枯木


한 번도 걸은 적 없지만
그는 모든 삶을 경험했다
축축한 어둠을 덮으며
길들은 그의 내부로 밀려왔다
그는 낱낱이 기억한다
세상의 뿌리마다
잊혀진 죽음들이 달라붙어 있다

얼마나 많은 길을 숨기고 있는지
스쳐가는 새들은 모르리
사나운 바람이 몰려가고
갈라진 살갗이 낯선 신음을 흘릴 때
내부에서 울리는
둥글고 단단한 소리들
상처만이 마음에 길을 만든다

그는 낱낱이 기억한다
추억은 어둠 속에서 선명해진다
비워낸 자리마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쌓여가고
그때마다 새들은 둥지를 허문다
한 번도 걸은 적 없지만
그는 모든 길들을 품고 있다

詩 : 고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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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1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고창환씨가 이성복 강연회에 와서 이성복 시를 읽어주는 걸 봤는데요. 머리에 기름 바른 정장 입은 게 야릇한 기분이...
첫시집에서 너무 모범적인 시를 쓰는 분이라는 인상이 강해요...

플레져 2004-11-13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 고창환 시인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워낙 시인에 대해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모범적인 시 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