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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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오랜만에 책에 홀려 읽어 내려간 책이었다. 이전에 단 한번도 마주해본 적도 없는 그의 글이지만 이미 내 안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그의 모든 이야기들은 내가 고스란히 흡수되었고 그렇게 정신이 나간 듯이 책에 집중해서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기지 않은 것이 바로 <책등에 베이다>였다.

이어질 목록은 날 베고 간 책등의 이름들이다. 두꺼운 책등에 베이다니. 그럴 수 있나. 물론 뻔한 과장이요, 지극한 수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말하고 싶은 책을 처음 발견하고 책등을 향해 손을 뻗었던 그때, 나는 이미 의미로서 베이고 감정으로 훌렸다고. 야경처럼 바라봤던 반짝이는 이름들을 여기에 흩뿌려 놓는다. –본문

그의 문장을 빌러 이야기 하자면 그다지 두껍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가볍지 않았던 그의 문장들에 나는 온 몸이 베인 상태였으며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를 내 안에 담아놓고 싶어 보고 또 보고, 따라 읽으며 그렇게 책을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국문학과에 들어서서 인문학은 죽었다, 라는 이야기부터 들어야만 했던 저자는 작은 책방을 열고 난 이후에도 서점은 물론 출판계의 죽음이 도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내왔다고 한다. 전 국민이 1년에 1권의 책을 살까 말까 한다는 지금의 시대에 어쩌면 그가 이야기 하려는 책 이야기는 또 다시 외면당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어본다면 책을 그냥 내려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책 안에 담긴 책도 책이지만 그의 글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홀리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 자크 상페의 원작 <꼬마 니콜라>가 아닌 김모세와 이규성의 <꼬마 니콜라>를 읽으며 양주를 통해 그가 알았던 세계를 체감해가는 이야기는, 어쩜 아무런 연관 관계도 없을 것만 같던 시바스리갈로 이렇게 풀어나갈 수 있는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알고 보니 100중에 1이었지만, 그 당시 1이었던 세상은 나에게 오롯이 100을 의미했으니, 그에게 있어서 원작이든 아니든 <꼬마 니콜라>는 그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사족 혹은 주석을 덧붙이자면, 함께 한 몇 번의 식사가 더 있었고, 조금 애틋한 감정도 들었고, 그것은 연애와 닮았고, 웃음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고, 관계와 인연도 있었고, 우리를 파고든 삶의 가혹한 테두리도 있엇지만, 그 모든 일들은 생애 가장 맛있던 고등어 구이를 말하는 것보다 하찮았다. 그 모든 사연들은 그릇 위에 남겨진 뼈와 머리 같았다. –본문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그가 소개하는 책보다도 그 책을 소개하기까지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에 더욱 매료되어 책을 소개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의 책보다도 오히려 나는 라는 사람 자체에 더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그러니까 <햇빛 속의 여자>를 소개하기 위해 그가 고등어 구이만 먹는 여자에 대한 자신이 그린 꽁트를 소개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꽁트가 <햇빛 속의 여자>보다 더 흥미로웠으며 그런 그가 소개한 책이라면 일단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나는 그의 문장에 완전히 빠져들고만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 들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해서 안 되는 것들의 규제가 더 많이 생기고 모든 것은 책임이 따르는, 그야말로 어른들의 세계에 입성하고 난 후에 언젠가는 나도 가졌을 잃어버린 동심 혹은 그 당시의 세계에 대해 다시금 회상해 볼 때가 있다.

슬프지만 괜찮아. 열 한 개의 문이 남아 있다. 소금쟁이를 타고 탄산 해협을 건널 수 있는 일곱번째 세계의 문은 아직 닫히지 않았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문만은 어떻게든 지킬 거야. 다짐하고 다짐한다. 나는 조금 전 슬프지만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때, 슬픔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도덕 선생님이 가정통신문을 나눠준다. 바스라질 듯 얇은 갱지에는 학부모님들은 열번째 문을 꼭 걸어잠가 주세요. 그곳은 어느새 춤의 성역으로 변질되었는데, 아이들에게 춤만큼 유해한 게 또 있을까요. -본문

 훌쩍 클 것을 대비에 넉넉한 사이즈로 샀던 교복이 싫어 몰래 줄이기도 하고 금기사항이었던 귀를 뚫고서는 학교에 등교하며 교문을 통과하던 그 찰나의 느낌들은 지금도 생생히 내 몸에 남아있는데 너무도 자유롭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은 그 때의 그 느낌들이 도무지 되살아 나지가 않는다. 금기 시 되었던 그 짧은 자유들은 그때가 아니면 빛을 바라지 못하는 것처럼 <생물이 사라진 섬>에서도 그 내용을 마주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일까, 이 이야기에도 푹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느 곳을 펼쳐도 모든 곳이 통해 있고 모든 것들을 동하게 하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이미 나의 손은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했지만 그가 알려준 책들을 통해서 이 기분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그가 베였던 책들이 나에게도 베이길 바라며 다음 책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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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화를 읽는다면 / 김진애, 고민정저


 

 

독서 기간 : 2014.06.1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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