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경제 - 복잡계 과학이 다시 만드는 경제학의 미래
마크 뷰캐넌 지음, 이효석.정형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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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경제 <평형이라는 환상>

 

내일의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일의 경제의 저자는 시장의 평형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단순히 합리적인 기대에 빌어 시장이 평형상태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학이 이끌려가던 시대는 끝났다. 과거의 시장의 규모는 협소했다. 과거의 시장은 우리가 지구촌이라고 불리는 시장의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이다. 기술은 발전했고, 지구 전역은 인공위성 통신망으로 인해 당장 연락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과학은 진보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 규모의 시장에서, 더 이상 합리적 기대에 의한 추측은 통하지 않는다.

 

저자는 예측에 대한 예로 기상예보에 대해서 설명한다. 과거에 기상예보는 데이터 수집으로 단순히 추측하기만 했다. 1903년 5월 1일의 날씨가, 1902년 5월 1일의 날씨와 비슷했다면, 1902년 5월 2일의 날씨와 1903년의 5월 2일의 날씨가 비슷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과연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그럴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투자에 있어서 불확실성과 유동성은 큰 위험요소이다. 당장, 어느 순간에 투자한 주식을 매도하느냐에 있어서,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반면에,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단순한 추측은 경제학에 있어서, 큰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기상예측은 변하였다. 기상센터에서 현재의 기상 데이터를 수집하여, 대기상태에 대해서 분석하고, 철저하게 과학적인 방식으로 예보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현재를 움직이는 인과적 요인에 대한 진짜 이해가 필요하다. 이처럼, 경제학에서도 역학적인 안목과, 철저한 분석으로 내일의 경제에 대하여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에 대해서 말한다. 양의 되먹임이란 일상적인 사건이 또 다른 사건 위에 생긴 다음, 그 위에 또 다른 사건이 생겨서 예사롭던 회색 하늘이 난폭하고 잊지 못할 회오리가 되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이 상상하기 힘든 결과가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양의 되먹임은 복잡계 과학에서 물리학적 안목이 경제학에서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핵심 이론이다. 가격의 균형이 맞다가 갑작스럽게 가격이 폭락하거나, 폭등하는 플래쉬 크래쉬 현상은, 더 이상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몇 분 사이에 벌어지다가 다시 원래의 가격을 찾는다거나하는 이 현상은 왜 일어나는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효율적 시장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큰 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주식시장에서 사람이 직접 매입이나 매도하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고 말한다. 모든 매도와 매입은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며, 회사의 장기적인 안목을 보고 투자보다는, 거의 차익거래를 위해 순간을 노려 이익을 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제 투자에 있어서도 사람이 아닌 기계로 운영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효율적인 시장 이론자들은 플래쉬 크래쉬 현상을 주목할 만한 예외 현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외라고 하기에는 타격이 크며, 그 규모가 커지게 되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국제적인 경제타격을 줄 것이다.

 

플래쉬 크래쉬같은 블랙스완현상(과거의 경험으로는 아무리 분석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혹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플래쉬 크래쉬의 현상의 원인으로는 초단타 매매로 꼽고 있다. 초단타 매매는 초고속으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약 몇 밀리초 사이에 많은 양의 주식을 팔아 갑작스러운 플래쉬 크래쉬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시장의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예측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시장의 형태에 대해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예를 든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누군가가 상자를 열고 관측했을 때에만 분명히 고양이가 산지 죽은 지 알 수 있다.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가 산 동시에 죽은 독특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장규모에 있어서 저자는 합리적인 기대를 깨길 원한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우리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닌 호모 사피엔스적인 선택을 할 때가 있다. 인간이 매번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내쉬 평형에 대해 설명한다. 게임이론이라고도 알려진 내쉬 평형은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각자는 가장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면, 누구도 일방적으로 행동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결과를 향상시킬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답을 알고 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틀린 답을 말하게 되면, 집단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틀린 답을 고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지오웰의 소설「1984」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결과적으로 현재를 움직이는 인과적 요인에 대한 완벽한 이해만이, 현 시장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맞게 과거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내일의 경제를 완벽하게 예측해낼 수 있지 않을까?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77023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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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의 전갈 K-픽션 5
최민우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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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의 전갈

 

비밀요원의 치열한 삶은 다룬 단편소설, 이베리아의 전갈은 코드네임 블랙의 시점에 맞춰서 전개된다. 블랙은, 배신한 동료인 옐로를 쫓는다. 옐로는 블랙의 상사이며, 전임 지부장과의 마찰로 인해 조직을 떠났다. 옐로는 더러운 술수를 쓰며, 조직의 부패를 언론에 터트린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조직과 거래를 한 옐로는 방향을 돌리고, 전 정권의 비리를 담은 책을 출간해서, 전 정권을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로 결정한다.

