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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라다 - 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
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17년 5월
평점 :
세월호 세대를 위한 정치철학.
진보 철학자의 맞춤형 시대처방전. 그의 통찰은 결국 철학자의 상상력이라는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런 철학적인 시선이기 때문에 명확한 인과 속에서 낙관을 주장한다. 그 낙관은 비록 천리안적일지라도 여느 진보인이 그렇듯, 이상적인 방향성의 설계를 통해 여린 가치관들을 독려할 것이다. 그런 시대를 지지하고 흔들리는 청년의 입장으로서 같은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것이 아주 속시원하다.
p 8 그러나 누가 고문대 위에서 철학을 할 수 있겠는가? ... 그래도 생각하면, 그 시대의 희생과 용기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화염병도 최루탄도 날리지 않는 광장에서 평화로이 촛불을 들고 두려움없이 우리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지난 시대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시대가 후세에 남긴 값을 따질 수 없이 소중한 유산이다.
p 13 지상의 삶에서 온전한 선이 실현 불가능한 이데아라고 해서 우리가 선을 포기하고 사는 것도 아니고 선에 대한 의무를 면제받는 것도 아니듯이, 순수한 주권의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어떤 나라가 군사 주권을 남의 나라에 양도하고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까지 이른다면, 이런 국가란 온전한 선의 실현 불가능성을 핑계로 선하게 사는 것을 처음부터 포기한 개인처럼 멸시의 대상이 될 뿐인 것이다.
p 15 아무튼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 진실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의 위계 속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자율적인 판단에 입각해서 공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책임을 지는 주체가 아니라, 고작해야 본능의 주체 또는 탐욕과 허영의 주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p 98 제가 아는 한 이렇게 착한 사람들 세상에 없어요. 그렇게 대책 없이 착하니까, 밟는 거예요. "어, 이것들 봐라. 이렇게 밟아도 가만히 있네." 그러면서 밟는 거지요. 아주 끝까지, 잔인하게. 재미로 밟아요.
p 125 자유는 남이 허락해주는 권리가 아니고, 자기 스스로 형성해야 하는 능력과 스스로 결단해야 할 의지의 문제예요.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능력과 의지의 총체로서, 일시적인 감상이나 충동이 아니라 자유인의 에토스, 자유인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는 지속적이고도 구건한 성격이야말로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본질적 근거입니다.
p 130 사람들이 돈과 권력의 결핍, 곧 힘의 결핍은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뜻의 결핍에 대해서는 아무런 아쉬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요. ... 그래서 어딜가나 호연지기는 없고 사사로운 이익에만 밝은 비루한 속물들의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숲속의 나무가 땅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려야 아름드리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깊은 뜻을 마음속에 품을 때 큰일을 할 수 있는 법인데,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동안 돈과 권력 말고는 다른 어떤 가치도 모르는 사회가 되어버려 정신의 크기나 깊이를 보여주는 사람을 찾는 게 너무 어려워졌어요. 하나같이 잇속을 계산하면서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 뿐이잖아요.
p 146 이를테면 직장에서 내가 아무 소리 하지 않아도 상급자가 알아서 예의 바르고 친절하기를 바라기만 하는 것은 실은 유아적 태도입니다. 사회적 관계, 특히 권력관계에서 불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력 관계에서 갑의 위치가 아니라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갑질이라는 게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을들이 너무 고분고분하기 때문입니다. ... 어차피 갑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횡포는 을의 저항에 의해서만 제어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백날 뒤에서 갑을 비난해도 소용없다는 뜻이지요.
p 149 양심은 혼자 일으키지 못한다고. 선의 서로주체성이지요. 선도 악도 고립된 홀로주체의 일이 아니고 모두 만남 속에서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일이에요. 우리의 일상에서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그 사람이 알아서 혼자 저항하고 싸우라고 방관한다면, 결국 그 부당한 악이 나에게 미치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남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 곤경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동료를 위해 공공연히 말해야 합니다. ... 그런 의미의 의리가 이제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확산될 때가 되었다 생각해요.
p 160 니체가 그랬지요. ‘착한 사람은 종말의 시작‘이라고. ... 착하지 않아야 할 때 착하다면, 그건 치명적인 악의 근원이 됩니다. ... 다시 말해 원칙 없는 선량함으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지요. ... 그러나 공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 사람을 적당히 용서하는 것은 더욱더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서도 루소를 인용할 수 잇겠는데, 그가 그랬죠. 악인에게 동정심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 때문에 고통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잔인한 일이라고. 그런데 우리는 권력을 손에 쥐고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너무 관대했어요. ... 선과 악을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보편적 이성으로 판단해야 되는데, 우리는 대개 악을 단순히 감정의 차원에서 미워하는 데 머물렀어요.
p 227 그들이 내뱉었던 말들은 사명도 이념도 아니었던 거지요. 그냥 감정적인 반응일 뿐이었어요. 앞서도 말했듯이 감정이란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인 까닭에, 외부 자극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만큼 유지되는 것일 뿐이에요. 상황이 바뀌면 감정도 바뀌지요. 그들의 언어는 이성적 생각이 아니라 감정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던 까닭에 상황이 바뀌니까 딴소리하는 거지요. 그게 한국적 변절의 진상이에요.
p 232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내가 완전히 공감할 수 있다거나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오만입니다. ... 그들의 고통을 내가 다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고통이 뭔지 모르는 자의 허튼소리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타인의 고통 앞에서 가져야 할 첫번째 태도는 겸손입니다. 타인의 고통은 결코 나의 이해력의 범위 안으로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절대적인 타자성입니다. 그 타자성 속에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고유성이나 독자성이 존립하는 거지요.
p 241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용기도 없고 희생도 하지 않는 가부장들이 지배만 하고 향유만 하려 하니가 문제인 거예요 ... 그러다보니 남자들은 비겁한데 도리어 여자들만 용감한 사회가 되었죠. ... 그런데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그렇게 용기 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이런 종류의 용기가 보편적으로 숭상되어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거예요.
p 245 그때 같은 팀의 구성원들이 그걸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태도가 올바르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계적 법칙을 제시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다음과 같이 서로 물어볼 수는 있겠죠. "이렇게 역할분담을 하면 우리가 김 대리 사랑하는 거 맞지?" 판단력의 준칙이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의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파스칼이 말했듯이 가슴은 머리가 알지 못하는 법칙을 가지고 있거든요. 저는 이 ‘사회적 사랑‘ 이라는 가슴의 법칙이 비단 여성과 남성 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개성적 차이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만남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p 277 재벌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를 말할 때 자주 정부의 규제 때문에 기업하기 힘들다고 말하지만, 자기들이 자유로운 창업과 기업활동을 치명적으로 방해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는 않지요. ...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로는 재벌을 해체해서 시장의 독점이나 진입 장벽을 없애고, 이를 통해 중소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자들에게 자율성과 참여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그들이 기계의 한 부품이 아니라 기업 활동과 생산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지요. 경제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인간을 자유로운 주체로 대접할 때만 경제 자체가 살아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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