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교양인을 위한 구조주의 강의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경덕 옮김 / 갈라파고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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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의 핵심 사상가들 4명의 사상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풀어쓴 책. 구조주의의 개념 자체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일본 문화에 맞춰진 비유에 의해 오히려 책의 이해를 제한한 느낌이었다. 구조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알고 싶다면 흥미롭게 읽을만 하나, 4명의 사상가들 전부를 흥미롭게 읽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본인은 언어철학과 기호학에 점철되는 사상에만 관심이 있었으므로 푸코와 라캉의 사유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졌다. 어차피 입문서의 의의는 자신이 흥미로운 분야를 세부적으로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속하기 때문에 이 책의 역할은 개인에게 제 몫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한다.

p 9
입문서가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적 서비스는 ‘대답할 수 없는 물음‘과 ‘일반적인 해답이 없는 물음‘을 제시하고, 그것을 독자들 개개인에게 스스로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천천히 곱씹어보고 음미하게 하는 것입니다.

p 27
세계에 대한 견해는 시점이 바뀌면 달라집니다. 따라서 하나의 관점만을 고집하며 ‘나는 다른 사람보다 바르게 세상을 보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재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

우리는 늘 어떤 시대, 어떤 지역, 어떤 사회집단에 속해 있으며 그 조건이 우리의 견해나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을 기본적으로 결정한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만큼 자유롭거나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자기가 속한 사회집단이 수용한 것만을 선택적으로 ‘보거나, 느끼거나,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애초부터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고, 우리의 감수성과 부딪치거나 우리가 하는 사색의 주제가 될 일도 없다.

우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율적인 주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그 자유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파헤친 것이 구조주의의 성과입니다.

p 33
헤겔이나 마르크스 모두 ‘자기로부터의 괴리 = 조감적 시야‘의 확보는 단순한 관상(홀로 안락의자에 앉아서 깊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노동‘에 몸을 던짐으로써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노동하는 사람만이 ‘나는‘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p 34
‘생산=노동‘에 의한 사회관계에 뛰어들기 전에는 본질이나 특성이 결정된 ‘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나는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는 면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결코 스스로를 직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직관한다‘는 것은 타인들 속으로 뛰어든 ‘나‘를 풍경으로 조망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 내재하는 ‘부모의 사랑‘이나 제자를 갖지 않은 선생에게 내재하는 ‘스승의 위엄‘과 같습니다. 잠재적으로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인간관계에 실재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가‘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p 136
인간이란 이런 존재입니다.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확고한 견해를 가진 인간으로 텍스트를 읽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앞에서 말한 영화의 예에서 보듯이 텍스트 쪽이 우리를 ‘그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주체‘로 형성합니다.

p 155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라는 말은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로서,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는가에 따라 그 인간이 본질적으로 ‘누구인가‘가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근본은 좋은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나쁜 일만 저지르는 인간은 실존주의적으로는 나쁜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p 161
어떤 영역에 대해 개념이나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은 그 집단이 그 영역에 대해 깊고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문명인‘과 ‘미개인‘은 그 관심을 갖는 방법이 다를 뿐, ‘문명인‘처럼 세계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미개인‘은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쪽이든 세계는 사고의 대상, 즉 최소한 다양한 욕구를 채우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p 181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인‘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적 규범을 수용하면서 ‘인간이 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은 분명 푸코와 통하는 ‘탈인간주의‘의 징후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나는 레비스트로스의 탈인간주의가 구조주의에 대한 통속적인 비판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이나 인간성의 아름다움을 부정한 사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웃 사람에 대한 사랑‘ 이나 ‘자기희생‘과 같은 행동이 인간성의 ‘잉여‘가 아니라 인간성의 ‘기원‘임을 간파한 레비스트로스의 통찰을 어떻게 반인간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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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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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인 시선을 통해 들여다 본 마그리트의 그림 해석서.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했기에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된 것일까 하는 질문들을 유발케한다. 저자의 주관이 상당히 짙은 점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분석된 글이 흥미도나 논리적으로도 상당히 잘 쓰여져있다. 보통 대중들을 철학에 대해 친숙하게 접근시키기 위해 학자들은 이런 개인의 사유를 개진해나가며 철학의 접근성을 이끌어온다. 그리고 그 펼쳐진 통찰에 대해 맹신하지 않고 개인이 또 다시 사유하고 회의하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통찰들은 곁가지로 더욱 뻗어나가게 된다.

