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한 악기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젖은 알몸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詩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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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4 0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2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밤에 최승자 시와 허수경 시를 읽으니 정말 한 잔이 하고 싶네요. 사진 속의 신발 제가 좋아하는 스탈~~!! 에고..자러 갑니다.=3=3

2005-09-24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9-24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5-09-24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굿모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