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여 바다여 1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0
아이리스 머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찰스라는 인물을 마주하는 동안 전에 보았던 내 아내의 모든 것이란 영화 속 류승룡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보였다. 첫사랑이 세상을 떠난 이후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했던 장성기라는 역할을 맡았던 그는, 찰스라는 인물처럼 희대의 카사노바였지만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었다. 그저 전리품과 같이 잠시 스치는 여인들은 그를 잊지 못해 매일 그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그는 매몰차게 그녀들을 돌려보낸다. 사랑이 아니니 돌아가라며 말이다.

 다만 찰스와 장성기의 차이가 있다면 첫사랑이 현재까지 그들의 곁에 존재하느냐의 차이였다. 장성기의 첫사랑은 이미 세상의 떠난 상태였다면 찰스의 첫사랑 하틀리는 어느 순간 그의 눈 앞에 나타나게 된다.

 바다가 근처, 바위 꼭대기에 있는 슈러프 앤드라는 집에서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찰스의 모습을 보면서 사실 처음에는 얼마나 묵직하면서도 담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하는 모습을 기대했었다. 무릇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의 지혜와 삶을 관통해 보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 속의 찰스는 그러한 깊이라기 보다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것을 제 멋대로 바라보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분히 좋은 의도로 한 일들이 타인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 지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라는 것 역시, 나에게는 사랑이기에, 상대방에게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이 사랑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때론 그것이 스토커와 같은 두려움으로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짝사랑이라는 단어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혼자 하는 외톨이 사랑은 상상 속에서 완벽한 모습을 구현할 때도 있고 그 어느 때보다도 비참한 장면을 만들어 놓기도 하기에 혼자서 하는 사랑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이 짝사랑이라는 것이 도를 지나치게 되어 그 선을 넘게 되는 경우, 모든 것을 자신의 판단 하에 상대는 무조건적으로 나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하는 행동은 감정의 표현을 넘어 폭력이 되기도 한다.

 회고의 순간 그의 손끝에서 나열되는 화려했던 찰스의 전성시대의 이야기들을 보면 (비록 나이가 든 현재 역시도 그는 계속해서 전성 시대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무용담과 같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 심지어 남자까지도 그를 마음에 담아두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사랑은 바로 첫사랑이자 결혼을 약속했던 하틀리뿐이었다.

 정말 그것이 이유였나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은 런던으로 갔어요.”

 그래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고, 난 당신을 버린 게 아니라 항상 당신만 생각했고 날마다 편지를 썼다는 건 알잖아요. 다른 남자가 있어서 그런건 아니였죠? 그 남자 때문은 아니었겠죠?” (중략)

 그때 그를 알고 있었나요?”

 그건 상관없는 일예요.”

 상관이 있고 말고요. 아무리 사소한 일들이라도 모든 상관이 있으니까 다시 찾아내고 주워 모아 부활을 시키고, 과거를 다시 살아 그것을 순수하게 깨끗하게 만들고, 마침내 서로 구원을 하고 상대방을 다시 완전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겠나요…..” –본문

  열 여덟 살이 되면 결혼을 하자던 약속이 무색하게 갑작스레 사라져 버린 그녀는 어느 새 노년이 된 그의 눈에 띄게 되고 그때부터 찰스는 다시금 하틀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게 된다.

 과연 완전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찰스가 생각하는 완전함은 그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하틀러를 벤으로부터 구해내어 자신과의 사랑을 점철시키는 것이었으며 그리하여 그는 하틀러가 자신과 헤어진 그 순간부터 불행했으며 현재도 불행한 삶 속에서 옥죄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라는 그 틀이 무궁무진 할수록, 그 생각에 감정이 더해져 사랑이라는 형태로 변모되어 갈 때, 미숙한 사랑은 그것마저도 사랑이라 표방되어 상대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주게 된다.

 어느 날 밤 누군가에 의해서 떠밀려진 절벽에서 바다로 빠지는 순간, 그리고 하틀리의 아들이 주검으로 발견된 그 때가 되서야 찰스는 이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집착이자 폭력이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비록 변화가 있다고 해도 그 범위는 백만 분의 1밀리미터밖에 안 되리라. 가엾은 혼령들이 가버리면 평범한 의무와 평범한 관심만이 남는다. 인간은 조용히 살면서 자질구레한 좋은 일들을 하며 아무도 해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은 내가 할 만한 자질구레한 좋은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내일은 하나쯤 생각이 날지도 모른다. –본문

 자신만은 객관적이고 다분히 합리적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자기 중심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듯 하다. 내 눈에 비친 것이 세상의 전부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통념이라 믿으니 말이다.

 사랑이 아닌 질투와 분노를 기반으로 자신의 이 모든 광기의 태동이라는 것을 바다 속에서 마주한 바다뱀을 떠올리며 알게 되듯 과연 우리는 인생의 어느 순간이 실제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지, 그것이 너무 늦게 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독서 기간 : 2013.12.26~12.30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