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la at the cirque fernando - edgar degas, paris 1879

페르난도 서커스단과 관계없고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과는 더욱 관계없는 이 이야기는 사실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를테면 그 한 장의 그림은 교훈도 없고 판타지도 없는 이 가난한 이야기의 모티프인 셈이다. 그것은 내 책상 바로 앞 창문에 붙어 있는 그림이다. 오렌지빛의 색채감이 강렬한 그 그림은 구도가 특이하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에는 줄을 입에 물고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젊은 여자가 그려져 있다. 여자는 두 팔을 앞뒤로 벌려 가까스로 몸의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인상파 화가인 드가는 여자들을 즐겨 그렸는데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무용수이거나 매춘부였다. 그러나 그 그림들의 주인공은 무용수나 매춘부가 아니라 그들의 방심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선'이었다. 화가의 시선은 냉혹했고 그림들의 모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줄을 입에 물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의 모습은 그것을 올려다 보는 시선의 존재로 인해 더욱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 그림을 표구집에서 우연히 접했을 때 나는 타인들의 고압적인 시선에 갇힌 한 여자의 운명을 보았다. 그 여자는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채.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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