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질 나쁜 고양이 북스토리 아트코믹스 시리즈 1
야마다 무라사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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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고양이를 통해 여자의 심리를 그렸다는 이 책을 마주하면서 가장 눈에 익었던 것은 고양이도, 그림도, 작가도 아닌 김난주라는 번역가의 이름이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에서는 항상 마주하게 되는 김난주 번역가의 이름을 보면서, 이 작품도 믿음직스럽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본 책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책의 방향과는 반대로 책장을 넘겨야 하는 이 책, 아니 만화책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처음에 다른 책들과 동일하게 맨 앞 페이지를 넘긴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책이 끝났음을 알리는 표식을 보고서는 오랜만에 이런 일본 만화책을 보는구나, 라는 생각에 다시 맨 끝, 다시 시작점으로 옮기는 손이 분주해진다.

 

  

읽으면서 괜히 서글퍼 졌던 대목이다. 새끼를 낳으면서 엄마인 나, 도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자신의 이름보다도 엄마라는 이름에 더 익숙해져 버린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에게도 소녀인 시절이 있었고 빛이 나는 20대가 있었을 테지만, 그녀는 나의 엄마가 된 이후부터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인생보다는 엄마로서 가정을 보살피고 아이의 양육에 힘써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자신만을 생각하던 자신 이외의 엄마로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출산과 함께 엄마라는 자신도 함께 재탄생 시키고 있다.

 


 

 고양이의 일과로 한 권이 점철되었다기 보다는 고양이의 입과 눈을 빌어서 우리의 모습을 깊숙이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다. 언제나 말로만 그를 듯이 포장하고 있는 우리는 마냥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을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포장하려고만 아등바등하고 있다.


 


 동물 애호가라며 등장하는 한 여자는 자신의 고양이가 길고양이와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게 느끼며 길고양이를 내쫓으려 하고 있다. 물론 그녀는 길고양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겠지만,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이 그림이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동물 애호가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그녀에게 애정의 대상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신의 고양이인 것이지, 길에서 생활하고 있는 길 고양이는 아닌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여전히 주변에도 만연하고 있다. 인권이라는 이름을 들여다 보자. 우리는 우리의 인권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목 높여 주창하고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들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와 결부된 나의 인권이니 말이다. 조금 눈을 돌려서 내가 아닌 타인, 옉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과연 우리 스스로가 챙기고 있는 만큼의 인권을 그들에게도 권하고 있는가? 다시 한 번 만화 속의 앙칼진 여인만이 스쳐지나간다. 저 여자의 모습은 우리의 못난 자화상이 아닐까.

  금새 읽어 낸 한 권의 책을 덮으며 뭔가 몽롱한 느낌이 든다. 고양이 집사는 아니기에 그림 속 고양이들의 표정 하나하나에는 모두 공감할 수는 없으나, 그 그림과 함께 버무려진 이야기들을 보면 어느새 고양이들의 몸짓과 표정에 녹아들게 된다. 정말 그이 우리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맴돌게 되는 잔잔한 느낌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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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네코무라씨 / 호시 요리코저

 

 

 

 

 

독서 기간 : 2013.07.2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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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Story - 역사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이야기
닉 테일러 지음, 엄연수 옮김 / 글과생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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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르's Review

얼핏 보아서는 History를 말하는 것만 같은 His-story라는 이 책은 남성들에 의해서 세상이 점령되었던 태초의 시간부터 현재까지, 모든 시간을 망라하여 남성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모습들에 대해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얼마 전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라는 책을 읽으면서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면, 이 책은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체증까지 뒤집어 다시 한 번 속을 울렁거리게 만든다.

사실 초반에만 해도 이렇게까지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인가? 라는 반감이 들었다. 종교 뿐만이 아니라 역사나 문화 모든 것들에서 숨어있는 성적 차별적인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이미 내가 그런 것들에 익숙해져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모든 것이 남성들에 의해서만 좌지우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 버린 세상이 맞는 건지, 이게 진정 진실이자 사실인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것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는 현상이며 여전히 내게 남겨진 물음표이기도 하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만든 아담의 존재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이브의 이야기부터 시작으로 하여 His-story의 기원을 찾아간다.아담의 갈비뼈로 인해 만들어진 이브는 아담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근간을 만들어주었으며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은 죄를 지은 이브는 그로 인하여 악한, 마녀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된다.

