연장자는 나이 어린 사람을 쉽게 하대합니다. 혹은 나이보다도 계급에 따라 말의 태도가 달라져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언어 사용이 당연히 여겨지는데 이런 언어 태도에 불쾌했던 적이 꽤 있습니다. 아마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에 비해 라틴어는 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내려다보지 않습니다. 수평성을 전제로 하고 잇는 것이죠.

p 47
몇 개 국어를 하는가, 어려운 외국어를 할 줄 아는가가 대단한 게 아닙니다. 외국어로 유창하게 말할 줄 알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유명 인사의 강변보다, 몇 마디 단어로도 솥오할 줄 아는 어린 아이들의 대화 속에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나는 고상한 언어를 구사하고 있을까 하고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언어 속에서 고상함을 발견하고 있나요?

p 147
우리는 그대가 안녕하기를 바라는가?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이웃이 안녕하기를 바라는가?
당신이 잘 있는 것이 바로 나와 또 우리가 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 극심한 이 통증을 누가 멈출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그 해답을 알고도 해결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p 273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때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을 보고 웃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위로와 격려입니다. 희망과 기쁜 일보다 절망과 고통스러운 일이 많을수록 그러한 자기 긍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런 자기 자신에게 웃어주듯이 또 다른 타인에게도 웃어줄 수 잇었으면 하는 바람이자,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절망하고 포기하고 시은 마음을 내일로 미룰 수 있는 힘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웃음을 주는 내가 존재할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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