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있다.
신혼 살림을 시작할 때 전세 대란이었던 터라 마음에 드는 집을 선택할 자유는 없었다.
마침 나온 집이 있었고, 재빨리 계약. 그리고 이곳에서 어영부영 6년차 주부가 되었다.


서울에서 서울로 이사하는 거라면 기분이 이렇지만은 않을 터.
내 집 마련이라는 것으로 위안을 해야 할까.


태어나고 자라고 가정을 꾸민 이곳을 떠난다.
이 문장 만으로도 충분히 감성 모드가 되지만,
조금은 홀가분하다. 무엇보다 '변화' 라는 것에 기대가 크다.
나는 너.무.오.랫.동.안. 이 동네에 살았다.


이사할 동네에서 가까운 도서관들을 알아보았고
월요일 휴관일 때 들를 도서관도 알아보았다.
운전면허를 딸 계획이고, 내 집 꾸미기 컨셉도 정했다.


  김영하 <이사>
  애면글면 아둥바둥 맞벌이 하며 내 집을 장만하여 이사를 앞둔 젊은 부부.
  이삿짐 센터의 일꾼과 가야토기를 둘러싼 묘한 이야기.
  이사, 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이 소설이 떠오른다.
 
 

 

혼수로 장만한 물건들, 가전과 가구등은 모두 처분하고 
책과 옷가지와 식기류등등만 갖고 대전으로 떠난다. 
입주는 내년 1월. 서너달은 근처 시댁에서 머물기로 했다.
아버님, 어머님,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김경욱 <선인장>
 역시 젊은 부부가 새로운 보금자리, 아파트로 이사한다. 
 처음에 그들은 그 아파트에 열광하여 전세 기간이 끝나면 아예 사버리자고 
 할 정도로 그 집에 홀딱 반한다.
 키우던 선인장이 몇 개째 죽어버리고,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다.
 어느날 남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는데...

 

이사에 관련된 김영하, 김경욱의 소설은 참으로 기묘하다.
희망찬 인물들의 마음과 달리 상황은 그 반대.
어쩜 좋아. 나는 문득 일등으로 입주하고 싶었던 마음을 거둬들인다.


 정이현 <어두워지기 전에>
 어느날 윗집 아이가 살해당한다. 
 여자는 위층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떨고 
 이러저러한 정황으로 여자는, 남편을 의심하게 되는데...  
 

 

 


 아래층, 위층. 이라는 지시어는 아파트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나는 위층 여자에게는 아래층 여자이며
 아래층 여자에게는 위층 여자다. 
 나의 아래층 여자는 부부싸움을 할 때 대성통곡하며
 나의 위층 여자는 한밤중에 빨래를 즐기며 식탁 의자를 질질 끌고 무언가를 옮긴다.
 안녕, 나의 아래층 위층 여자들이여.


  
 조해진 <기념 사진> 
 여자와 남자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의 조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엘리베이터, 는 섬뜩한 일상의 공포체험장. 
한밤중 긴 머리 여자와 동승하게 된다면, 
등뒤에서 취객이 비틀비틀 거린다면, 
무심코 들여다본 거울을 보고 놀란다면, 그게 나라면!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이사한다. 
단독주택의 꿈, 전원주택의 꿈은 꿈으로만 남게 될까.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그동네는 으스스하다.
 전원주택이 밀집한, 그곳.
 담장마다 울타리마다 행복과 파스텔톤 무지개가 아른거려야 할 그곳의
 아침은 독촉장으로 시작한다. 
  
 

 

타국에서 집을 한 채 사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는 종종 남편에게 해외출장이 아닌 '해외발령' 이 나길 기대했었다. 
자연과 동물과 여유가 어우러진 그곳이 해외에는 있을 것 같았다. 언감생심.

 김윤영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 
 토론토에 주택을 마련한 젊은 부부. 
 '그이는 이 집으로 처음 이사 온 날, 바로 옆집의 커다란 삼나무를 오르내리며
 놀고 있는 청설모와 다람쥐들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카메라를 찾았다.' 
 소설 속 그이는 그곳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내게 되고
 여자는 이상한 알약을 변기통에 버린다.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따스한 기운이 넘치는, 그런 집을 꿈꾼다.
멋도 모른채 시작했던 신혼 살림.
밖에 있으면 불안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행복했었다.
남편과 나는 주말이면 외출하기 보다는 집에 머무르는 것을 즐겼다. 
잠깐 마트에서 장을 보고 들어올 때, 여행에서 돌아올 때, 우리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외치곤 했다.

'아, 역시 우리 집이 제일 좋아'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한강을 건너올 때마다 아파트 병풍을 보면 가슴이 턱, 막힌다. 
 산책길에도 아파트가 있다.
 재미나게 읽었지만 좀 씁쓸했다. 
 좁고 인구 밀도가 높아도 아파트, 가 대안은 아니었는데...

 



데이트의 끝이 늘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것이어서 아쉬웠던 연애시절을 마감하고
둘이 함께, 늘, 같이 있도록 해 준 이 집에서 나는 떠난다. (왜이렇게 감상적인겐가...ㅎ) 
내가 바라던 일을 시작한 곳이 이곳이었으니.
책상이 놓여있던 자리, 가 그리울 것 같다. 

이사올 젊은 부부가 이 집을 보자마자 단번에 반한 것은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들에게도 기쁜 일이 가득하도록. 

2007년의 가을은 대전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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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3 07: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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