히즈스토리의 시작에서 맴도는 성서의 영향은, 남신이 아담을 진흙으로 빚었다는 것은 곧 우리를 먹여 살리는 땅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가 배꼽 없이 태어났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수천 년 동안 서구 세계관에 자연스레 스며있는 기본 전제다. (중략) 우리의 창조론에는 악마라 욕을 먹는 이브가 있고,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나 여성의 몸을 빌리지 않고도 자신의 출생을 설명할 수 있는 아담이 있다. 하지만 대 자연 어머니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남성들의 입이다. -본문

이러한 남성들의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순간에도 지배하게 되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문자를 쓰고 읽고 말하는 것에는 모두 남성적인 뇌를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오른쪽 right 가 옳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왼손은 악마의 손이기에 모든 것을 오른손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 속에는 남성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남자들의 속내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과연 이 이야기에 아! 그랬구나, 라며 박수 치며 환호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성의 뇌와 여성의 뇌라고 나누어 이야기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남녀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찌되었건 저자는 이 내용을 차용하여 주장을 계속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아이를 임신했을 경우 낙태 수술을 하거나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버려지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러한 일들이 불법으로 되어 임신했을 경우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것도 만삭이 다 되었을 때나 전해진다고는 하나, 이미 자행된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 남녀 성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니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중국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발생되었던 일이며 세계적으로 눈을 돌려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문제들이었다. 남성에 대한 변하지 않는 갈망은 아마도 다음 세대로의 이전을 위해서는 풀어야만 하는 인류의 문제였기에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고는 하나, 정도의 지나침은 언제나 그 집착에 따른 폐해를 몰고 오는 법이다.

"여자애들은 청바지와 셔츠를 입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부츠를 신어도 돼. 왜냐면 남자애가 되는 것은 괜찮으니까..... 그러나 남자애가 여자애처럼 보이면 신분이 낮아져. 너도 여자애를 비하하잖아." -본문

한 권 내내 His-story에 대한 이야기와 그 주장만이 이어졌다면 악! 소리를 내며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기도 하고 독단적인 내용들도 있기에 목에 턱 걸려버린 가시처럼 따끔따끔하기에 쉬이 이해하기는 어렵기도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동물을 집중적으로 기르고,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동물은 집중적으로 몰살시키며, 사랑한다고 주장하지만 존중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것은, 또 다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일 뿐이다. -본문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태도, 즉 어느 동물은 선하고 악하다고 인간 나름대로 판단해서 결정해버리는 인간의 독단적인 행태에 대한 고발이나 모든 역설 속에서도 아이와 같이 뛰어 놀 수 있는 용기들에 대한 이야기 덕분에 마지막까지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책을 덮은 이후에도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실체들 덕분에 골머리가 아팠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한다기 보다는 이러한 시각으로도 바라볼 수 있구나, 라는 것만 배워가려 한다. 저자가 말한 것들을 고스란히 답습하기에는 아직 나의 수준이 너무도 부족하기에 이러한 책을 읽었다는 것에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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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으로 널 사랑해』/ 올리비아 가잘레저

독서 기간 : 2013.07.24 ~ 07.2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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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철학자 루푸스 - 앞만 보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던지는 유쾌한 돌직구
안드레아스 슐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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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말하는 고양이가, 아니 언제나 그들은 인간에게 말을 해 왔지만 고양이들의 말 따위는 무시하던 오만한 인간 앞에 고양이 루푸스가 나타난다. 윤년인 크리스마스 이브날, 일요일날 태어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는 고양이의 음성을 저자가 듣게 된 것은 행운일지 모른다. 진정 그가 루푸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피식 하는 한 번의 웃음과 함께 좀 더 부풀어 오른 책에 대한 호기심에 얼릉 책장을 넘겨 읽어보게 만든다.

책의 초반에 애완동물을 키우다, 사다, 갖다 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하는 우리에게 있어 이 단어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지문이 등장한다. 공간 안에 함께 한다는 이유로 혹은 애완동물들에게 먹을 것과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이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루푸스의 철학은 인간의 시각이 아닌 고양이의 시각이기에 색다른 재미를 전해주고 있다.

