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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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망망대해 속에 솟아 있는 섬이 있다. 뭍에서 바라본 섬은 이곳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은 호기심에 자꾸 눈길이 가지만 실상 겉에서 바라본다 한 들 그 섬을 낱낱이 알 수는 없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 말이다.

  <건너편 섬>에 담긴 8편의 이야기들은 어디선가 들어보았던 상황 속의 이야기들이었다. 이산가족의 현장이라든지 가정 폭력을 겪었던 이들의 이야기나, 남과 북의 대치상황 속에서 가족의 분단과 그 안의 이념의 대립으로 연좌제에 묶인 이들, 성폭행이라는 끔찍한 사건으로 삶의 모든 것을 놓아버린 여인, 여류 소설가로서 현대를 산다는 것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집중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던 그 안의 삶에 고개를 쑥 들이 밀어 바라본 삶은 아련하기만 했다. 생채기 난 곳에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줘 아픔을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 아닌 그저 그 안에서 곪아터진다 한들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이야기에 절로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콩쥐 마리아>속의 그녀는 이제 탱글탱글했던 젊은 시절은 기억 저 먼 곳에 자리하고 있는 할머니가 되었다. 일명 양공주가 되어 가족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제 한 몸 희생하여 양분이 되어 준 그녀를, 이제 가족들은 외면하고 부끄럽다는 듯 외면하고 있다.

 아버지는 제왕같이 살았다. 제왕의 기분에 따라 가족이 이리저리 우왕좌왕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어른들의 문제로 아버지는 화를 내고 엄마는 매를 맞았다. 자신을 낳아놓은 엄마가 자기를 낳아 놓은 아버지에 의해 매질을 당하는 모습을 거의 다달이 지켜보아야 하는 생태 조건은 질병의 산실이었다. –본문

 아버지이자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딸과 어머니가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는 <미움 뒤에 숨다>를 보노라면 모진 세월을 그야말로 견디고 있던 엄마가 딸은 밉기도 하고 아버지의 죽음에 자신이 일조한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먼저 떠나버린 제사상 앞에서 딸은 그 동안의 버리고 싶었던 세월마저 엄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견디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언니, 나 그런 말 들으러 여기 온 거 아니야. 난 언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어. 언니가 내 언니라면 그때를 잊어선 안 돼 내가 열두 살이었어. 미군 폭격기가 밤낮으로 떴잖아. 동네가 쑥대밭이 됐잖아. 난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 했다고. 타다 남은 나뭇가지에 걸린 사람의 내장이 뭔지, 팔다리만 떨어져 나뒹구는 게 뭔지, 죽은 어머니 가슴을 파고 우는 갓난아이가 뭔지…… 미쳐서 여태 살았는게 거기 희망을 지펴준 게 언닌데…… -본문

 이산가족 상봉을 보노라면 몇 십 년이 지나 마주한 그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라는 생각과 과연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때론 그렇게 떨어져 사는 동안 그들은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을까, 등등의 생각이 들곤 하지만 아무래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 풍경은 언제 보아도 생경하기만 하다. <언니를 놓치다>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은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명희가 어린 시절 언니 세희의 약속을 믿고서 하염없는 세월을 기다리다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테이블 위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쌀이 떨어지기 전에 돌아온다던 언니는 50여년의 세월이 지나 나타나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한 사람마냥 낯빛이 어두워져 있다. 그런 얼굴로 나타난 언니가 동생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 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 믿던 명희에게 세희는 자신의 조국이 이토록 자신이 잘 살 수 있게 해 주었다며 광고 같은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기 위해 50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것이 아니련만. 그렇게 생경한 언니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버스에 타는 순간, 명희는 깨닫게 된다.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며 이제 언니를 놓치면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른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는 읽는 내내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던 작품이다. 이미 세상을 떠난 화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남편에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작품 속의 그녀는 평소 술을 입에 대고 살며 동네 혼자 사는 여인들을 농락하던 김순경에게 겁탈을 당하고 그 이후에 일들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아이와 남편을 두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남편은 뒤늦게나마 발 벗고 나서보지만 사회는 그로 하여금 구태여 그러한 일들을 끄집어 내려 하느냐, 부터 시작하여 김순경은 되려 죄가 없는 자신에게 죄를 씌고 있다며 순영 아빠에게 무고죄를 주장하고 있다.

 소설가 아내의 삶의 방식은 그와 너무도 달랐다. 어린 자식들이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새우처럼 잠이 든 모습을 보는 건 다반사였다. 소설가의 관심은 온통 사회와 다른 인생들에 있었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면 늘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을 읽는다고 면피가 되는 건 아니었다. 생활은 독서의 시간에 있지 않았다. –본문

 <고독의 해자> <이별은 나의 것>은 저자가 자신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작가로서,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그려 놓았는데 뭐랄까. 왠지 미래에 내가 한 번쯤은 경험할 것들에 대해 그려놓은 듯해서 왠지 애잔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독자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이지만 그네들의 가족 안에서는 환대 받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이기도 하고, 전 남편의 결혼으로 인해 아이들 모두 새 엄마의 아이들로 호적에 오르는 것을 보면서도 괜찮다, 괜찮다, 라는 말을 되풀이 하는 한 여자를 보면서 그들의 삶에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이 그저 막연히 바라만 봐야 하는 지금의 시간들이 송구하기만 하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 어디에서도 개운하게 해갈되는 느낌 없이 켜켜이 무언가가 쌓이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서 유쾌함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들도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아련함만을 주기는 하지만 이 아련함도 견딜 만 하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삶을 외지에서 바라보는 이방인으로서 그들을 보고 있었고 이제서야 겨우 그 안을 바라봤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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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 박경리저

 

 

독서 기간 : 2014.08.31~09.0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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