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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1주년 한정 리커버 특별판) -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임과 동시에 가장 어려운 것이 '관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의 한 존재로 태어나서 내가 우선인지, 세계가 우선인지 정확히 확답을 내릴 수 없는 공간에, 나와 같은 상황을 생각하고 공유하는 '타인'이라는 존재가 있다. 그 역시 나처럼 불안을 가지고 있고 방대한 세계와 무언가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관계에 대한 정의이다. 이 글을 쓰면서 두개의 원이 겹쳐져 공통된 공간을 형성시킨다는 표현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게 사람들간의 교류를 이어가고 그 관계는 타인 뿐만이 아니라 세계와 이어진다. 그리고 그 세계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40가지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채사장은 나와 타인, 세계와의 관계와 의미에 대해서 정리를 했다.
채사장의 책은 지대넓얕으로 붐을 일으켰을 때부터 줄곧 읽어왔지만 이리도 감성적이었던 적이 있던가 할 정도로 그의 서정적인 문체가 책의 전체를 사로잡고 있었다. 작은 이야기들을 곁들여가며 관계에 대한 고찰을 심화시키는데, 그것으로부터 세계를 설명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독창적이다. 책 읽기를 거의 대학시절부터 시작했다는데 흔한 삶에서 도출시켜내는 삶의 지혜들이 무척 통찰력이 강하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책은 내 삶의 경험을 정리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 무척 와닿았다. 나도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으면서 어느정도의 뻔한 내용을 한다는 사실이 이제는 익숙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 그정도로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내가 내 삶에 더욱 충실한 삶을 살게 된다면 인문학 서적 뿐만이 아니라 고전문학들을 읽으면서도 더욱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지 않을까. 물론 확실히 지금보다 더 경험이 없을 시절에 읽었던 책들을 지금에서야 다시 보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것들이 많다. 이렇듯 정말 경험은 많이 해야된다라는 사실을 요즘들어 무척 실감하고 있다. 책은 언제까지나 간접경험일 뿐이니까... 그런 직접적인 경험에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해서 아쉬워하거나 겁내지 말아야겠다. 가치있는 경험들에 들어가는 비용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또한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흥미로운 답안이다. 고대시대부터 지금까지도 철학에 대한 단골 질문이지만 직접적으로 생각한적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도 답변이 달라지겠지. 스스로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겠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생각하고 내면에 충실한 삶을 살다보면 우리의 의식이 우주를 떠돌다가 언젠간 누군가와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다소 소설같다고 느껴질 수 있을 만큼 저자의 주관이 무척 짙게 배어난 책이지만 왠지모를 그 부드러운 통찰에 괜시리 동감하며 읽은 기분 좋은 책이다.
p 5 만약 네가 짐승들에게 말을 건다면 짐승들도 너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러면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다.
p 21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비단 입시뿐만이 아니다. 전공이 되었든, 업무가 되었든, 모든 지식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p 36 그래서다. 연애를 한다는 것이 놀라운 까닭은.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얼굴과 맑은 눈동자와 나를 반기는 미소를 보자.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 밤을 보내는 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을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p 43 인생이란 무엇일까? 길고 긴 인생 중간에서 만나는 인연이란 무엇이고, 그 인연이 나의 세계에 남기고 가는 흔적들은 무엇일까?
p 85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국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이 제대로 된 선택으로 시작하지 못할 것임을. 따라서 다른 길과 다른 가능성을 마음에 품은 채 느슨하게 출발해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목표점으로 향하는 중간 어딘가에서 이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선택했었구나. 이제 당신은 그곳에서부터 다시 선택해야 한다. ... 만약 당신이 한눈팔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이곳가지 왔다면, 그래서 당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면, 당신은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음에 계속 걸어가야 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자신을 아끼면서 이곳까지 왔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고,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고, 걸어오는 동안 발견한 풍경들을 감상하며 이곳에 도달했다면, 당신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걸을 것인가, 쉴 것인가,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인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히 걷는 것이다.
p 128 나이가 든다는 건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격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만 고마웠다. 연인의 불안을 나누어 지고 젊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게해준 그녀에게 다만 고맙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무거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무엇이 그리 무겁다고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엄살을 부렸던 것일까.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건, 그런것들은 생각처럼 무겁거나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르는데.
p 139 그래서 ‘이야기‘는 통증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완화된 방식으로 우리가 세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비로소 작은 개인을 거대한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게 한다.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낯선 영화를 보고, 여러 음악을 듣고, 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예민한 감수성으로 보편적 윤리와 은폐된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야기. 그것이 세계의 둘레와 경계까지 나의 감각을 확장하고, 결국 세계의 고통을 내가 감지하게 한다.
p 149 그래서 의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믿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의 크기가 너무나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심리적 위안보다 진실의 이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의심해봐야 한다.
p 161 역할은 명확하다. 사유와 지식을 생산할 수 잇는 권한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 있고, 그것을 다만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여야만 하는 소비자로서의 대중이 있다. 이것은 이상하다. 인문학이 우리 모두의 것이고 또한 질문하고 사유하고 자신의 세계관을 창조하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생산자의 역할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p 176 독서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한글이 아니라 선체험이다. 우리는 책에서 무언가를 배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p 185 퇴근하는 버스 뒷자석에 앉아 어두워진 노량진의 거리를 보고 잇으면 스쳐가는 네온사인과 함께 유리창에 비치는 얼굴을 보게 된다. 더 이상 웃지 않고 즐겁지 않은 그 얼굴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없는 거냐고. 그리고 궁금해졌다. 내가 어른이 될 대가지 왜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웃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일까.
p 241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일 것이라고 믿지만, 세계는 그렇게 보편과 특수로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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