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먼 길
어린 시절 텅 빈 마루에서 홀로 잠이 들면
호랑이 한 마리 산에서 내려와 나를 물고 갔다 한다
고요한 한낮 지나 서서히 해가 저물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리면
호랭이한테 물려갔다 돌아온 게지
식구들은 웃으며 말하곤 했다
내가 잠이 든 다음
살그머니 수풀을 헤치고 내려온 호랑이 한 마리
시내를 건너고 신작로를 가로지르고
비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살짝 열린 대문을 지나
햇살 눈부신 저편 마루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나를
저윽이 바라본 것일까
뜨거운 호랑이 아가리에 물린 채
몇 개의 산과 들을 뛰어넘는 동안에도
나의 깊은 잠은 끝없고
오직 지나가는 바람만이 귓가에 윙윙거릴 뿐
제 집 동굴에서도 여전히 잠만 자는 나를
호랑이는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혀로 핥아도 보았다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다시 돌려주기로 한 것일까
호랑이 입에 물려
집으로 오는 동안
화르르 져내리는 꽃잎 속에 아슴아슴 먼 길이 떠오르고
마악 대문을 열고 마실 나서는 어머니가
에그머니나 놀라 외치는 소리에 옛다 내던지고
호랑이는 다시 먼 산으로 가버린 것일까
지금도 잠이 들면
나를 데려가기 위해 다가오는 호랑이의 나직한
발소리가 들린다 내 귓가를 맴도는 더운 숨결 내 몸에 와 닿는
타는 눈빛 내 잠 속에서 한껏 아가리를 벌리고
단숨에 나를 삼켜버리는
저 호랑이
詩 : 남진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