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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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책에 대한 뚜렷한 취향이 있다거나내 인생에 이 책만큼은, 혹은 이 작가만은 이라는 나만의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없기에 언젠가책장 하나에 내가 그토록 염원했던 책만을 모아두는 것이 소망이기에 지금도 조금씩이나마 책을 읽고는 있다지만, 그중에서도 웬만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자기계발서와 경제, 경영, 종교에 관한 이야기다.

 원채외고집이 강한터라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도 그는 그의 삶은, 나는 나의 삶을 이라는 생각에 그 안에 내용들을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경제/경영분야는 아직 아는 것이없기에 읽기 버거운 이유로 회피하고 있다면 종교에 관한 내용은 감히 그 분야에 대해서 무엇이라 왈가왈부 해서는 안될 것 같은 영역이기에 좀처럼손을 대지 않고 있다.


 제가 예수에게 사로잡힌 건 바로 그 말도 안 되는 대목에서였습니다.사로잡혔다고는 하나 곧이곧대로 믿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위선일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위선을 까발리기 위해서 성서를 통독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이 위선을 부렸다는 증거를 끝내 잡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통 사람, 병든 사람, 미천한 사람, 천대 받는 사람과 진정으로 더불어 계셨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어떤계층의 사람과도 입장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하느님의 아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하느님이그를 보내심은 보통 사람을 하느님의 자녀로 편입시키기 위한 큰 역사였음을. –본문


 제작년이었던가,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후 몇 달은 꽤나 열심히 성당을 나섰지만 그 이후에는 냉담하고 있는나로서는 여전히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을 하고서는 그의 말씀을 따라서 온전히 움직이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잠시 그 안에서 쉬어가는사람처럼, 성당에 들러 미사를 드리고서는 조용히 홀로 나오는 그런 사람이기에 제대로 알지도 못할뿐더러종교라 함은 무언가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아마도박완서선생의 이 <빈방>이라는 책이 아니었다면어떤 식으로든 종교를 기반으로 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인데 그녀의 이야기라는 말에 용기를 가지고서는 이 책을 마주해본다.


 예수를까발리기 위해서 성서를 통독했다, 라는 말을 담대히 하는 그녀를 보면서 이토록 용기있는 발언이 있을수 있다니,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그득히 맴돈다. 제대로알지 못하기에, 혹은 그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때 조차도 종교라는 이름 하에 성서에 적힌그의 말씀에 대한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따라야 할 것만 같은 무언의압박감에 그저 고개를 돌리고서는 아직은 아니야, 라는 생각으로 멀게만 느껴졌으나, 그녀는 반항과 같은 마음으로 어떻게든 성서에 말씀을 읽고서는 그를 반박하겠다며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읽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외면하고 모른 채 돌아섰다면 그녀는 예수와의 정면 돌파로 이 안에 깨달음을 얻은 것을 보며 다르지않은 출발선에서 전혀 다른 도착지를 보여주는 나와 그녀의 모습에 겸허히 이 안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게 된다.


 생명치고 귀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을까마는 효도 관광과 가족 단위의 여행이 많아 어린이가 희생되었다는사실이 우리를 참담하게 합니다. 이런 경우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우너망의 소리는 하느님은 없다는말입니다.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겠느냐는 거죠.
 
그러나 주님, 당신을믿고 당신을 닮겠다고 약속한 저희는 압니다. 당신은 거기에도 계셨으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고통까지 함께하셨으리라는 것을.
 
그걸 믿지 않고 어찌 이 참담한 슬픔을 견디리이까. –본문


 뉴스를통해서 여전히 지구 상에 전쟁이며 기아, 학살 등의 참혹한 현실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찌하여그들에게 그토록 가혹한 아픔을 시간만이 드리우는 것인지,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를 이 슬픔과 분노를보며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대로 이렇게 내버려 두시기만 하시는 건지,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전재전능한 그가 있다면, 이상황을 어떻게든 종식시키거나, 아니 그 전에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셔야 하는 것을 아닐까, 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체 종교의 힘은 무엇에서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에 대한 믿음을가질 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기도 한다. 이모든 것을 그저 방관하고서는 바라만 그의 모습에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그의 존재를 남겨진 활자를통해서만 받아들여야 하기에 늘 그를 향한 내 신념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주님을향한 신념과 믿음이 흐려진다고 한다면 나보다는 그녀가 먼저였을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이들을 먼저떠나 보내야만 했던 그녀의 가슴은 냉가슴을 넘어서 꽁꽁 얼어붙어 그를 향한 분노만이 남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그녀는 하느님의 모습에 대한 반박을 위해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는 고백을 하지만 결국에 다시 그의 품 안에 자리하고 있다. 여전히 나에게는 의문 덩어리인 그 시간을 지나온 그녀의 이야기는 생경하면서도 또 하나의 세계로 접어드는 문을열어주고 있다.


 그때 문득 이 문명의 이기로 가득 찬 도시가 문명 이전의 광야로 변한 것 같아 섬뜩해졋다. 서울 한복판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이 맹수만 으르렁거리는 불모의 광야나 다름없어 보이다니.
 
이럴 땐 누구라도 외쳐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느리게, 조금만 더 못살자.”라고. 이렇게 급하게 이렇게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다 우리는 도대체어떻게 되는 걸까? 나중엔 인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은 실은 우리 내부의 아직은 희미하지만다급한 외침이다. -본문


 이안의 모든 이야기가 종교와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녀의 부드러운 어조에도 나는 넘을 수 없는담을 앞에 둔 기분으로 막막함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가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일상 속의 이야기들은 이 묵직한 이야기 속에 또 하나의 샘물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이들의 동심을 무너뜨리면서도 그것이 더 큰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모습이라든가, 운전대 안에서 변모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든가, 이전보다나은 삶을 위해서 만들어 내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등의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긴 이야기들을 보며 묵직한 이야기를 넘어우리네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나에게이 책은 그저 한번 읽어서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다운받았던 성서 어플을 보면서 그녀와 같이 조금씩 성경을 읽으며 상념에 잠길 즈음, 다시금 그녀와 함께책을 통해 대담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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