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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한 호흡으로 책을 읽었다.
물 속에서 숨을 참고 있다가 마침내 숨을 푸하고 내뱉는 심정이다. 소설이 문학 교육의 중심 축을 이루는 것은 소설이 삶의 총체성을 반영한다는 이유라고 배웠는데, 이제서야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기사를 읽는 것인지 인터넷을 읽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재벌사회의 이면들이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고발적인 내용을 현란한 필치로 써내려가며, 이전의 대하소설 등에서 보여준 생생한 입말과 빠른 장면 전환, 세태와 풍속에 대한 풍부한 재현들은 헉하고 숨을 계속 참게 만든다. 아니 폭로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어눌한 말로 누군가에게 어른스럽게 이야기하기보다 이 책을 한권 선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을 거칠게 여기에다가 옮겨둔다. 책을 읽은 순서대로며, 있는 그대로 옮기지 않고 자의적으로 요약해서 올린다.
---로비대상자들과 그룹의 수십만 사원들의 학연ㆍ지연ㆍ혈연이 연결되는 사람을 찾아낸다. 컴퓨터로 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많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쓰는 건설업의 특성상 노동자의 수를 부풀려 비자금을 만드는 것은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이다. 공기 단축까지 한다면 그 기간동의 인건비와 부풀린 인건비는 고스란히 비자금이 된다. 자재 값을 부풀려 비자금을 형성한다. 외제로 구입하여 세무서의 눈길을 피한다. 이렇기 때문에 재벌 기업들이 건설 회사들을 애첩 끼듯이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 쪽 후원을 포기하는 건 언론계 관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후원금을 주게 되면 대학생들의 기업에 대한 인기투표는 올라가게 된다. 효과적인 지원은 캠퍼스마다 건물을 지어주는 것이다. 땅값은 필요없고 우리 건설사를 투입해서하면 효과적인 결과가 나온다. 물론 이름은 그룹이나 회장의 이름을 따서 붙이게 한다. 벽돌의 효과는 3백년이 넘게 간다.
---모든 기업인들은 ‘노조’, ‘분배’, ‘사회 환원’이라는 말에는 치를 떤다.
---충고란 그동안 있어 왔던 우정에 대한 배신 ---경제 재판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스러운 문구,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이 컸고,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국민경제에 더 이상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명문이 당당하고 뻔뻔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더욱 잘살기를 바라고, 그래서 ‘기업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꿈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관대한 법적 조처에 대해서 별다른 불만이나 저항감 없이 그저 묵묵히 묵인하고 침구하며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건 순전히 기업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그러는 거지요.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기들이 더욱 잘살기를 바라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전부 제각각의 교활한 이기주의와 약은 기회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거지요. 그 이기주의와 기회주의를 완전히 뿌리 뽑고 깨끗하게 도려내지 않는 한 대중들은 시민단체 간부들의 선동에 따라나설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성욕이나 식욕의 본능을 그 누구의 힘으로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듯이 끝없이 잘살고자 하는 재물욕도 도려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재물욕이 생생히 살아 있는 한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세력에게 충성스럽게 자발적 복종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네 자신만을 위한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에 사로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과 법조계, 우리 기업과 언론 사이의 메커니즘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국민경제를 위하여...’ 하는 판결문이나 기사들을 정말 자기들을 위하는 것이라 믿을 뿐 아니라, 그 단순한 생각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반복됨으로써 집단 최면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 두 가지 효과가 합쳐져 세상 사람들은 우리 기업에게 배신을 모르는 자발적 복종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