p 56
나아가서 철학은 자신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전제로 한다. 자신을 대상화하여 성찰하지 않는다면 철학은 무용지물이 된다.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 행위를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 대상으로 놓고 진지하게 고찰하는 태도에서 진정한 철학의 의미가 살아난다. 자신의 인식에 의문을 갖는 사고, 정신이 스스로에게 되돌아가 내적으로 접근하는 반성적 사고 능력이다.

p 124
철학은 인류와 사회 전체에 대한 체계적 관점인 세계관을 포함한다. 개인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상에서 출발하되 사회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살아 숨 쉬는 철학이 가능하다. ... 다양한 방면으로 연관관계를 찾아내고, 각각의 관계가 어느 정도의 긴밀성을 지니는지 가늠하고, 상호적인 작용과 인과적인 작용을 구분하는 작업은 흩어진 구슬을 꿰는 실이다. 스스로 현상에서 실마리를 찾아내어 연결하고 확장하는 경험을 반복해야만 얻어질 수 있는 철학적 사고능력이다.

p 170
인간이 인위적 구분을 통해 만들어낸 중요와 부차, 중심과 주변 사이의 고정된 가치판단에 대한 도발이다. 고정된 범주로 묶어 다른 하나를 다른 하나의 아래에 속하거나 딸린 것으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을 거부한다.

p 180
특히 내적인 정신 현상은 더욱 심하게 일반화, 동일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회 변화로 나타나는, 반복처럼 보이는 유사한 현상에 대해 동일성을 부여한다. 역사 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을 주목한 후에 일반성을 적용하여 역사의 법칙을 도출하기도 한다. 아주 세부적인 개별 현상은 다를지 몰라도 우연적, 부차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몇 가지 요인을 중심으로 법칙에 가까운 필연성을 제시한다.

p 194
이러한 일반화는 개별 철학자의 문제의식을 단순화해버린다. 각 철학의 다양한 흐름과 맥락이 흐려진다. 일반적 틀 안에 가두는 순간 철학은 인간의 정신과 실천에 생명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p 216
욕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억제‘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본능의 일상적인 작용을 증명한다.
무엇보다도 그 억제가 자연스러울 수 있느냐는 점이 문제다. 육체적 본능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상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본성을 구성한다. 타고난 그대로의 본성을 부정하면서 과연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본성을 부정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솔직한 대화가 가능한가? 육체적 본능을 배제한 정신의 자유는 나무의 잎이나 열매가 자신을 가능케 한 뿌리를 부정하는 꼴이다. 그러한 의미에 욕망의 억압은 인간의 억압이다.

p 258
철학의 핵심은 반성적, 성찰적 사고를 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반성적 사고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추악한 모습이 전체주의와 가족주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교육과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상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개인에게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규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 내의 다수 혹은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사회적 강자의 이해가 ‘정상‘이라는 규범의 지위를 차지하면서 강제된다. 정상과 비정상 구분이 사회구성원 통제를 위한 수단 역할을 한다.

p 260
기존 사회적 강자의 관점을 자기도 모르게 따라가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의 고민과 통찰을 통해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찾고자 한다면 강제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넘어서야 한다. 그 너머에서 철학적 사고의 새로운 지평이 비로소 열린다.

p 280
그 결과 일상적 사고와 생활은 진지한 관심과 숙고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토니오 크뢰거>가 던진 문제의식은 철학에 만연해 있던 편견에 균열을 낸다. 문학만이 아니라 철학에서도 국외자 취급을 받던 일상의 영역에 빛을 비춘다. 살아가면서 부대끼는 삶의 현장에서, 땀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일상적,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비켜설 때 철학은 생기를 잃는다. 창백한 대리석 조각처럼 생명 없는 인공물의 하나로 전락하거나 소수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역할에 머문다. 토마스 만이 강조한 시민의 양심은 철학에도 절실한 과제다.

p 286
예술의 핵심은 창조과정이고 무의식은 바로 여기에 개입한다. 예술의 고유함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관계에서 성취된다. 예술가의 특성이 내면에 속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적 해석을 필수적으로 요구받는다.
... 기본적으로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무의식 안에 있는 소망과 갈등의 표출이다. 예술은 소망을 좌절시키는 현실과 소망을 충족시키는 환상 사이의 중간지대를 구성한다.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내면의 충동을 예술이나 문화로 전환해서 충족한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자기 승화에 이르며, 작품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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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수업 -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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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생각하는 것. 생각하지 않는 것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들숨과 날숨의 단순한 운동을 반복하는 유기물 덩어리일뿐. 익숙함에 갇히지 않고 생각을 통해 시대에 머무른다. 두 존재가 머무르는 세계 속에 시대는 꾸준히 진보한다. 인간과 함께.