 

블랙은, 정부의 지시를 받고, 옐로를 정부에 넘기기 위해 찾아간다. 블랙은 어차피 옐로가 정부의 손에 의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살려둔 채로 적당히 비유를 맞추어 옐로를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신념을 짓밟는 옐로의 말을 들었을 때, 블랙은 결국 옐로를 죽이고 만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암울하다.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으며, 막대한 정보에 비해, 정확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국가정보원인 블랙조차도, 언론에서 보도되는 어떠한 정보도 정확한 사실인지 모르며, 쿠데타군과 정부군은 계속되는 교전이 벌어질 뿐이다. 사유와 통찰로 만들어 낸 양질의 정보보다는 허섭스레기 같은 정보만이 교환되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베리아의 전갈의 세계관은 조지오웰의「1984」의 세계관보다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신세계」의 세계관과 비슷하다. 완전히 통제되지 않으며, 대량의 정보가 존재하는 사회이고, 개인의 개성이 사라진 곳이다. 멋진 신세계가 표현한 깊게 사유하고 통찰하는 문학이 멸종된 사회는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SNS를 통한 허섭스레기 같은 정보만이 생산되고, 양질의 정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자랑질을 통한 쾌락추구만이 목적인 소통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멋진 신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쾌락과 안정의 추구를 보여주는데, 소마라는 향정신성 물질로 통해, 불안은 제거되며, 소마의 존재 유무가 불안의 존재 유무를 결정짓는다. 이러한 소마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여기고 사람들은 소마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손 안에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안에 떤다. 한시도 손에 놓지 않고 쥐고 있다. 자신에게 연락이 오지도 않았는데, 행여나 올까봐 항시 소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소마도 아직 불안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데, 그 물질이 없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소마의 소지 유무자체가 어이없게도 불안을 결정짓게 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 투쟁으로 이끌어낸, 정의의 실현은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좌빨이다, 선동이다 뭐다 하면서,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매도한다. 물론 선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조건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도 신입요원인 브라운은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정부에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다. 물론 국가정보원 소속의 요원이지만,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한명씩 정의의 실현을 위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사회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도 독재정권 당시에 사람들의 권리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사회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힘겹게 얻어낸 권리를 감사함 없이 누리는 사람들은 소설에서 나오는 옐로와 같다고 생각한다.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해주기는커녕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비열하게 살지는 말자. 이미 우리는 어렸을 때 본, 이솝우화에 나오는 박쥐의 비참한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p32

정보 통제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었다. 쿠데타군과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는 루머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되었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리도 있었고 민간인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계엄 상황에서 '일시적 전산상의 오류'가 일어나 인터넷이 차단됐기 때문이었다.

 

p40

세상의 관심이 줄어들수록 정보는 늘어났다. 쿠데타정부는 비상위원회를 설치한 뒤 구태와 부패의 청산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 혁명적 개혁을 통해 내부의 적을 축출하고 외부의 위협에 맞서 민주적 체재를 유지하겠다는 로드맵을 공표했다.

 

p68

복면을 써도, 소총을 어깨에 메도, 브라운은 똑같았다. 말투에는 그 동안의 고층을 짐작케 하는 무게가 실려 있었지만 손은 계속해서 복면의 실밥을 잡아뜯고 있었고 말에는 조리가 없었으며 카메라와는 끝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형님이라 불러도 되죠?

"배신자들. 거지새끼들." 옐로가 말했다. 이미 술기운이 꽤 올라 의자 등받이에 몸을 느슨하게 기대고 있었고 들지 않은 팔은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살려둬서는 안되지. 저런 새끼들은 싹 쓸어버려야 돼."