나는 몇 달 전 우연히 고양이 한 마리를 갖게 되었다. 사실 '갖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그동안 나는 고양이와 관련해, 특히나 이 수고양이와 관련해 어떤 '소유권'이나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음을 힘들게 배워야 했으니 말이다. -본문

어릴 적 단 몇 개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에는 마당에선가 키웠던 것으로 생각이 드는데 강아지와 같이 목줄을 따로 하지 않고 키워서 그런지 그 녀석은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다. 잠깐이나마 함께했던 고양이에 대한 기억은 그저 예쁘다 혹은 혼자 있을 때도 그다지 심심해 하지 않았다 정도였다. 강아지보다는 독립심이 뛰어나다, 는 것이 고양이들의 기본적인 성향으로만 알고 있는 나에게 루푸스는 자신들이 잠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루에 반 이상을 깊은 잠에 들어 있는 고양이들의 실태를 보며 인간은 게으르다, 무능력하다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이지만, 루푸스에 눈에 비친 잠의 소중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다.

깨어 있는 동안에 허튼 일을 하는 것보다는 또는 일부러 잠을 쪼개어 몽롱한 상태의 지속으로 말미암아 사고를 내는 것보다는 깊은 잠을 통해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잠을 줄여서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고양이처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는 게으름을 배우라고 하는 이들은 없었으니, 그 어디서도 마주한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눈이 크게 떠진다.

잠을 잘 때는 선인과 악인의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잠을 자는 인간은 죄를 짓지 않아요. 그 사실엔 의심이 없어요. 고양이들 생각에 따르면, 잠은 자연히 허락하는 가장 커다란 선물 중 하나예요. -본문

무엇보다도 인간의 관점이 아닌 고양이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는 것, 굳이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어찌되었건 늘 상 있었던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도로서 우리를 바라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이 다른 이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나 압박으로 가해지는 것에 둔감해지고 있을 때 루푸스는 그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인간을 인간의 눈이 아닌 제 3자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충고를 하고 있다.

우리 고양이들은 또한 상대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지만, 그 상대가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행동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알아요. 만약 그렇게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기적일 거예요.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어요. 사족이지만, 무언가 기대할 수 잇는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닐 거예요. -본문

인간이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된 사냥을 해나갈 때, 예를 들어서 샥스핀을 맛본 인간이 상어 지느러미를 구하러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먹는 것에 대한 행복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것이 자신이 아닌 타인들의 행동일 경우에는 식탐이라 부르는.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언제나 나에게만 느슨한 잣대를 드리우는 인간의 모습에 루푸스는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은 미식가라 부르면서 다른 이는 식탐을 한다고 폄훼하는 것은 참 우스워요. 우리가 가장 최상의 것, 완전한 것마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지요? 우리는 오래전 수고양이 오스카 차일드가 내세운 단순한 모토에 따라 살아가요. 그는 '내 취향은 단순하다. 난 최상의 것으로만 만족한다.'라고 했지요. -본문

인간에 의해 차려진 접시 속 사료를 마주하면서도 아무런 생각 없이 꿀꺽 먹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의 점검은 필요하다는 루푸스의 말에 뜨끔하게 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다, 라고만 생각했지 그러한 당연함 속에 자유의지에 대해서 가지는 권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손에 의해서 결정된 것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생각 없이 따라 흐르고 그리고 나서 내가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니야! 라며 뒤늦게 후회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선택하고 그 결정에 책임질 수 있는. 마치 내가 루푸스라면 매일 같은 사료를 당연시 받아 먹는 것이 아니라 이게 싫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를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자연이 우리에게 부과해 준 필연성만을 따른다면, 우리는 인과 법칙만 따르게 될 거예요.그러면 우리는 개성이나 이성이 필요가 없지요. 우리는 자연이 끝을 잡아당길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꼭두각시나 다름없을 거예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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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 최재천저

독서 기간 : 2013.07.25 ~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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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샘 피지개티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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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의 최저 임금 5,210원, 왠만한 커피 한 잔 값에 미치는 수준. 한 시간의 노동의 댓가는 커피 한 잔으로 사그라들어버린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 시세. 평던 몇 천만원을 혼가 하기에 평균 초봉이 3000만원이라고 가정하였을때도 내집 마련하기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다는 가정하에 최소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10평 남짓한 공간을 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대학생때만 해도 이러한 숫자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 별 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한 달의 용돈으로 알차게 지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바야흐로 이러한 숫자에 눈을 뜨게 된 것을 노동시장에 직접 뛰어들어가게 된 이후부터였다.

