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와 이슬람권, 유럽, 특히 중유럽(이건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고부터 고쳐 쓰기 시작한 표현이라죠)의 책들을 읽다보면, 종종 문화적인 대물림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주인공들의 부모가 세상을 왼편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죠... <싸움꾼 릴리> 라는 어린이책을 읽다가, 책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깜찍한 좌파 소녀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페르세폴리스>! 이란, 무슬림으로서의 자부심, 디아스포라의 고민 등을 감각적인, 표현주의풍의 색깔있는 만화로 누릴 수 있는 책이에요.
주인공의 가정 내에서 이뤄지는 정치적인 고민들과 토론들을 보자면 정말 부러울 뿐이에요. (주인공의 가정이 특권층이긴 하지만...) 2부에서 소녀에서 여성으로, 무슬림에서 유러피안으로 성장해가는 마르잔의 모습도 간지(!)나구요.
미디어가 필터링해 보여주는 이란, 특히 이란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책. 대안 만화 계간지를 펴내는 <새만화책>의 스테디셀러이기도 하죠.
* 제가 전작 모으기에 들어간,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특별한 유년 시절 이야기.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중유럽 국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마리 여사가 그곳에서의 체험과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단순한 옹호도 아니어서, 읽으면서 세계와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마리 여사를 다양한 문화와 인간에 대해 박학다식할 뿐 아니라 이해심이 깊은 특별한 존재로 만든 데 빼놓을 수 없는 시기라는 점에서, 마리 여사 입문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두 구절을 꼽자면, 1.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 소녀 마리가 옛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 여긴 문화가 없어. 그저 돈 뿐이야. 우리가 프라하에 있었을 땐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일주일에 한번은 공연을 관람했었잖아?" 라고 말하는 부분.
2. 타국에서 그토록 그리워한 고국이, 타인의 용모를 주제로 사람을 놀린다는 것, 수업은 선생님만 말하고 학생들은 그저 듣기만 한다며 그 수동성에 놀라는 부분입니다. (1,2 모두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죠... ) 깜찍한 소녀들의 고민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 프랑스 소녀 릴리의, 체첸에서 온 친구를 위한 특별한 싸움. 말괄량이 싸움꾼 릴리는 처음에는 체첸에서 전학 온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우여곡절 끝에 친구 가족이 추방될 수 있다는 소식에 더 큰 싸움을 벌입니다. 그러면서 릴리와 친구들은 폭력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멋진 이야기.
요즘 어린이들은 보고 들은 것이 폭넓고 많아서, 머리로는 인권 이나 전쟁 등에 대해 박식하지만, 실생활에선 깡패처럼 구는 경우도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릴리는 그런 어린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소녀랍니다.
(* 아, 페르세폴리스의 마르잔에게 조언자 할머니가 있다면, 릴리에게는 '꼬꼬' 할아버지가 있답니다. 사회주의를 사랑했지만 사회주의 국가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는 할아버지죠- )
:: 이 세 권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어렸을 때 이런 책들을 읽었다면 어떻게 자랐을까? 미래의 제 딸 세대들은 이렇게 당돌하고 깜찍했으면 좋겠다 - 하는 것이었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현경, <미래에서 온 편지> : '기,끼, 깡' ! 21세기의 소녀들을 위한 선물과도 같은 책입니다. (뉴에이지 서적 같은 제목에 놀라지 마세요 ㅋㅋ) 우리보다 앞서 이 잡탕같은 세상을 경험한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 마초(와 마초같은 세상!)에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키고 위안하고 연대하는 방법을 들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