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나는 내가 다 늙어서 이제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왔었다. 무엇을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 왔었다. 나는 현재가 감옥이라고 생각했었고, 미래도 닫혀진, 출구 없는 감옥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는 시간이 감옥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것은 내가 무의식적, 집단적으로 프로그램화된, 그렇게 보도록 짜여진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역사, 전통, 계급, 통념, 상식, 권력, 학교가 그렇게 보도록 프로그램화시킨, 그리하여 내 세포들의 유전자와 내 감수성과 내 사고력에 내가 일생토록 그렇게 보고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프로그램화시킨 것에 충실히 순응했기 때문에 (라기 보다는 내가 거기에 과잉반응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이제 나는 그 프로그램을 벗어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나는 더이상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내게 강요되었던 가치관의 정체를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리고 그런 가치관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보지 않을 때, 내가 현재를, 미래를, 시간을 더이상 감옥으로 보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가능성의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최승자, 어떤 나무들은 266쪽~ 267쪽>


A Cloudy Day - Dawson, Montague

 

 

 

 

 

 

 

 

 

 

 

 

 

 

 

 

 

 

 

 

흐린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말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이 책은 판다님의 선물이다. 역시 책 선물은 단 하나의 기능만 하지 않아서 좋다. 그 사람의 성공을 빌고 싶으면 책을 선물하라고 했다지 않은가... 판다님 고마워요. 오늘, 명절 휴유증, 명절의 혼돈속에서 빠져나와 조금은 내 일상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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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2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오와에 다녀오셔서 굉장히 생기 있으셨죠.
저는 자유로운 영혼의 외국 친구들 만나서 그렇게 좋아라하는 시인을 보면서
약간의 배반감을 느꼈었고요. 묘한......

플레져 2004-09-2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처음과 끝의 느낌이 달라요. ㅎㅎㅎ

2004-09-30 0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왠지 불행한 모습으로 있어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때문이 아닐었을 까요//저도 학교 다닐 때 최승자 시집 끼고 다녔는데..와,,아직이 시 쓰시는 구나...그런 근거없는 생각을 했지요..쿄쿄.

2004-09-30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아니네요..정말 배반감 느껴지는 순간! ㅎㅎ

아영엄마 2004-09-3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명절 휴우증 잘 극복하셨나요? 저는 이번에 온전한 하루를 휴일로 삼아서인지 많이 편하네요. 한 며칠 서재를 떠나 있어서인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한 며칠 돌아다니면 또 익숙해지려니 싶습니다. (그래도 서재마실을 조금 줄일려구요..) 편안한 일상으로의 복귀가 잘 이루어지시길 바래요~

panda78 2004-09-30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ㅂ^ 다행입니다. 명절 후유증 극복에 큰 보탬이 되었다니..
저는 최승자 씨를 별로 안 좋아하지만(이 책 속에 나오는 모습들, 생각들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참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고,
플레져님은 좋아하실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보내드린 건데 이리 유용하게 쓰이다니요. ^ㅡ^ 기쁩니다.

플레져 2004-09-3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승자시집은 나이가 들수록 더 좋으네요. 참나님, 배반감 쬐금만 느끼세요...^^
아영엄마님~ 다시 또, 하루종일 골골해요. 바보가 된 것 같아요. 어흑...ㅠㅠ
판다판다~~ 그대의 선택은 탁월하였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