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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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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징창, 좌충우돌, 오합지졸, 중구난방, 뒤죽박죽,,,

제목이 네자이기에 또 다른 네자로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좀 더 그럴싸한 한문투의 말을 찾고 싶었으나 내 머리의 한계였다. 그가 이런 내 얘길 듣는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라고 중얼거리면서 당장 냉장고에 처넣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냉장고에 안 들어갈 것이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그는 AM이고 나는 FM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가 FM이고 내가 AM인가. 어쨌든 난 지금 군인이다.

 얼핏보면 그의 '갑을고시원 체류기' 를 10편으로 늘려 놓은 듯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책은 '코리안 스텐더즈' 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는 심한 반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책장을 펴자마자 '아, 하세요 펠리컨' 라고 들이대는 그는 조금 비호감이다.

 첫장에 '마이클 잭슨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책을 바친다고 하는 것을 보면 '대왕 오징어의 기습' 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려는 그가 분명하다. 마이클과 요한도 지구를 위해 인생을 바친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그를 두사람과 동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카스테라' 를 좋아하며 '야쿠르트 아줌마' 가 주는 야쿠르트를 수줍게 받아먹는 청년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자신의 직장상사가 강요한 성추행을 당하지만 고작 하는 말이, 힘겹게 내뱉은 말이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라는 것에 자신은 매우 놀란다. 나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잠재 능력을 발견한 그는 결심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한 전사의 모습을 하고서... 그 모습은 레게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잠자리눈처럼 생긴 고글을 착용한 뒤, 이외수 같은 수염을 기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멋진 운송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한국애완동물협회' 에 연락했더니 1:1 맞춤상담을 거쳐 그에게 알맞은 애완동물이 지급되었다. 그것은 개복치였다.

 '몰라몰라, 개복치라니'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만의 애완동물이 생긴 것에 대해 그는 매우 기뻤다. 그리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헤드락' 을 거는 여행을 떠난다. 커다란 개복치를 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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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의 단편들이다. 작년에 그를 딱 한번 만난 이후로 두번째 만남이었는데, 그는 여전히 개복치를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머리는 20cm정도 더 자라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직도 당신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기린을 찾아다닙니까?"

 그는 퉁명스럽지만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기린입니다."

 당신이 내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든지 상관없다. 나도 그를 따라 이미 '코리안 스텐더즈' 를 거부한지 오래니깐.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다면 '야쿠르트 아줌마' 에게 1:1 맞춤상담을 신청해라. 그럼 이만.

 [차례]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아, 하세요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코리언 스텐더즈
대왕오징어의 기습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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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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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그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놨다. '현실과 픽션, 진담과 농담을 뛰어넘는다! 성석제 소설만의 유쾌한 감동' 이라고 씌여진 노란색 책 날개를 챔피온 벨트처럼 두르고 등장했다.

 성석제의 팬이기에 어쩔 수 없이 책장을 넘겼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향기는 잘 익은 김치처럼 묵어 있었다. 그가 다루는 인간들의 그림자는 영화나 TV속의 그것들이 아닌, 우리들 가로등에 비춰지는 그것들이었다. 보통 사람들 속에서 우리들이 알고 있지만 언급하기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 그는 그들을 그려가며, 모종의 그리움을 숨긴 채 되풀이되는 대답없는 질문을 우리에게 혹은 허공에다 날린다. 그 질문에 대답을 찾고자 하면 그의 소설은 오래 씹어야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쌀밥이 되나, 못본 척 지나치게 된다면 배를 채우기 위해 찬물에 말아 목구멍에 넘기는 찬밥이 되고 만다.

 시간일까. 나이일까. 객기 넘치던 그의 문체는 이책에서만큼은 얌전하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추풍감별곡'은 그가 늘 관심을 갖는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잘 드러난 것 같아 반가웠다.

 '소풍, 본래면목, 잃어버린 인간' 에서는 그의 시선이 예전과 조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냉정한 관찰자로서 활발한 이야기꾼으로서의 그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 모습이 앞으로 그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금 엿보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에서 일부분 인용하며 마친다.

 '나는 정상보다는 정상 바로 아래쪽 구할쯤 되는 곳을 목표로 마음과 몸에 알맞고 흡족할 때까지 가는 쪽인데...'

  정상이 아니라 그 아래 구할쯤만 되어도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강타자도 사할을 넘기기 어렵지 않은가. 한권의 책에서 한줄만 건져도 본전은 뽑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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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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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이수영)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달 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다
나는 서른아홉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 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 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 잠이 쉽게 드는 것은 속상한 일이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하는 시간이 내일을 위한 최선의 준비이기 때문이다. 조금씩 쉽게, 그리고 빠르게 잠든다. 나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이 이젠 떠올리기 너무 어렵다. 아직 스무 두살이기에, 조금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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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 2 -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일곱 도시 일곱 색깔 러브스토리 그 남자 그 여자 2
이미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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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과 닮은 이를 찾는 남자들의 어리석음.

다음사랑이 지금보다 나을 거라 기대하는 여자들의 무모함.

'그남자 그여자2'를 훑어 보다가 눈에 걸린 이 두줄. 딱 두줄로 사랑을 찾는 남녀들을 혼내고 있었다.

옛사랑과 닮은 이를 찾는 남자라... 내가 그런 것 같아 신경이 쓰인걸까. 여자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잠시 어리석음과 무모함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사랑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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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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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함께 이 저녁

(허수경)

 가지에 깃드는 이 저녁

고요한 색시 같은 잎새는 바람이 몸이 됩니다

살금살금, 바람이 짚어내는 저 잎맥도

시간을 견뎌내느라 한 잎새에 여러 그늘은 만드는데

그러나 여러 그늘이 다시 한 잎새 되어

저녁의 그물 위로 순하게 몸을 주네요

나무 아래 멈춰서서 바라보면 어느새 제 속의 그대는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요

한 사람이 한 사랑을 스칠 때

한 사랑이 또,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진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될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그러나 그럴 연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견디어 내면서 둘 사이의 고요로만 수수로울 수는 없는 것을, 한 떨림으로 한 세월 버티어 내고 버티어 낸 한 세월이 무장무장 큰 떨림으로 저녁을 부려놓고 갈 때 멀리 집 잃은 개의 짖는 소리조차 마음의 집 뒤란에 머위 잎을 자라게 하거늘

나 또한

애처로운 저 개를 데리고 한 때의 저녁 속으로 당신을 남겨두고 그대,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 그때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슬금 산책이 오래 아프게 할 저녁

 ; 또 다시 슬금슬금 저녁이 찾아온다. 하루를 마치고 밥을 먹는 것도 저녁이겠지만 추억을 안주삼아 술 한잔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저녁이리라. 두뺨을 불그스레 물들이는 노을을 핑계삼아 아련한 첫사랑도 떠올려 보고, 길어진 내 그림자에 자신을 뒤돌아 보기도 한다. 만약 비라도 온다면 일부러 우산을 잃어버려 마음껏 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술집은 네온사인을 오늘도 반짝거린다. 더이상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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