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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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터덜터덜 길을 걷고 있던 한 남자의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난다. 재잘재잘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던 아이가 입고 있는 옷을 보노라면 요 근래에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옷의 느낌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아이가 신고 있었던 구두마저도 지금의 것이 아닌 이전의 것 같다는 알싸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갈 때 즈음 소녀는 다시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뭔지 아시겠어요?” 소녀는 물었다.
몰라내가 대답했다.
소망놀이랍니다.”
가는 그 애가 가장 소망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제가 자랄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 소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진 않으실 테죠, 아마.” 눈 깜짝할 새 소녀는 돌아섰다. 그러고는 몰 가 아래로 조용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소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거기 서 있었다. 이윽고 나는 더 이상 소녀를 볼 수 없었다. –본문

평범한, 아니 그보다는 가난한 화가였던 이벤은 미지의 소녀인 제니를 만나고 나서부터 화가로서의 명망을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제니를 화폭 안에 담고 나서부터 변화된 것으로 희한한 일은 제니는 나타날 때마다 우리가 아는 시간의 진리를 거슬러 너무도 빠르고 신기할 정도로 훌쩍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니까 그녀는 처음에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숙녀로 급작스럽게 변화하게 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이벤의 모습은 거의 변화되는 것 없이 상대적으로 제니만 변화되는 모습은 무언가 신비스러움을 전해주게 된다.

비록 내가 그녀를 만나지 못해 쓸쓸하긴 했어도, 또한 그녀에게 도달할 수는 없었다고 해도 내가 전혀 그녀 없이 지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기억이 점차 더욱 날카로워졌음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이 내게 속임수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과거 속에 살기 시작했다기보다 오히려 과거가 더욱더 뚜렷하고 실제적인 현재의 형태를 취하고 나의 대낮의 사고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반대로 현재는 점차 조금씩 몽롱해져서 나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본문

폭풍을 넘어 허리케인이 몰아치던 날, 제니와 이벤은 마주하게 된다. 무언가 더 애틋함으로 가득하길 바랐던 그들의 만남은 안타까움을 가득 남긴 채 종결되어 버린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지? 라는 냉철한 질문 따위는 던져버리곤 그저 애잔함을 남기게 하는 이 이야기를 보며 그 무엇도 이들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겠지만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오히려 그들을 처연하게 만든다. 이벤과 영원히 함께 있을 때 돌아오리라 약속했던 제니는 이제 이벤의 마음 속에서 평생 함께 하는 것일까? 이 풀리지 않을 이야기가 답답함을 느낄 틈도 없이 그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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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 츠츠이 야스타카저 


 

 

독서 기간 : 2015.03.28~03.3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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