"가족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블랙은 겨우 입을 열었다.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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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렐렘
나더쉬 피테르 지음, 김보국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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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렐렘의 독특한 문단 구성 방식>

 

<세렐렘> 허구인가, 실제인가?


주인공인 ‘나’는 연인 에바에게 이별을 고하러 찾아간다. 연인의 집에서 마리화나도 피우고, 사랑도 나누고 일련의 행위들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실제가 아닌 허구였다. 그리고 자신이 찾아온 12시 30분이라는 시간 속에서 단 1분의 시간도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인공 ‘나’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연인 에바의 존재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시간의 영원성에서 갇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주인공은 모든 행위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허구인지 가려내려는 것이다.

 

분명 주인공은 의식 속에서 모든 행위에 대해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마리화나를 펴서일까? 마리화나가 보여준 환각으로 인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리화나를 펴서 환각으로 인한 것이라면 시간은 흘러야 하지 않는가? 시간은 처음 집에 찾아온 시각과 마찬가지로 흐르지 않았다. 시간은 멈추고, 주인공의 관념 속에서 시간이 흐른 것일까?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일까? 단순히 마리화나가 가져온 환각을 본 것인가, 판단할 수 없다.

 

결국에 이 꿈같은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을 청한다.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잠을 잔다는 것은 역설적인 것 같다. 보통 우리는 꿈에서 깨기 위해서 일어나지, 잠을 자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 일어난 시간은 2시 45분이다. 2시간 15분 동안에 일어난 일들과 소설의 전개는 사실 별로 없다. 주인공이 의식 속에서 사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소설이 참 난해한 것 같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잠자는 동안 꿈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인지, 허구의 세계와 영원히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잠을 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환상인지, 실제인지 모르는 일에도 분명한 사실이 있다. 주인공이 연인 에바와 이별한 것이다. 마지막에 떠나지 말라는 연인의 만류에도 차갑게 돌아선 주인공에게 모든 일이 예정된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벌어진 것 같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도, 이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던 시간이 흐르지 않던 중요하지 않다. 연인 에바와 같이 있는 마지막 시간이 영원하게 느껴진 것이 아닐까? 환각인지 주인공의 꿈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살갗의 감촉과 사랑을 나누었던 순간이 떠오른 것은 더 이상 그녀와 정을 나누지 못하고 그녀를 안아주지도 못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자 해설이 꼼꼼하게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나더쉬 피테르 작가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데 해설이 풍부하지 않다는 점은 너무 아쉽다. 역자 후기라고 되어있지만, 작품해설은 아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니, 전문 번역자도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물론, 소설을 해설에 맞추어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이 난해하고, 처음 소개되는 만큼 꼼꼼하게 독자에게 해설을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p61

그 살갗. 살아 숨쉬는 육신의 빛속. 좋다, 경계 없는 두 육체 사이의 이런 것. 내 느낌은 반복적으로 의식에서 분리된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 의식은 정확하게 작동한다. 내가 여기 이 침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지 내 의식이 감각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다. 그리고 만약 계속해서 내 의식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면, 내 의식이 어쩌면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로 그 의식, 감각에서 독립해야 할 그 생각은, 나를 기만하고 있는 바로 그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그것을 과연 내가 진짜로 느끼고 있는지 아닌지, 또는 단지 존재하고 있다는 감정으로 상상하는 것인지를 내가 모른다면, 그녀가 여기에 실제로 있는지 아닌지, 여기 내 옆에 있는지 아닌지도 나는 알 수 없거나, 또는 그저 상상하는 것일 뿐이다.

 

p72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일어난다고 믿었을 뿐인데! 나의 공포는 더욱 우스운 것이다.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가. 편안하게 웃을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만약 웃음에 나를 완전히 맡기지 못한다면, 그렇다면 아직도 상상을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게다가 있지도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지금, 지금은 무엇이 있었던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 나는 듣고 있다. 새로이 그 외침을 듣고 있고, 내 무릎에서 치골의 저항을 느낀다. 그러나 사랑의 행위는 없었고 그저 내 상상이었을 뿐이다.

