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내가 아빠가 돼서 - 아빠, 그 애잔한 존재들에 대하여
유승준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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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제목을 보고서는 순간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원하지 않는 순간에 아빠라는 직위를 얻은 남자의 고백을 말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서부터 과연 이것의 나의 아버지의 고백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처량하면서도 서글펐을까, 라는 마음이 일었다.

다행히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아버지가 되어 서글픈 그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아버지가 되어 점점 더 강해지고 어른이 되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이 모두에게도 처음이고 낯선 경험이기에, 그리고 아빠라는 자리는 한 가정의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또한 가정의 축이기에 어깨의 부담은 그 누구보다도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전에는 그저 한 남자로서의 세상과의 결투였다면 아빠가 되는 순간 아이들까지 방어해야 하는 그야말로 슈퍼맨이 되야 하기에, 표지 속의 이 아빠의 모습이, 회피가 아닌 고난이 담긴 모습처럼 보여 아련하게만 느껴진다.

특히나 이런 문제를 별로 고민해보지도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아빠가 되어버린 신참 가장들, 활화산처럼 뜨겁게 사랑하는데 결혼해서 아빠 되는 일쯤이야 대수겠냐 자만하는 예비 아빠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데 아직도 아빠 노릇 하는 게 너무 버겁고 힘겹기만 한 초보 아빠들, 그리고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애태우는 젊은 엄마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본문

책이나 영화 속의 아빠의 모습들을 통해서 현 사회에서 원하는 가장의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그 안에서 다양한 아빠들을 마주하면서, 그들이 안고 있는 모습은 우리네 아빠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구나, 하면서도 내가 마주하지 못했던 다른 아빠들을 보면서 녹록치 많은 않은 그들의 삶을 통해 ‘아빠의 삶’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이전에 이미 보았던 영화나 책들도 있고, 들어는 봤지만 보지 못한 것들, 그마저도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는 지도 몰랐던 책과 영화들이 이 안에 가득 담겨 있는데 아빠에 관한 이야기가 이토록 많았던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너무 익숙해서 존재의 가치조차도 별 다른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주하게 되면서 父情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에 대해 하나씩 그 형태들을 마주하게 된다. 무뚝뚝하고 별 다른 표현도 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아빠, 보다는 엄마, 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던 나에게 보여지는 것이 아빠의 전부가 아님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를 이전에 여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잠깐 마주한 뒤 꼭 봐야겠다, 해 놓고서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탄광에서 하루하루를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생존을 위한 투항 이외의 사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열 한살이 된 빌리 엘리어트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고 있고 아버지와 형은 탄광을 상대로 파업을 벌이도 있다.

하루살이와 같은 이들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희망의 빛으로 아버지는 빌리가 권투선수로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을 것이다. 이 지리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닌 더 빨리 날아오를 수 있도록,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았던 알리와 같은 유명한 권투선수가 되어야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아들 빌리 엘리어트에게 알려주고 그 길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겠느냐 만은 빌리에게는 권투보다는 다른 꿈이 그의 눈앞에 아른거리게 된다. 바로 '발레'였는데 탄광 마을의 권투 선수는 어느 정도의 맥락이 이어지는 듯하게 보이지만 재가 가득한 탄광 속에 발레라는 꽃이라니.

그야말로 말도 불가능한 이 조합의 꿈틀거림이 바로 이 영화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그가 발레를 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빌리가 발레 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 마리의 나비와 같이 춤추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그는 직감적으로 아들이 발레의 천재라는 생각이 스쳤고 그 생각이 스치자 마자 이후에는 반대했던 발레리노로서의 성공을 위해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아들을 위해 온전히 내어 주고 있다.

신기한 듯, 어색한 듯, 초조한 듯, 겸역쩍은 듯, 그러면서도 설레고, 기쁘고 뭔가 확인에 찬 것 같은 그 얼굴에서 나는 아빠의 진정한 표정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아빠의 얼굴이었다. 가난하더라도, 비록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해줄 수 있는 게 변변치 않다손 치더라도, 아들의 손을 잡고 같은 길 위에 서 있는 것, 그것이 아빠가 있어야 할 자리다. -본문

백조의 호수 노래에 맞춰 공연을 하고 있는 빌리는 보러 가기 위해 아빠는 형과 함께 공연장을 찾게 된다. 발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그지만 자신의 아들이 자리하고 있는 그곳만큼은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그려보는 것 만으로도, 세상 그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이자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를 위해 빌리는 더 없이 행복한 날개짓을 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찾아보지 않았을 <파 송송 계란 탁>을 보면서 물론 제목은 몇 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굳이 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이 영화 속에서 뒤늦게 철이 드는 아빠 또한 마주할 수 있다.

자유로운 영혼이나 다름없이 지내던 대규 앞에 어느 날 한 아이가 갑작스레 찾아오게 된다. 자신이 대규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있는 인권을 몇 번이고 돌려 보내려 하지만 아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함께 국토대장정을 완주하고 오면 그의 곁을 아무런 조건 없이 떠나겠다는 약속을 믿고서 이들은 이별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음주가무를 즐기며 다음날이 되면 헐떡거리는 대규는 한 걸음씩 발을 옮기면서 과연 이 아이가 내 아이가 맞을지에 대한 의문을 안기도 하고 대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한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함께 하는 날들이 오래될 수록 결국 그들에게는 서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시련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게 되는데, 그 사건을 이후로 그들은 몇 십 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진정한 부자 지간의 정을 나누게 된다.

"미안하다."
아빠의 따뜻한 등에 업힌 인권이 대답한다. 파리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
괜찮아, 벌써 다 잊었어."
아빠와 아들의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함께 걷고 땀을 닦아 주며 먹을 것을 마련하고 휠체어를 밀며, 등을 내어주고 등에 업혀가는 동안 지난 세월의 앙금이 다 녹아버린 것이다. -본문

이 책 속의 아빠들을 보노라면 문자 그대로 완벽한 그들의 모습 보다는 뭔가 하나 둘씩은 부족한 우리의 모습을 한 아빠들이 등장하고 있다.

<7번 방의 선물> 속의 아빠는 우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지능을 다소 떨어지지만, 그 어느 아빠보다도 딸에 대한 자식 사랑만큼은 깊은 모습이었으며 세상이 바라보았을 때는 더 없는 악당으로만 비춰지는 영화 <나는 아빠다>에서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아빠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마이파더>속의 아빠는 제 자식이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은 아들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그 모습을 보노라면 아빠, 라는 그 단어에서 전해지는 묵직하면서도 그들이 우직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수 많은 영화와 책 속에 등장하는 아빠들의 모습은 우리의 아빠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들이 오늘 하루, 우리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그들은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지나고 있을지, 마음이 아련해지게 된다.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든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향하고 있을 것이다. 아빠에게도 행복한 하루가 도래하길 하라며,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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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하차 / 기카무라 모리저

독서 기간 : 2014.01.27~01.2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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