p 77
세상을 창의적으로 해석해서 이해하는 일, 기성의 질서에 단순히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주체로서 살아가는 일, 바로 이것이 예술의 근본성질입니다.

p 135
사람의 정신력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발현됩니다. 즐겁고 행복한 상태에서는 특별히 정신력을 발휘할 일이 없으니까요. 더군다나 실없이 웃음을 흘리며 시시덕거리면서 고결한 정신력을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슬픔을 알지 못하면 경박해지기 쉬운 게 인간이니까요.

p 181
우리는 그림에서 화가의 시선을 봅니다. 거기에 그려진 사물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대상을 바라본 화가의 시선을 보게 되는 것이죠. ... 특히 예술가의 새로운 시선을 느끼고 나서 다시 그 대상을 보면 없는 줄 알았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p 188
대상을 새롭게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이해해서 구성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대상이 새로운 시선으로 파악되어 이전과는 다른 대상으로 거듭나는 것이 창조입니다. ... 따라서 미술작품은 단순히 무엇을 가리키거나 전달하는 텍스트는 아닙니다. ...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것이 예술작품이니까요. 예술은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무엇인 것입니다.

p 230
발화 자체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말은 탄생하는 순간 자신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교감을 위해 기능합니다. 이것을 원초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원초언어를 잊고 2차 언어에만 집착한다면 역동적인 창의성을 상실한 채 판에 박힌 세계에 갇히는 꼴이 되기 쉽습니다.

p 296
예술작품에서는 내용이 차차 분명해져도 의미가 확실해지지 않습니다. 일반 텍스트와 달리 또 하나의 메커니즘이 작동해서 의미가 오히려 모호해져갑니다. 처음에는 의미가 거의 없이 작았지만, 작품 마지막에 가면 그 의미가 아주 커져서 자기 삶과 세상을 자꾸 돌아보게 만듭니다.
오픈엔딩은 의미가 모호해지고 커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결론이 뚜렷하게 나면 내용은 분명해지지만, 더 이상 생각할 거리는 사라집니다. 그때는 의미 생산이 중단됩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작품은 오랫동안, 때로는 평생토록 계속 의미를 생산하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것이죠.

p 330
예술은 현실로 스며듭니다. 로스코의 그림이 그러듯 작품의 각 요소들이 각기 팽창하고 흡수하면서 서로 배어들더니 마침내 우리 현실로 스며듭니다.
로스코는 예술이 체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체험이라고 말했지요. 예술은 보고 느낀 바를 반영하는 게 아니라 보고 느끼는 것 그 자체라는 거죠. 어디 먼 곳에서 벌어진 낯선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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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라다 - 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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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


진보 철학자의 맞춤형 시대처방전. 그의 통찰은 결국 철학자의 상상력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런 철학적인 시선이기 때문에 명확한 인과 속에서 낙관을 주장한다. 그 낙관은 비록 천리안적일지라도 여느 진보인이 그렇듯, 이상적인 방향성의 설계를 통해 여린 가치관들을 독려할 것이다. 그런 시대를 지지하고 흔들리는 청년의 입장으로서 같은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주 속시원하다.

p 8
그러나 누가 고문대 위에서 철학을 할 수 있겠는가? ... 그래도 생각하면, 그 시대의 희생과 용기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화염병도 최루탄도 날리지 않는 광장에서 평화로이 촛불을 들고 두려움없이 우리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지난 시대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시대가 후세에 남긴 값을 따질 수 없이 소중한 유산이다.

p 13
지상의 삶에서 온전한 선이 실현 불가능한 이데아라고 해서 우리가 선을 포기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선에 대한 의무를 면제받는 것도 아니듯이, 순수한 주권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어떤 나라가 군사 주권을 남의 나라에 양도하고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까지 이른다면, 이런 국가란 온전한 선의 실현 불가능성을 핑계로 선하게 사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한 개인처럼 멸시의 대상이 될 뿐인 것이다.

p 15
아무튼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진실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의 위계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자율적인 판단에 입각해서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주체가 아니라, 고작해야 본능의 주체 또는 탐욕과 허영의 주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p 98
제가 아는 한 이렇게 착한 사람들 세상에 없어요. 그렇게 대책 없이 착하니까, 밟는 거예요. "어, 이것들 봐라. 이렇게 밟아도 가만히 있네." 그러면서 밟는 거지요. 아주 끝까지, 잔인하게. 재미로 밟아요.

