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stella.K > 2004 동인문학상 제7차 심사독회

“가장 앞서간 소설… 나도 이런걸 쓰고싶다”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 서하진
2004 동인문학상 제7차 심사독회가 지난 2일 열렸는데, 시작부터 7인 심사위원들은 심윤경 장편 ‘달의 제단’(문이당)으로 뜨거운 논쟁이 붙었다. 근년 들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저는 ‘달의 제단’을 흥미있게 봤습니다.”(이문열) “작가가 몇 살입니까?”(김주영) “등단한 지 삼사 년 됐지요, 아마….”(김화영) “서울 출신이라고 돼 있던데, 혹시 안동 출신 아녜요?”(이문열) “서울 출신 맞아요. 순전히 취재해서 쓴 게지요.”(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위원은 이 작품이 안동 지역의 종가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걸출해서 작가를 서울 출신이라고 써놓은 것이 안 믿어질 정도라는 뜻이었고, 김주영 김화영 두 위원이 즉각 답변을 한 셈이다.

“작품 속의 서간문들은 작가가 지은 것 맞지요?”(박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안동 김씨에 대한 작가의 태도가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이문열) “큰일 낼 사람입니다.”(김주영) “그렇게 생각해요. 한문 답신 너무 좋잖아요. 절묘했어요.”(박완서) “작가의 태도가 이래야 합니다. 추억을 갖고 쓰지 말고 취재를 해서 써야지요.”(김주영)

“소설의 결말을 읽을 때는 소름이 쫙 끼칠 정도였어요.”(박완서) “옛날 문자를 아는 힘이 굉장했죠?”(유종호)

“서사 구조가 약간 무리더군요. 끝에서 불이 나는 장면 같은 경우죠.”(이문열) “나는 그 부분이 시원하던데….”(박완서) “그로테스크하고 읽기에는 재미 있지요.”(유종호) “소설을 이렇게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김화영) “베낀 게 아니고 만든 문장들이 보물급이에요. 그러나 따져보면 소설 구조로는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도 느껴지고, 끝장면 방화는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떠올리게 하지요.”(이청준)


▲ 심윤경
심사위원들은 심윤경 때문에 약간 흥분하고 있었다. 한동안 말들이 진중하게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부딪쳤다. 극찬으로 치닫다 냉정으로 되돌아오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저는 참 앞서 가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적 문화가 얼마나 허구 덩어리인가를 파헤친 작품인데, 페미니즘 티를 하나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고 있거든요. 가히 획기적인 발굴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가장 진부한 방법으로 가장 앞서 가는 소설을 쓴 것이지요. 나도 언젠가는 이런 식의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요.”(박완서) “남자 주인공이 충분히 형상화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경험의 총화인데,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던 탓인가 합니다.”(유종호)

“이 소설에서 제일 중요한 두 인물이 할아버지와 뚱뚱한 여자입니다. 그 중간에 끼어든 게 주인공 남자인 ‘나’이지요. 충분한 형상화를 기대하지 않아도 좋은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이 소설은 단일민족 이데올로기가 허구일 수 있다는 것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기객관화의 능력을 상실케 하는 허구성을 실감나는 종가 족보와 관련시켜 그로테스크하게 파헤친 것이지요.”(김화영)

“그러나 종가에 대한 파악도 과장된 측면이 있고 소재주의적 경향도 있습니다.”(이문열) “구성적으로 조금 미숙하지요?”(정과리) “더구나 30세 여성작가라는데…. 막 낳은 딸을 밟았다는 것은 또 뭡니까?”(이문열) “아, 할아버지가 밟았지요. 엎어 놓는 경우도 많았잖아요. 외아들이기 때문에 어디서 수양아들도 데려올 데가 없으니까 어떻게든 자기 집에서 낳은 것처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박완서) “10촌 너머까지도 양자를 할 수 있으니 할아버지가 굳이 손녀를 밟아 죽일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죠.”(이문열) “남자가 모르는 여성 잔혹사가 많아요. 남자들은 그걸 인정해야 해요.”(박완서)

결국 심사위원들은 ‘달의 제단’, 그리고 서하진의 창작집 ‘비밀’(문학과지성사)을 새 후보로 올렸다. ‘비밀’은 “안정감과 현실감을 함께 갖췄다”(유종호), “서술·구성·문장 세 가지가 일치돼 있고 대상을 보는 시야가 넓다”(김화영)는 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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