 

p82

나는 이미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나 자신을 느끼게 하는 외부 세계를 느껴야 한다. 이 사고의 흐름 또한 극단적이고, 출발선으로 되돌아간 것이며, 나는 반복, 자기합리화, 논리적인 체계 안에 있다. 다시금 거기에. 장면들이 반복되어버린 것처럼, 이 사고의 흐름은 스스로를 반복하고 있다.

 

p99

시간이 멈추고, 그것은 나의 상상 속에서만 흐른다. 실제는 그 마지막 한 조각도 상상임이 증명되었다. 하지만 이 증명의 행위 역시 상상이다. 반복되는 것. 내 논리가 이미 이를 증명한 그 사실의 반복. 그 궁극점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내 존재가 멈추고, 이미 내가 아닌 그때가 아마도 그 순간, 이 12시 30분, 이것이 그 시간인데, 지금까지는 아직 내가 존재해야만 한다는 신념 속에 내가 있다. 형이하학적 존재가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관념 속. 시간은 그 유효성을 잃었다.

 

p138

그 여정의 피곤함이 그녀의 사랑을 꺼버렸다. 나를 되살린 그 사랑을. 얼마나 우스운가. 동일한 도로 구간에서 양방향의 교통. 그녀가 느낄까, 아닐까? 얼마나 내가 사랑하는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무엇으로 그녀에게 저지른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무엇으로 나의 냉담, 부동, 광기가 유발한 그녀의 슬픔을 쫓아버릴 수 있을까? 지금까지 그녀는 나를 위해 싸웠고, 지금 나는 그녀를 위해 싸워야 한다. 두 요소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얼마나 익숙한 것인가! 그런데 서로를 위해 끌어온 이 싸움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이것은 그저 말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끌어온 지난함속에서 그 치열한 싸움을 내가 즐겼던 것은 아닐까? 나 또한 그녀를 위해 나 자신에 대항해 싸웠고, 단 한 순간이라도 그녀에게 닿기 위해 고통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이토록 재료에 매여 있는가? 사랑은 왜 그 안에서 사랑 그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가? 왜 나는 느낄 수 없는가.

그녀가 나 없이,

다만 그녀라는

것을! 오로지 그녀를 위해!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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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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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국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요코는 악몽을 꾸기 시작한다. 악몽이 반복되던 어느 날, 게이키라는 청년이 찾아오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갑작스러운 게이키의 등장에 요코는 당황해 한다. 요코에게 주인님이라 하며, 칼을 주고 이 칼을 꼭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그러는 도중에 고조라는 요마의 습격에 시달리고, 다른 세계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곳에서는 한없이 검게 보이고, 별이 떠있는 것 같은 허해라고 불리는 바다만이 보일뿐이다.

 

 

 

바다는 한없이 검은색에 가까운 쪽빛으로 보였다. 수면으로 뻗어있는 절벽의 선을 눈으로 더듬어 보면 물에 색깔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맑았다. 상상을 금할 정도로 깊은 바다의, 심해에 도사린 어둠이 투명한 물 때문에 그대로 드러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빛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은 밑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감각. (p63)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하는 요코는 밤낮으로 요마에게 시달리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다. 가끔씩 도와준다며, 다가온 사람들도 결국에 자신을 배신했으며,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점점 마음에 상처를 받는 요코는 푸른 원숭이의 환영에 시달린다. 푸른 원숭이는 요코를 이간질하며, 원래 살던 세계와 지금 십이국이 존재하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며 조롱한다. 그렇게 자신의 검이 보여주는 환영 속에서 요코는 희망을 잃어간다.

