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 갔을까
류민해 지음, 임익종 그림 / 한권의책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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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저자에게는 송구스러운 이야기겠지만, 우매하게도 나는 책 제목만 보고서는 대충 어떤 내용일지 감이 잡혔다. 주변 지인들에게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결혼 후 여자들이 느끼는 가정과 사회 속의 양분된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는 철인을 원하는, 즉 무척이나 가정적이면서도 사회에서는 또 일 잘하는 커리우먼을 원하기에 도무지 하나의 몸과 마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담겨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다시금 이야기하지만, 저자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을 만만하게 보았다. 책 제목도 그러하고 문체에서 풍기는 것이나 그림도 그렇고 그저 편안하게 보면 되겠거니, 하고 읽어 내려갔는데 읽는 동안에 , 이런 책이었구나.’ 라는 생각과 역시, 나의 혜안이란 것은 여기까지구나.’라는 반성을 다시금 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나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만약 버지니아가 런던행 기차를 탔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남편이 몇 분 늦게 기차역에 도착해 아내가 탄 기차의 뒷보습만 바라봐야 했다면 버지니아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도 지금 이대로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린다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질까?

제발 나를 놓아줘!’라고 말하기엔 한 게 없다. 죽음 같은 삶이라기엔 행복한 기억이 참 많다. 벌써 우울해지기에는 하고 싶은게 많다. 그러니 살아야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봐야지.-본문

아직 건너지 않은 강, 결혼이라는 그 제 2의 인생의 도입을 건너보지 못했기에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나는 100%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로서, 그리고 같은 30대로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일부라도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녀나 나나 같은 하늘아래 살고 있는 여자이기에 우리의 삶은 평행이론처럼, 나는 그녀와 점점 비슷해 질 것이고 이미 그녀는 그 길을 나보다 먼저 가고 있으니 함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는 아이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전업주부로서 살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그만의 직책이 있었을 터인데 가정에서 그녀는 한 남자의 부인이자, 아이들의 엄마이며, 사회에서는 아줌마통용되는 그 자리에 서 있다.

당신은 단란한 가정의 수호신, 두 아이를 낳은 위대한 모성, 가정소비의 주체, 국가경쟁력의 허리, 한 집안의 며느리 그리고 한 남성의 아내이자 아이의 인성과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결정권자라고. 그 많은 역할 속에 나는 없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도 없다. 어쩌다 보니 역할만 있고 나는 없는 아줌마가 되었다. –본문

나는 없고 역할만 가득한 아줌마로의 삶 속에서 그녀가 그녀를 찾기 위해 찾은 것은 바로 이었다. 물론 결혼 하고 나서는 이러한 책 읽는 것조차 때론 사치라며 핀잔을 듣는 일들이 일쑤 이지만 그녀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소위 위험한 여자로서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물음표가 가득한 날들이지만 엄마는 어떠한 문제든 척척 풀어나가야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라면 좋겠지만, 모든 인간에게 처음인 문제들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난제를 받아 드는 순간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나의 모습이라면 그녀는 그러한 난제의 해답을 책에서 힌트를 얻고 지혜를 얻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공주와 왕자로 태어나지만 그들의 부모가 입을 맞추어 개구리로 변하게 한다. (중략)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언어는 대부분이 뒤죽박죽의 개구리 언어다. 평소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답습하고 있는 언어는, 대부분 너무 부정확하거나 난삽하거나 낡거나 뻔한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모적 상투적 관습적 관용적 표현들뿐이다. 그 바람에 우리가 삶에서 겪는 실질적 느낌과 정서가 이들 표현을 통해 살아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왜곡되거나 일축되거나 무시되어 버린다. –본문

읽는 도중에 소름이 끼쳤던 부분인데, 평소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그저 한낱 말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 새 무기로 변해 누군가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을 내어 놓고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말의 무서움에 대해서, 나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개구리 언어로 사람들을 아프게 했을 지에 대해서,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을 개구리로 만들어 버렸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함이 밀려 들었다.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 없이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내가 한 번쯤은 고민해 보았던 이야기들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연애에 관해서 그녀가 깨달음을 얻은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는 이번 기회에 바로 구매해 버렸으니 그녀의 필력에 다시금 또 책이 한 권 쌓이고 맞아, 맞아! 를 연발하여 극한 공감을 하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어떤 이야기인 줄 알겠어! 라고 자부했던 나는 금새 마음을 다잡고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을 보고 배우고 끄덕이고 있었다. 또 그녀는 이후 어떠한 삶을 이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그녀가 책 읽는 위험한 여자로 살아가리라는 것이다. 나 또한 그녀처럼, 언제나 그러한 삶을 좇아보려 한다. 아직은 아등바등 하며 책과 일상에 풍덩풍덩 빠지기도 걸려 넘어가는 일도 왕왕 있다만, 그래도 계속해서 책과 함께 가 보련다.

그렇기에 나도 해보기로 했다. 어떻게든. 대단할지 안 대단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제보다 조금 나아질 수만 있다면 해 본 다음에 포기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나는 아직 어떻게든 안 해봤다. 인생이 생각보다 길다면, 덤이라 생각했던 부분이 진짜 인생 아닐까? 사실은 내 나이 서른여섯이어서 다행인 것은 아닐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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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고전에게 인생을 묻다』 / 이경주, 우경임저

독서 기간 : 2013.08.26~08.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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