p 125
자유는 남이 허락해주는 권리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형성해야 하는 능력과 스스로 결단해야 할 의지의 문제예요.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능력과 의지의 총체로서, 일시적인 감상이나 충동이 아니라 자유인의 에토스, 자유인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는 지속적이고도 구건한 성격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본질적 근거입니다.

p 130
사람들이 돈과 권력의 결핍, 곧 힘의 결핍은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뜻의 결핍에 대해서는 아무런 아쉬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요. ... 그래서 어딜가나 호연지기는 없고 사사로운 이익에만 밝은 비루한 속물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숲속의 나무가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야 아름드리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깊은 뜻을 마음속에 품을 때 큰일을 할 수 있는 법인데,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동안 돈과 권력 말고는 다른 어떤 가치도 모르는 사회가 되어버려 정신의 크기나 깊이를 보여주는 사람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워졌어요. 하나같이 잇속을 계산하면서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 뿐이잖아요.

p 146
이를테면 직장에서 내가 아무 소리 하지 않아도 상급자가 알아서 예의 바르고 친절하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실은 유아적 태도입니다. 사회적 관계, 특히 권력관계에서 불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력 관계에서 갑의 위치가 아니라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갑질이라는 게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을들이 너무 고분고분하기 때문입니다. ... 어차피 갑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횡포는 을의 저항에 의해서만 제어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백날 뒤에서 갑을 비난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지요.

p 149
양심은 혼자 일으키지 못한다고. 선의 서로주체성이지요. 선도 악도 고립된 홀로주체의 일이 아니고 모두 만남 속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일이에요. 우리의 일상에서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그 사람이 알아서 혼자 저항하고 싸우라고 방관한다면, 결국 그 부당한 악이 나에게 미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남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곤경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동료를 위해 공공연히 말해야 합니다. ... 그런 의미의 의리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확산될 때가 되었다 생각해요.

p 160
니체가 그랬지요. ‘착한 사람은 종말의 시작‘이라고.
... 착하지 않아야 할 때 착하다면, 그건 치명적인 악의 근원이 됩니다. ... 다시 말해 원칙 없는 선량함으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지요. ... 그러나 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 사람을 적당히 용서하는 것은 더욱더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서도 루소를 인용할 수 잇겠는데, 그가 그랬죠. 악인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 때문에 고통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잔인한 일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권력을 손에 쥐고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너무 관대했어요.
... 선과 악을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 이성으로 판단해야 되는데, 우리는 대개 악을 단순히 감정의 차원에서 미워하는 데 머물렀어요.

p 227
그들이 내뱉었던 말들은 사명도 이념도 아니었던 거지요. 그냥 감정적인 반응일 뿐이었어요. 앞서도 말했듯이 감정이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인 까닭에, 외부 자극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만큼 유지되는 것일 뿐이에요. 상황이 바뀌면 감정도 바뀌지요. 그들의 언어는 이성적 생각이 아니라 감정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던 까닭에 상황이 바뀌니까 딴소리하는 거지요. 그게 한국적 변절의 진상이에요.

p 232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내가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거나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오만입니다. ... 그들의 고통을 내가 다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고통이 뭔지 모르는 자의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가져야 할 첫번째 태도는 겸손입니다. 타인의 고통은 결코 나의 이해력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절대적인 타자성입니다. 그 타자성 속에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고유성이나 독자성이 존립하는 거지요.

p 241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용기도 없고 희생도 하지 않는 가부장들이 지배만 하고 향유만 하려 하니가 문제인 거예요 ... 그러다보니 남자들은 비겁한데 도리어 여자들만 용감한 사회가 되었죠. ... 그런데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이런 종류의 용기가 보편적으로 숭상되어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p 245
그때 같은 팀의 구성원들이 그걸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태도가 올바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계적 법칙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다음과 같이 서로 물어볼 수는 있겠죠. "이렇게 역할분담을 하면 우리가 김 대리 사랑하는 거 맞지?" 판단력의 준칙이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파스칼이 말했듯이 가슴은 머리가 알지 못하는 법칙을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이 ‘사회적 사랑‘ 이라는 가슴의 법칙이 비단 여성과 남성 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개성적 차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만남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p 277
재벌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를 말할 때 자주 정부의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자기들이 자유로운 창업과 기업활동을 치명적으로 방해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지요. ...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로는 재벌을 해체해서 시장의 독점이나 진입 장벽을 없애고, 이를 통해 중소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자율성과 참여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기계의 한 부품이 아니라 기업 활동과 생산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지요. 경제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로 대접할 때만 경제 자체가 살아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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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4대 마약을 끊어라
유종일.권태호 지음 / 페이퍼로드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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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방식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획일적인 정답만을 좇는 사회에서 창의성을 요구한다. 실패의 경험을 격려는 하지만 정작 기회는 실패한 적이 없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비교해가며 끝도 없이 불행해진다. 그 불행의 종착점은 기어코 불신에 다다른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안정 두 가치의 대립 속에서 선택의 당위성을 정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엮여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물질도 행복도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기로에서 타자의 삶을 영위하는 우리가 무엇을 취해나가야 할지는 명확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물질화 되어버린 서로의 가치들을 무위로 돌려놓는 일이다. 그 속에서 존중이 피어나고 신뢰가 피어난다. 신뢰가 곁에 찾아오는 순간 세상의 거짓들은 부끄러움 속으로 그 자취를 감추려 할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국가란 체제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오늘을 살아간다.

