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 기쁘게 살아낸 나의 일 년
수전 스펜서-웬델 & 브렛 위터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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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서 막연하게 그려보기는 하지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인들에게는 그 안타까울 날들이 도래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그 끝은 언제나 뿌옇게만 보이곤 한다.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내가 속한 우리 안에서는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려짐에 따라 그 먹먹한 이별의 순간이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은 살아있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소망일 것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인 수전 스펜서 역시도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로서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에게 오늘은 어제와 같이 주어진 평범한 나날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들이 주는 따스한 순간들이 있었고 그러한 순간들은 오늘을 넘어 내일, 모레, 글피까지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그저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는 당위적인 문제였고 그녀에게 내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러기에 그녀는 아직 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아직은 가야 할 날들이 많은 엄마이자 아내였던 것이다.

 그렇게 매일을 평범하게 지내고 있던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갑작스런 병마였으며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그 병은 그녀의 삶을 좀먹고 있었다. 아직은 몇 십 년은 남았을 것이라 믿었던 그녀의 마지막이 이제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좌절보다도 남아있는 시간들을 그녀의 가족과 주변사람들과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 책은 무한한 슬픔만이 담긴 것이 아닌 그런 아련한 순간 속에서도 피어나는 먹먹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다.

 이 책은 질병과 절망에 대한 책이 아니다. 내 멋진 마지막 한 해의 기록이다.
 
내 자식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고, 비극을 맞닥뜨리고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선물이다.
 
기쁘게.
 
두려움 없이.
 
루 게릭이 운이 좋다고 느꼈다면 나도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래야 했다. –본문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만약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남아있는 그 시간들을 최선을 다해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당장 내일이 될지 몇 십 년 후의 내일이 될지는 모르지만, 태어나는 순간 모두들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제의 나는 또 하루를 허비하듯이 보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나의 마지막은 아직 한참 남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텐데 갑작스레 루게릭에 걸린 수전을 보면서 나는 나의 하루하루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분명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왜 자신이 이 병에 걸렸어야만 했는지 한탄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 끌어 오르는 분노와 두려움이 자신을 잠식하도록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고 그것은 그 어떤 눈물보다도 아련하게 다가왔다.

병에 걸린 뒤 나는 밤마다 생각에 잠겨 누워 있곤 했다. 이를 어쩌지. 그 사진을 찾을 수 있는사람은 나밖에 없고. 그것을 정리해서 라벨을 붙일 수 있는 사람도 더더욱 나밖에 없다. 아이들의 사진첩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나 밖에는.
 
당장 해야 한다.
 
지금 당장. 수전, 아직 할 수 있을 때.
 
나는 진단을 받은 뒤 여행과 더불어 사진첩 만들기도 버킷리스트에 올려두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여행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여행. –본문

별거 아니라고 느꼈었던 일상 속에서 그녀를 따라가며 보내게 되는 하루하루는 너무도 특별한 순간들을 함께 하는 기분이었다. 분명 나에게도 있었을 시간이고 때론 너무 일상적이라 별다른 감흥 없이 흘러 보냈을 순간들을 그녀의 곁에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 매 순간이 놓쳐서는 안될 반짝이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는 물론 주변 지인들과도 함께 오두막에서 지내는 이야기서부터 여행을 떠나는 순간순간들을 보면서 분명 이 전에도 그녀의 삶 안에 있었을 모습들이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와 그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그래서 왜 하필 이러한 병마가 이들에게 도래한 것인지에 대해 그들을 대신해서 원망을 해보기도 한다. 아무리 원망을 한다고 해도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들이 함께 해 나가는 순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기적과도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내게는 오늘이 있다. 내게는 더 줄 것이 남았다. 끝이 다가오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이 훌륭한 보살핌을 받을 것을 알기에 내 마음은 더 없이 평화롭다. , 스테퍼니, 낸시가 아이들의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의 영혼을 돌봐줄 것이다. (중략)
 
나는 당신을, 내 아이들을, 우리가 즐기고 발견한 추억 전부를 두고 간다. . –본문

 그녀와의 시간을 앞으로 더 그려볼 수는 없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이 책 안에서 수전은 잠들지 않고 영원히 깨어있을 것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것은 아마도 그녀 주변에 있었던 무한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부분들이 몇 번 있었지만 그녀는 아마도 모든 독자들을 향해 웃고 있을 것만 같다. 자신을 세상과의 작별을 고한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계속 함께 하고 있다고 말이다.

 

아르's 추천목록

 

잠수복과 나비 / 장 도미니크 보비저


 

 

독서 기간 : 2014.06.05~06.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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