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먼 길

  어린 시절 텅 빈 마루에서 홀로 잠이 들면
  호랑이 한 마리 산에서 내려와 나를 물고 갔다 한다
  고요한 한낮 지나 서서히 해가 저물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면
  호랭이한테 물려갔다 돌아온 게지
  식구들은 웃으며 말하곤 했다
 
  내가 잠이 든 다음
  살그머니 수풀을 헤치고 내려온 호랑이 한 마리
  시내를 건너고 신작로를 가로지르고
  비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살짝 열린 대문을 지나
  햇살 눈부신 저편 마루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저윽이 바라본 것일까
 
  뜨거운 호랑이 아가리에 물린 채
  몇 개의 산과 들을 뛰어넘는 동안에도
  나의 깊은 잠은 끝없고
  오직 지나가는 바람만이 귓가에 윙윙거릴 뿐
 
  제 집 동굴에서도 여전히 잠만 자는 나를
  호랑이는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혀로 핥아도 보았다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다시 돌려주기로 한 것일까
 
  호랑이 입에 물려
  집으로 오는 동안
  화르르 져내리는 꽃잎 속에 아슴아슴 먼 길이 떠오르고
  마악 대문을 열고 마실 나서는 어머니가
  에그머니나 놀라 외치는 소리에 옛다 내던지고
  호랑이는 다시 먼 산으로 가버린 것일까
 
  지금도 잠이 들면
  나를 데려가기 위해 다가오는 호랑이의 나직한
  발소리가 들린다 내 귓가를 맴도는 더운 숨결 내 몸에 와 닿는
  타는 눈빛 내 잠 속에서 한껏 아가리를 벌리고
  단숨에 나를 삼켜버리는
  저 호랑이

  詩 : 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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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9 0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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