 

 학생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변모한 이후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스치는 월급이라는 숫자를 또 바라만보고 적금으로 매달 모으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년이 되어도 원하는 만큼의 자금이 모이지 않는 현실을 보며 갑갑함을 느끼며 돈을 벌고 모은다는 것이 녹록치 않구나, 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때에도 일명 대기업들의 분기별 실적을, 그리고 한 개인들의 연봉이며 자산에 대한 뉴스를 들을때면 도대체 가늠도 안된느 숫자들을 품고 있는 그들은 그저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구나, 라며 체념하고 흘려듣고만 있었다.

 

 일개 나는 평범한 서민이고 그 서민이 이 나라의 주축을 이룬다고 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그들은 경제의 중심이 아닌 외각에 놓여져 있는 위치이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 있기에 경제 정책에 휘청하며 파도를 타고만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부를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유혹을 넘실거리는 아래 전 세계를 침투하고 잠식하게 된다. 누구라도 부의 축적이라는 달콤한 결실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동일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이 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만 있다.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시작한 이 가능성의 기회를 안고서, 그 누구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이 자본주의의 레이스 속에서 대체 왜 이러한 격차는 계속 발생되고 있으며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간극은 좁혀들기는 커녕 점점 더해지는 것인가?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경제에 대해, 빈부격차에 대해 전해지는 수치들을 보면서 이미 벌어져 버린 상황들이고 나 하나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이 거대한 카테고리 속에서 무슨 소용일까, 하며 그저 관망하려고만 했다. 


 600페이지 남짓의 이 거대한 책을 보면서 만만치 않겠다, 라는 인식이 어느 새 이 무시무시한 암투를 모르고 그저 흘러가는대로만 따라갈 뻔 했구나, 라는 뒤 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플라톤이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현자들이 겪는 형벌 바로, 잘못된 자들의 통치아래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말과 같이 우리가 별 다른 관심을 갖지 않고 자본주의의 거대한 장막을 경제라는 굴레 속에, 아니 그들의 손에 맡겼던 결과 오늘날이 초래하게 되었다. 더 이상 무관심이라는 이름하에 그들의 만행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진실을 바로 알아야만 한다.

 

 2011년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중심인 월스트리트에서 "Occupy"의 시위가 이어졌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그 황금의 땅에서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얼마나 철저히 그들만의 손에 이 경제라는 거대한 틀이 놀아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는 초반부터 가진자들의 무시무시한 횡포와 암흑과도 같은 그들의 꼼수에 치를 떨게 된다. 

 

 1900년, 여러 주의 재력가들로부터 뒷돈을 받을 입법 위원들은 19세기의 마지막 19년 동안 겪었던 불쾌감을 부자들이 두 번 다시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선거제도에 손을 댔다. 인민당의 달라진 작전이 계기였다. 인민당은 민주당이 우세한 남부에서 공화당 의원을 지명하고 공화당이 우세한 서부에서 민주당 의원을 지명하는 '혼합'공천 방식으로 주 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본문

 

 정치뿐만 아니라 돈을 거머쥔 그들은 자신들의 돈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불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수 많은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거대하게 그들은 자신들의 부를 축척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으며 그 방법은 참으로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회사를 주무르는 사람들은 자산 평가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미첼의 지적대로 이들은 "사들이는 자산의 가치를 높여야 할 뿌리치기 힘든 인센티브"를 갖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의 가치를 높게 평가 할 수록, 더 많은 자본을 근거로 더 많은 주식을 발행할 수 있었다." -본문

 

 세계 대전의 발발은 모두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 동안 이룩해 놓았던 모든 것들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모했으며 생존이라는 그 최우선의 명제만이 표면위에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역사상 전쟁의 발발은 그 이외의 나라들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으며 이 순간 그들은 또 다시 부를 축적하는데 눈을 돌리게 된다.

 

 "병사를 사지에 내보내기는 죽기보다 싫다. 수많은 병사가 매독에 걸리는 것도 걱정거리다. 그러나 전쟁이 가져다줄 재정적 결과는 기꺼이 환영한다." 스크립스는 흥분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의 읨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세계대전이란 고통의 근원에서, 우리는 가장 위대한 개혁과 가장 위대한 축복을 끌어내 국민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문

 

  그렇게 전시 상황에서도 탐욕을 부리던 이들의 만행은 전쟁이 지나고 나서도 사그러들 줄 모른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지만 아직도 부족해, 외치는 탁욕으로 가득해진 그들을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은 없었다. 계속해서 그들은 더 많은 돈을 흡수하길 원했으며 그들이 살쪄 가는 동안 수 많은 이들은 더욱 가혹한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정당하고 합당한 방법으로의 부의 증식이 아닌 타인의 것을, 그것도 점점 쇠약해져 가들 이들의 1페니라도 악착같이 빨아들이기 위해 그들은 거대한 돈을 향한 청소기를 가동시키고 있었다.