 

 

 

 

 친구라 부른 모두가 사실은 친구가 아님을 마음속 어딘가 알고 있었다. 살면서 아주 잠시 동안, 좁은 우리 안에 갇힌 동지끼리 어깨를 맞대고 있었을 뿐이다.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뀌면 잊어버린다. 졸업하면 만날 일도 없다. 그런 존재였다. 그렇게 생각해도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덧없는 관계라는 것을 분명히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안에 어떤 진심이 숨어 있을까 기대했다. (p194)

 

 

 

환영 속에서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릴 줄 알았던 요코는, 친구들의 험담과 부모님의 원망 섞인 회한에 슬퍼한다. 갑작스럽게 사라진 자신이 고작 문제아로 찍힌 것이다. 점점 생에 의지를 잃어가던 요코는 결국 요마와 싸우다가 기절을 하고 만다. 어느 집에서 눈을 뜨게 된 요코는 반수인 쥐인간 라쿠슌과 조우하게 된다. 자신을 도와주겠다는 라쿠슌과 함께 요코는 안국으로 향하게 된다. 진심으로 다가오는 라쿠슌과 달리 요코는 자신이 이용당하게 될까봐 의심하고 적당한 기회를 봐서 도망을 치려고 한다. 하지만, 여행 도중에 라쿠슌과의 우정으로 다시 사람들을 믿게 되고, 큰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예상치도 못한 이 세계에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선뜻 나아가질 못한다.

 

 

 

"여기서 돌아가면 분명히 후회하겠지만, 돌아가지 않아도 틀림없이 후회하겠지. 어느 쪽이든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이 그립겠지. 어느 쪽이고 붙잡고 싶은데 한쪽밖에 고를 수 없어."(p431)

 

 

 

요코의 십이국 세계에서 모험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다음 편에서 본격적으로 십이국기가 전개될 것이다. 이 세계에서 요코는 너무나 중요한 사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평범한 여고생인줄 알았던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여유가 없다. 요코는 이 위기에서 벗어나 세계를 구원하는 인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1권이 나오는 시점에서 갈 길이 멀지만, 앞으로가 기대 되는 십이국기이다.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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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 단편선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50
기 드 모파상 지음, 김동현.김사행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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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 단편선>

 

오 헨리, 안톤 체홉, 에드가 앨런 포와 함께 단편소설로 유명한 모파상의 단편선을 읽었다. 이 책에는 19편의 단편소설들이 들어 있는데, 모든 단편소설이 다 주옥같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목걸이는 물론이고, 달빛, 의자 고치는 여인 등 모파상의 단편을 감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인 것 같다.

 

분량이 조금 짧은 게 아쉬운 점이 있으나, 모파상이 남긴 3백편 정도의 단편선 중에서 최대한 가치 있는 소설들을 고르려고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역시 <목걸이>이다. 파리의 소시민들의 삶을 잘 그려낸 소설인데, 극중에서 여주인공은 야회에 가기 위해 친구에게 목걸이를 빌린다.

 

하지만,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 목걸이를 다시 구하기 위해 엄청나게 가세가 기울게 된다. 그렇게 고생해서 구한 목걸이를 다시 갚는데 10년이나 걸려서, 주인에게 돌려주지만, 주인이 목걸이가 보석이라고 말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얼마나 어이없는 이야기인가, 10년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똑같은 목걸이를 샀더니, 그 목걸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이러한 내용에는, 자신이 잘못한 점은 바로 상대방에게 고백을 하고,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다.

 

또 다른 단편인 <달빛>에서는 레토레 부인과 여동생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레토레 부인이 겪은 일화를 동생에게 말한다. 레토레 부인은 달빛이 호수를 적시는 감미로운 밤에 한 남자가 정중하게 다가와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레토레 부인은 이러한 분위기에 심취해 그 남자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 후 그 남성과 더 이상 만나게 될 수 없게 되어서 아쉽다고 말하자. 여동생인 루베르 부인이 이렇게 말한다.

 

“이봐, 언니. 우리 여자들은 흔히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사랑하고 하지. 그날 밤 언니의 진정한 애인은 저 달빛이었던 거야.” (p24)

 

여동생의 말이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기보다는 그 당시에 분위기나 감정에 휩쓸려서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파리의 소시민들의 삶이나, 여성의 애정 문제를 다루거나, 전쟁으로 빚어지는 비참한 인생에 대한 단면들을 보여주는 모파상의 단편과 달리 <산장>이라는 소설은 고립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을 잘 표현해내고 있는데, 이 소설도 참 매력적이다.산장속에서 홀로 고립된 인물이 느끼는 공포감과 불안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잘 표현해 놓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결국 구출되지만, 막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백발이 되고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이렇게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쓴 모파상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작품이 수록 된 모파상의 단편선도 찾아서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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