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질량은 속도를 뛰어넘지 못합니다. 빛의세계로 나아갈 수 없는 질량을 가진 존재라서, 우리는 내 삶, 내 기억, 내 것에 집착합니다. 내게 기억은 식물의 마디나 나이테 혹은옹이와 같습니다. 시공의 인연 따라 잠시 한 점에 머물렀을 내 삶 이 끝나면, 나는 그 마디를 짚고 나이테를 세어보고 옹이를 더듬으며 차가운 우주 속을 유영할 것입니다. 존재의 하찮음과 존재의 영원함을 동시에 체득하며 살아가는 동안 나는 하잘것없는 순간의 기억들에 나를 의존하였습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 삶은 반복되었고 내 꿈은 계속되었다. 시간의 영속성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뉴턴의 이상처럼 우주는 신이 잘 감아둔 태엽이 매끄럽게 돌아가듯이 조화로이 움직이지 않는다. 사물도 인간도 십세 속에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존재가 낱낱이 흩어진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나는 어쩌면 껍데기일 뿐이다. 혹은, 이 세계에서 감당하기 버겁도록 겹쳐진 중첩물일지도모른다.

 나는 이처럼 한없이 나약하고 치졸한인간이다. 경계를 벗지 못하고 경계에 구속당하는 인간이다.

내 안식, 내 평안, 내 영원.
바라밀다. 바라밀다, 바라밀다.
나는 기꺼이 고해를 헤치고 헤쳐 너만을 향하리라.
결코 멈추지 않으리라.

이 땅에서 누군가의 완벽한 희생을 밟고 서서, 누군가에대한 핏빛 염원을 외면하고 오로지 나의 원에만 집중하는 이기심 이 부끄러웠다. 

"장현도 원장, 비극과 안타까운 일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절대적 슬픔과 상대적 슬픔이 아닐까요."
"절대적 슬픔이라."

한 알의 티끌이 우주이고,
우주가 곧 티끌이다.

무량한 겁이 곧 일념이고 일념이 곧 무량겁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이 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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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시작되는 새벽을 견뎌야만 하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구나. 바닥 깊이 묻었던 외로움과 설명 못할 슬픔의 딱딱한 덩어리가 연화되는 느낌이었다.

"별은 왜 저만큼의 간격을 유지하는 걸까. 우주가 처음 생성될때 무엇이 우주를 그토록 광대하게 펼쳐놓았을까. 우주의 공간은 무엇으로 차 있는 걸까."

"네가 나의 무덤이 된다면, 나는 그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텐데."

"열일곱은 아픈 나이죠. 몸은 컸고 마음은 매일 바뀌고, 그런데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그대로예요. 그래서 많이 다치는 나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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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이 어떤 담보다 높이 자란다. 우울한 공사장에서는 누구나 타인을 의심한다. 저 사람이 시멘트 포대의 가벼운 귀퉁이를 드는 건 아닌지, 제 몸을 사리며 남만 부려먹는 건 아닌지. 너나없이 고함에 굴욕을느끼고, 시멘트에 속고, 공사장에 기만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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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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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떠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 상처를 말하는 일이 더 큰 고통과 상처로 이어졌던 경험 때문에 힘든 것인데, 그걸 상처를 얘기하는 것이 당사자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이라고 오판한다. 반복하자면 아팠던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게 고통스러운 것은 그얘기가 외면당하고 공감받지 못해서다.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타이밍‘이란 말이 사람들 마음에 꽂혔다. 우리 마음에는 응급처럼보이지 않는 응급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적인 공감은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는 심리적인 CPR이 된다.

아니다. 잘 모르고 깊이 생각 안 해서 그런 거다. 그런 게 계몽자의게으른 자세다. 교육의 거죽을 쓰고 있지만 폭력이다. 아직도 많은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것 중 으뜸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이런 관성적인 도덕 강박은 사람 마음에 대한 깊고 입체적인 이해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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