 잠깐 동안이나마 이러한 잠식은 눈가리개를 이용해서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 역시 시간이 흐를 수록 무언가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로 인해 이 모든 것을 바로 잡게 될 그 누군가를 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바로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그 동안은 가진자들이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부에 위협되는 이들이 배척하는데 성공했다면 이번만큼은 대중들의 염원을 꺾어 내릴 수는 없었다.

 

 "단 1명의 전쟁 부자도 만들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추진한 루스벨트의 저독적인 정책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2만 5000달러 소득 상한제 제안에 대한 반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의 뚝심 덕택에 부자들의 세금 부담에 대한 전시 재정 논란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보수파는 이런 논의 자체가 불쾌했다. -본문

 부의 독점을 무너뜨린다는 어감자체에 풍겨지는 불편함은 무엇가를 무너뜨린다는, 그러니까 누군가가 쌓아둔 것을 억지로 해체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이 쌓아놓은 부라는 체제는 철저히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고서 마련한 발판의 주춧돌로서 이제라도 우리는 그 불편하고 잘못된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이가 과제를 당면한 셈이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2011년의 Occypy 시위에 60여년 앞선 노동절에 다시금 뉴욕 한 복판에 모습을 나타내고 결국 그들은 디트로이트 협약을 이루는 쾌거를 거머쥐게 된다.

  디트로이트 협약이 자동차 근로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1947~1960년 자동차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거의 2배가 되어 한 해 6,000달러까지 올라갔다. 자동차 근로자들은 덕분에 "방 5개짜리 주책과 5년된 중고 셰비"를 굴릴 정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방 5개짜리 주택과 셰비는 연방노동통계국이 '적절한' 생활수준의 척도로 정의한 주요 요소였다. -본문

  여기서 우리는 과연 만족해야 하는가?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여하는 누진세가 있고 그들은 지금 충분히 자신들의 의무를 다 하고 있다고 주창하지만 얼마전 뉴스에도 보도된 조세 피난처의 실체와 어떻게든 세금을 피해가려는 이들의 쫓고 쫓기는 레이스는 여전히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현금에 대한 부의 증식에서 주가로 이동하더니만 그들은 다시 석유를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이용했으며 이제는 새로이 법을 수정 및 개선해서 자식들의 이득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고 부자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가족에게 분산시켜 높은 과세 구간에 속한 소득은 낮은 구간으로 전환시킬 수 있음,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이 만든 자선기금에서 일정한 소득을 받았다. 손자들을 위한 신탁을 만들어놓으면 사후에 부과되는 세금을 줄일수 있었다. 이 외에도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본문

 모두에게 10%의 세금을 거두는 것이 과연 평등한 것일까? 어릴 적만 해도 누구나 10%를 적용한다는 이러한 제도에 대해 지극히 바람직한 것이라 생각했다. 백만원을 벌든 천만원을 벌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숫자에 현혹되어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뒤집은 것이 얼마 전이고 그 동안은 평등이라는 이름하에 지극히 불평든한 시간을 보내왔다. 지금 우리는 또 얼마나 숫자와 제도라는 명목하게 눈가리도 아웅하는 듯이 잘못된 것들을 당연한 것 혹은 옳은 것이라 생각하고 지내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 모든 것이 바람직하게 돌아가겠지,라는 염원은 터무니 없을 정도로 불합리한 것들의 연속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짜 놓은 판에 놀아나는 주사위가 되고 만다. 600페이지를 통해 진실을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손에 움직이는 말이 될 것인가. 당신에게 이미 해답은 던져져 있다.

   

아르's 추천목록

 

『불평등의 대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저

 

   

 

독서 기간 : 2013.07.23 ~ 07.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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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얼마 전 다녀왔던 짧은 여행에서 들렸던 통영에서 박경리 선생이 잠들었다는 곳을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정겨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가고 없지만 나는 지금 그녀가 남긴 이야기들을 읽고 또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있다.