p 7 - 어느 19세 청년의 자유발언
"여러분,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제가 직면한 가정과 학교와 노동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저는 행복한 가정에서 살 수 잇고 치열한 경쟁이 아닌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하고 기계가 아닌 사람답게 노동을 할 수 있습니까? ... 내 안의 박근혜를 발견하고 내 옆의 최순실에 분노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돈이나 자신의 소유물로 보지 않고, 사람을 돈과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함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사람답게 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들의 인격적 평등과 자유를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기 이한 노력들이 곧 촛불혁명이다.

p 24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직이 - 알베르 까뮈

p 42
시장을 공정하게 만들어야 경제가 발전하는 거에요. 강자의 횡포를 막고, 약자에 대한 착취, 불공정 행위를 못하게 하고, 그렇게 해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시장경제가 발달하도록 규제를 해야 합니다. ... 그래서 가급적 불평등을 축소하고 삶의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 재분배와 복지 시스템, 이런 것들을 정부가 하게 됩니다.

p 52
정부가 공공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이 열심히 일하면, 나한테 돌아오는 게 있다는 인식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p 62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보다 높을 때는 기존에 이미 갖고 있는 부에서 만들어내는 소득, 즉 이자, 배당, 임대료 등의 자본소득보다 일해서 벌어들인 소득, 즉 노동소득이 더 빠르게 늘어나게 됩니다. 과거에 축적된 부에 비해 현재 노력을 통해 성공할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거죠.

p 67
적폐청산의 진정한 경제적 효과는 경제를 밑에서부터 좀먹어 무너뜨릴 수 있는 권력형 부패의 싹을 현 단계에서 잘라내는 것,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는 것이고, 이거야말로 미래의 경제적 번영을 위한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는 일입니다.

p 71
가장 기본적인 건 ‘내가 내 할 바를 하고, 지킬 바를 지키면 상대방도 그럴 것이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항상 따지고 경계하고 감시하고 해야하거든요. 비용이 많이 들고 협력이 어려워지죠.
그래서 신뢰도가 높은 나라와 신뢰도가 낮은 나라는 경제효율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뢰자본‘ 혹은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도 써요.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게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p 77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짓말에 관대하다는 게, 국민성이 그래서는 절대 아닙니다. 하도 익숙해져서 그런 거에요. 거짓말해도 대충 넘어가는 정치문화와 사회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버린 거죠. ... 미국에서는 거짓말이 탄로나면 큰 대가를 치러야 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정직을 강조한 교육을 하죠.
우리는 반대죠.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정직한 놈만 손해라는 걸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p 80
그러나 일일이 규제로써 그 문제를 풀려하지 말고, 대부분 사람들이 신뢰 속에서 움직이면 훨씬 더 효율적이 되는 거죠. ... 신뢰가 높은면 사람 살기가 편하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친절함과 선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p 124
합의제 민주주의의 기초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자연스럽게 다당제가 형성되고, 어느 누구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대화와 타협에 의한 정치를 하게 되는, 이런 것이 합의제 민주주의입니다.

p 158
우리나라가 자본과잉이라고 할 때는 단순히 인구 대비 자본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정도에 비해서 사람의 능력이 충분히 늘어나지 못했다, 혁신이 충분히 일어나지 못했다, 이런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기술과 인적자본이 뒤떨어진다는 것입니다.

p 170
내수시장이 작다면 활성화할 생각을 해야지, 외면하고 수출에만 매진한다? 한국은 이제 세계시장에서 큰 플레이어가 돼서 계속 내수를 무시하고 수출을 늘려나갈 방법이 없어요. 수출 우선 주의, 고환율 정책으로 계속 수출 늘려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그건 근시안적인, 마약과 같은 처방입니다.

p 180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모두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만 외칠 뿐, 변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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