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 - 역사 테마 소설집 바다로 간 달팽이 9
강기희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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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 제목만 보고서는 이 안의 내용을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벌레, 라는 곤충에 대한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우리네 역사 속에서 아스라히 사라진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과 같이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내일이 되면 적이 되고 마치 벌레와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을 빗대어 만든 제목이었는데 이것은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을 둘러싼 우리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바야흐로 2002년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붉은 악마의 물결을 뒤로 하고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그 존재를 드러내는 수많은 촛불들이 모여있다. 아직 그 꽃이 만개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아스라히 사라진 두 소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정치적인 접근들은 사실상 미군과 우리나라가 아닌 우리 국민들 간의 대치 상태를 만들었고 그 대치 국면에 있는 이들은 서로를 벌레처럼 인식하고 있었다.

 세상을 옳고 그름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권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현실, 그런 완강함으로 상식에 기초한 판단까지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그려 보인다. 자신과 다른 생각은 벌레 보듯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태도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열린 마음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본문

 이러한 사태는 비단 오늘날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도 마주할 수 있다. 바로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에서 인데 지금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평등사상에 입각한 그들의 외침인,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모토는 그 당시의 기득권층에게 있어서는 뿌리 뽑아야 하는 위험한 사상이었으며 휘청거리는 나라는 외세의 손아귀에 쥐락펴락하는 동안 동학의 농민들은 반란의 주역이자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동학당에서 뭘 배웠는가?”

사람은 태어남에 있어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배웠소.”

조선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척양척왜, 당신들이 조선을 떠나면 이루어질 것이오.” –본문

 이 모든 것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 했던 힘있는 자들, 혹은 이러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 하던 이들은 당시 힘없는 자들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함께 힘을 모아도 부족할 시간들 속에서 그들은 자국민들을 향해 총칼을 겨누었으며 그들 중 민보단은 동학을 넘어서 제주 4.3 사건에도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동생한티 그런 말 듣자고 허는 게 아니라. 고향 버리고 나가 불면 소임이 다 끝나는 거라? 내가 동생네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라. 고향이서 그 미친 바람을 겪은 사름이 어디 한둘이라? 오라방도 그때 산에 들어강 쫓겨 다니다 겨우 살아난 사름이라. 나도 자이 어멍네를 생각하민 가슴이 아픈 사람이라. 경해도 어떵혀. 고향 버린다고 잊어질 일이 아니면 서로 보듬고 곹이 살아야주.” –본문

지슬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된 4.3 사건은 제주라는 들 푸르고 아름답던 섬 안에 녹아있는 너무도 안타까운 사건을 알게 해주었는데,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발생된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그저 누군가의 어머니요, 아버지이자 자식들이었던 평범한 이들은 무차별적인 사태로 인해 희생당하게 되었으며 그렇게 사라진 이들은 소리소문 없이 암매장 되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국제법상 전쟁 중일지라도 금지하고 있다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의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 4.3에서도 자행되었다. 북촌리 주민 300명이 집단 학살된 사례가 그것을 말해 준다. 제주 땅을 밝아 보면 안다. 뼈아픈 학살의 흔적들이 그 아름다운 섬 곳곳에 남아 있음을. 4.3으로 인해 제주도민 3만여 명이 희생되었고, 전통 가옥의 90퍼센트가 소실되었다. –본문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속에 스며들어 있는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모른다고 한들 사는데 별 문제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꽃이 만발해 있는 그 들녘에는 아무 이유 없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단 이름 모를 누군가의 한이 담겨 있고 누군가는 그 꽃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겪은 것이 아니기에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전의 그들이 지나왔던 길을 통해서 현재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기에,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담기에는 너무도 아담해 보이는 책은 그 안의 사건들을 되살아 내는 생명력을 띄고 있다. 죽은 역사를 통해서는 그 누구도 오늘을 살고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책을 통해 우리를 되찾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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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 / 신병주, 노대환저

 

 

 

독서 기간 : 2013.11.0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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