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노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모든 것에 덤덤한, 아니 무심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필립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저 무엇 하나 특이한 것 없는, 자신과는 상관 없는 또 다른 세계일 뿐이다. 현재 그의 눈앞에 비쳐지는 것들은 그저 타인의 것들일 뿐이며 자신의 삶마저도 타인의 것인 냥 일관된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그를 보면서 필립의 곁에 다가서기만 해도 그 자욱한 무기력증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에펠탑의 철 구조물을 기듯 올라갔다가 굴러떨어지듯 내려오는 여행객들은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제멋대로인 듯한 무기력한 걸음걸이란 사실 다른 사람들 눈을 속이려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다, 곧장 다리 끝까지 걸어가서 지하 철로가 파놓은 시멘트와 돌과 추철의 거무스름한 낭떠러지에 닿아야 한다. –본문

 그의 무심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이 성격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와의 서먹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모자 사이라고 하기에는 그 관계의 끈은 너무나도 헐거웠으며 그 둘간에는 그 어떠한 유대관계도 살펴볼 수가 없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필립의 삶에 공존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단정짓지만 그 유일한 자신의 삶 속에 드리운 어머니와의 시간들은 타인과의 시간보다도 버겁기만 하다.

 그렇기에 필립은 자신의 어머니의 말마따나 마치 똥을 싸 지르듯 떠나 버린아버지에 대해서 원망 보다는 오히려 이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자를 위해서 넥타이 공장을 남겨 놓고 독신으로서 성품이 올바르다고 생각되는토니 소앙을 남기고 떠난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떠난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정상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예술가나 학자, 창작가가 그들의 허약한 신경조직 때문에 고통을 받고 미치광이나 기괴한 인물로 통한다면 예술이나 창작이란 그들에게 알리바이로 쓰인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한다. (중략) 나로 말하자면 뭘 상상하거나 내 생각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는 데는 전혀 무능하기 때문에 감정 또한 어쩔 수 없이 메마르게 되었다. 그림 하나 감상하는 데도 무지막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니 그 결과가 어떠했겠는가? –본문

  그러한 그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은 바로 폴라를 만나서부터이다. 모든 것이 예전의 고착상태 그대로 있는 그에게 있어 2년 째 만남을 이어온 폴라와의 관계는 그에게 새로운 통로가 되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에게 덩그러니 남겨진 방직 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모든 사람이 칭찬해 맞이 않던 전쟁 속 영웅이자 레지스탕스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이제 묻고자 하는 것이다.

 마흔이라는 세월 속에서 그는 이러한 공상 속에 살고 있었을 게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만 같은 그의 지지기반이 있기에 필립은 더 이상 진보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도 별 문제 없이 지내왔다. 그가 굳건히 믿었던 그의 과거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마주하는, 아니 엄청난 비용을 주고서 그가 마주한 것은 초라하다 못해 남루하고 추한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예상했던 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 속 소설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잔혹한 이야기인데, 필립이 마주했던 그 현재의 모습에서 덜컥하니 머물러 있는 것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폴리의 말처럼, 과거가 아닌 현재를 마주하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필립이 그의 아버지를 본 그 자리에 멈춰 있다면, 또 다시 그는 그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할 테니 말이다

  

아르's 추천목록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저

 

 

 

독서 기간 : 2013.10.26~10.29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