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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의 전갈 ㅣ K-픽션 5
최민우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9월
평점 :

이베리아의
전갈
비밀요원의 치열한 삶은
다룬 단편소설, 이베리아의 전갈은 코드네임 블랙의 시점에 맞춰서 전개된다. 블랙은, 배신한 동료인 옐로를 쫓는다. 옐로는 블랙의 상사이며, 전임
지부장과의 마찰로 인해 조직을 떠났다. 옐로는 더러운 술수를 쓰며, 조직의
부패를 언론에 터트린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조직과 거래를 한 옐로는 방향을 돌리고, 전 정권의 비리를 담은 책을 출간해서, 전 정권을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로 결정한다.
블랙은, 정부의 지시를
받고, 옐로를 정부에 넘기기 위해 찾아간다. 블랙은 어차피 옐로가 정부의 손에 의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살려둔 채로 적당히
비유를 맞추어 옐로를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신념을 짓밟는 옐로의 말을 들었을 때, 블랙은 결국 옐로를 죽이고 만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암울하다.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으며, 막대한 정보에 비해, 정확한 정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국가정보원인
블랙조차도, 언론에서 보도되는 어떠한 정보도 정확한 사실인지 모르며, 쿠데타군과 정부군은 계속되는 교전이 벌어질 뿐이다. 사유와 통찰로 만들어
낸 양질의 정보보다는 허섭스레기 같은 정보만이 교환되는 이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베리아의 전갈의
세계관은 조지오웰의「1984」의 세계관보다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신세계」의 세계관과 비슷하다. 완전히 통제되지 않으며, 대량의 정보가 존재하는
사회이고, 개인의 개성이 사라진 곳이다. 멋진 신세계가 표현한 깊게 사유하고 통찰하는 문학이 멸종된 사회는 지금의 사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SNS를 통한
허섭스레기 같은 정보만이 생산되고, 양질의 정보는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자랑질을 통한 쾌락추구만이 목적인 소통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멋진 신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쾌락과 안정의 추구를 보여주는데, 소마라는 향정신성 물질로 통해, 불안은 제거되며, 소마의 존재
유무가 불안의 존재 유무를 결정짓는다. 이러한 소마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다고 여기고 사람들은 소마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현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손 안에 스마트폰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안에 떤다. 한시도 손에 놓지 않고 쥐고 있다. 자신에게 연락이 오지도 않았는데, 행여나 올까봐 항시 소지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마찬가지로 소마도 아직 불안정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데, 그 물질이 없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소마의 소지 유무자체가
어이없게도 불안을 결정짓게 된 것이다.
개인의 권리 투쟁으로
이끌어낸, 정의의 실현은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좌빨이다, 선동이다 뭐다 하면서, 정당한 권리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매도한다. 물론
선동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조건 비난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도 신입요원인 브라운은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정부에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다. 물론 국가정보원 소속의 요원이지만,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렇게 한명씩 정의의
실현을 위해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사회를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도 독재정권 당시에 사람들의 권리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사회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힘겹게 얻어낸 권리를 감사함 없이 누리는 사람들은 소설에서
나오는 옐로와 같다고 생각한다.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응원해주기는커녕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해, 비열하게 살지는 말자. 이미
우리는 어렸을 때 본, 이솝우화에 나오는 박쥐의 비참한 결말을 알고 있지 않은가?
p32
정보 통제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 하나는 제대로 하고 있었다. 쿠데타군과
정부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는 루머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파되었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리도 있었고 민간인 피해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었다. 계엄 상황에서 '일시적 전산상의 오류'가 일어나 인터넷이 차단됐기
때문이었다.
p40
세상의 관심이
줄어들수록 정보는 늘어났다. 쿠데타정부는 비상위원회를 설치한 뒤 구태와 부패의 청산을 제일의 목표로 삼아 혁명적 개혁을 통해 내부의 적을
축출하고 외부의 위협에 맞서 민주적 체재를 유지하겠다는 로드맵을 공표했다.
p68
복면을 써도, 소총을
어깨에 메도, 브라운은 똑같았다. 말투에는 그 동안의 고층을 짐작케 하는 무게가 실려 있었지만 손은 계속해서 복면의 실밥을 잡아뜯고 있었고
말에는 조리가 없었으며 카메라와는 끝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형님이라 불러도
되죠?
"배신자들.
거지새끼들." 옐로가 말했다. 이미 술기운이 꽤 올라 의자 등받이에 몸을 느슨하게 기대고 있었고 들지 않은 팔은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살려둬서는 안되지. 저런 새끼들은 싹 쓸어버려야 돼."
"가족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블랙은 겨우 입을
열었다.
<서평단으로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리뷰임>
http://blog.naver.com/young92022/220165689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