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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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6일 1판 1쇄를 발행했는데 2달이 채 안되는 날에 11쇄를 찍은 이책을 받아보고 그녀의 명성을 실감했다.

<7년의 밤>을 읽고 난 후라 그 기대감은 더할 수 밖에 없었다.

의학 재난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알래스카 아이디타로드 개썰매 경주대회의 최초로 참가한 한국인 머셔(개썰매꾼) 서재형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화이트아웃에 갇힌 서재형은 그만 늑대무리의 공격으로 썰매개들을 모두 잃고

한국 화양으로 돌아와 유기견들을 돌보는 드림랜드의 수의사로 살아간다.

그러던 중 화양에서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의심되는 괴질이 발생한다.

1월 24일 오후 응급실로 후송된 후 사망한 윤모씨를 시작으로 '빨간눈' 괴질이 시작.

2월 13일 목요일 눈 발생 3주째, 화양 봉쇄 2주째.

2월 19일 새벽 4시. 시청에서 군인들이 철수.

2월 20일 0시 화양시민의 결의문 채택, 서울로 가는 평화행진 시작.

이 '28일' 동안 화양에서 벌어진 재난을, 그 현장의 아비규환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오영제인 박남철을 통해 교정되지 못한 박동해가 있었고,

그런 박동해가 아버지의 개인 쿠키와 그의 새주인 서재형을 향해 복수의 날을 세우고,

굶주린 개들에게 희생된 김기준의 아내, 아내와 딸을 잃고 개에게 복수를 꿈꾸는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짧은 기간동안 봉쇄되고 내몰린 화양시민들의 폭동과 인간들의 삶을 향한 추악한 행위들이 드러난다.

이런류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나는 자연스레 <나는 전설이다>를 떠올리게 되고,

거기에서 파생된 많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그중 <28일후>가 떠오르는 건 아무래도 같은 28일을 나타내서 일 것이다.

28일 정도 지나야 자연의 역습의 결과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일까 ?!

내 딸 마리를 잘 부탁드려요
문설주 앞엔 마리의 것으로 보이는 케이지가 놓여있었다.
마리의 목줄을 풀어버리고 싶었다.
'마리, 네 집으로 가'라고 소리 질러 내쫓고 싶었다.
아니, 사실은 구급차를 몰아 멀어지는 차를 쫓아가고 싶었다.
앞을 막고 차를 세워서 마리를 돌려주고 싶었다.
이 개는 당신의 '마리야'. 마리라는 이름을 붙여준 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그게 무슨 뜻인줄 알아?
책임진다는 거야. 편의에 따라 관계를 파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야.
 

재난영화와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가볍게 여기는 생명의 이야기가 있다.

피투성이가 돼서 구덩이로 떨어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선 굴삭기가 구덩이를 덮기 시작했다.
개들은 떨어져 내리는 흙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울부짖었다.

얼마전 그림책을 통해서도 '구제역'의 이야기에 어쩔 줄 몰랐었는데 ...

이 책에서도 반려동물인 개를 통해 '구제역'과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그만 기사만 쫓다가 진실을 알게되고 어쩔줄 몰라하는 김윤주가 되었다가 진실을 회피하고 싶은 강은주가 되어버렸다.

자연과 모든 생명체의 상생은 길은 과연 무엇일까?

그녀는 움켜쥔 손을 슬그머니 등 뒤로 숨겼다.
목이 답답해왔다.
하고 싶은 말이 목젖 밑에서 신물처럼 솟구쳤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가 쉬차를 버리지 않았다면 쉬차가 그를 버렸을 터였다.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인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기만이 가능하니까.

인간과 동물사이에서 차라리 인간없는 곳에 살고싶다는 서재형을 보며 안타까워한 것은 나만은 아니였다.

스타와 쿠키가 보둠어 주었던 그 자리에 김윤주가 있어 마음이 놓였다.

링고는 그의개가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그는 링고를 거두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꼈다.
녀석이 걱정스럽고, 녀석이 두려웠다.
수술 자리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제 아무리 자생력 강한 몸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복수를 감행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한없이 두려웠다.

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인간이 없는 세상이였다.

사랑하는 이가 있기 전과 후는 다를 터인데 과연 그는 그곳에서 행복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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