600페이지 남짓한 두께를 보면서 그리고 초반의 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듯한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졌다. 그렇게 막연한 걱정을 안고 읽기 시작한, 100여 페이지를 넘기게 되면 정신 없이 책장이 넘어가게 된다. 역시 나의 초반의 걱정은 기우였으며 이 책 역시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토영과 부산. 사투리인지 그 당시에는 그렇게 부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영이 아닌 토영과 부산이 이 소설의 무대이며 6.25전쟁 발발 당시가 배경이 된다.

소설을 읽다 보며 문득 든 생각은, '전쟁'이라 단어를 마주하며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만 박혀 있었구나, 라는 것이었다. 살기 위해 피난을 가는 행렬 속에서 자신의 아이를 주검으로 보내야 했다는 외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그린 6.25전쟁은 회색조에 핏빛이 가득한 죽음의 시간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오롯이 죽음만이 아닌 삶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머 전쟁이 밤낮 있건데? 내사 아무리 바빠도 응주 학생 결혼식에는 갈 기고 아이 돌잔치 때도 날 불러야 할기고....."

"태평성대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주머닐 보며 세상에 살맛 납니다만." -본문

물론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찬란한 희망 가득한 날들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삶 아니면 죽음, 이 두 가지의 선택 용지가 아닌 그럼에도 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시나 전쟁이라는 배경 탓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만나온 박경리 선생이 그려온 삶이 그러하듯이 평이하고 쉬이 살아 갈 수 있는 자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결혼을 꿈꾸는 명화와 응주는 응주의 아버지, 박의사의 반대로 일그러지고 있었으며, 피난 중에 겁탈을 당한 수옥은 서영래에 의해서 또 다시 감금생활을 하게 되고 학수를 만나 그나마 다시금 웃으며 그녀가 살다 싶다가도 전쟁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일본에서 밀수를 해서 사는 이들의 모습이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의 땅에서 여색을 탐하며 정신 없이 살아가는 문성재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린 학자까지.

"피곤할 뿐이다. ! 모두 죽어 자빠지는 판국에 뭐가 되겠다고 공부를 하고 여자를 좋아하고..... 시시한 이야기다." -본문

전쟁 통에서 그 누구도 평이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듯이 모두들이 반쪽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 반쪽 짜리 인생마저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롯한 하나로 만들어 살면 좋으련만, 어긋난 마음들과 시간의 이정표는 남아있는 자들끼리 서로 생채기를 내고 있다.

그 와중에 신기한 것은 나는 보는 내내6.25라는 배경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기고 이 부분에 대해 집착하듯 상황을 엮어내려 했지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그다지 피난 상황이나 전쟁이라는 현실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일어난 것보다는 지금 당장의 자신의 삶이 더 애틋하고 중요하기에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만 치중하고 있다.

마지막, 전쟁의 발발로 인해 그들이 생 이별을 해야 하는 장면에서야 그들이 전쟁 통에 있었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할 뿐이다.

표류도도 그렇고 김약국의 딸들고 그렇고.이번 파시도 그렇고, 읽고 나면 먹먹해지는 것이 아련함이 남는다. 그 어디에도 평이한 삶이 허락되지 않는 그들을 보면 대체 왜 이렇게 매번 힘든 고난 속을 걸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 되야 한다는 듯이 마지막 순간에 늘 하나의 빛을 남겨두고 있다.

"산 사람은 어디서라도 만난다.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만날 수 없다는 것보다는 낫거든."-본문

자신의 아이를 밴 수옥을 두고 전쟁터로 떠나야 하는 학수와 단 하루의 결혼 생활을 남기고 일본으로 떠난 명화, 그런 명화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군대로 들어가야겠다는 응주까지. 그들이 다시 재회하며 얼싸안는 장면은 마지막까지도 나타나지 않고 그저 서로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것으로 하여 이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박경리 선생은 어디까지를 염두하고 이 소설을 이 곳에서 멈추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이 소설이 마냥 슬프다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전쟁을 지나고 나서도 우리나라가 이토록 성장하고 그 안에 나름대로의 삶이 계속 이어져왔듯이 수옥, 학수, 명화, 응주 이들에게도 계속 삶은 이어졌을 테고 그렇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는 있을테니, 비록 마지막은 아련함으로 끝났다고는 하나 다시 미소 지을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으로 갈무리해본다.

아르's 추천목록

마당깊은 집 / 김원일저

독서 기간 : 2013.07.23~07.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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