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철학자 루푸스 - 앞만 보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던지는 유쾌한 돌직구
안드레아스 슐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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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어느 날 갑자기 말하는 고양이가, 아니 언제나 그들은 인간에게 말을 해 왔지만 고양이들의 말 따위는 무시하던 오만한 인간 앞에 고양이 루푸스가 나타난다. 윤년인 크리스마스 이브날, 일요일날 태어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는 고양이의 음성을 저자가 듣게 된 것은 행운일지 모른다. 진정 그가 루푸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피식 하는 한 번의 웃음과 함께 좀 더 부풀어 오른 책에 대한 호기심에 얼릉 책장을 넘겨 읽어보게 만든다.

책의 초반에 애완동물을 키우다, 사다, 갖다 라는 식의 표현을 종종 하는 우리에게 있어 이 단어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지문이 등장한다. 공간 안에 함께 한다는 이유로 혹은 애완동물들에게 먹을 것과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이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는 루푸스의 철학은 인간의 시각이 아닌 고양이의 시각이기에 색다른 재미를 전해주고 있다.

나는 몇 달 전 우연히 고양이 한 마리를 갖게 되었다. 사실 '갖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그동안 나는 고양이와 관련해, 특히나 이 수고양이와 관련해 어떤 '소유권'이나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음을 힘들게 배워야 했으니 말이다. -본문

어릴 적 단 몇 개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에는 마당에선가 키웠던 것으로 생각이 드는데 강아지와 같이 목줄을 따로 하지 않고 키워서 그런지 그 녀석은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다. 잠깐이나마 함께했던 고양이에 대한 기억은 그저 예쁘다 혹은 혼자 있을 때도 그다지 심심해 하지 않았다 정도였다. 강아지보다는 독립심이 뛰어나다, 는 것이 고양이들의 기본적인 성향으로만 알고 있는 나에게 루푸스는 자신들이 잠을 중요시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루에 반 이상을 깊은 잠에 들어 있는 고양이들의 실태를 보며 인간은 게으르다, 무능력하다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이지만, 루푸스에 눈에 비친 잠의 소중함은 다른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다.

깨어 있는 동안에 허튼 일을 하는 것보다는 또는 일부러 잠을 쪼개어 몽롱한 상태의 지속으로 말미암아 사고를 내는 것보다는 깊은 잠을 통해서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잠을 줄여서 좀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고양이처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는 게으름을 배우라고 하는 이들은 없었으니, 그 어디서도 마주한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에 눈이 크게 떠진다.

잠을 잘 때는 선인과 악인의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잠을 자는 인간은 죄를 짓지 않아요. 그 사실엔 의심이 없어요. 고양이들 생각에 따르면, 잠은 자연히 허락하는 가장 커다란 선물 중 하나예요. -본문

무엇보다도 인간의 관점이 아닌 고양이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는 것, 굳이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어찌되었건 늘 상 있었던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도로서 우리를 바라보는 일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이 다른 이들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나 압박으로 가해지는 것에 둔감해지고 있을 때 루푸스는 그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인간을 인간의 눈이 아닌 제 3자의 모습으로 바라보며 충고를 하고 있다.

우리 고양이들은 또한 상대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지만, 그 상대가 우리와 똑같이 느끼고 행동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잘 알아요. 만약 그렇게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기적일 거예요.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어요. 사족이지만, 무언가 기대할 수 잇는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닐 거예요. -본문

인간이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계속된 사냥을 해나갈 때, 예를 들어서 샥스핀을 맛본 인간이 상어 지느러미를 구하러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먹는 것에 대한 행복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지만 그것이 자신이 아닌 타인들의 행동일 경우에는 식탐이라 부르는. 마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처럼 언제나 나에게만 느슨한 잣대를 드리우는 인간의 모습에 루푸스는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인간이 자신은 미식가라 부르면서 다른 이는 식탐을 한다고 폄훼하는 것은 참 우스워요. 우리가 가장 최상의 것, 완전한 것마을 추구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지요? 우리는 오래전 수고양이 오스카 차일드가 내세운 단순한 모토에 따라 살아가요. 그는 '내 취향은 단순하다. 난 최상의 것으로만 만족한다.'라고 했지요. -본문

인간에 의해 차려진 접시 속 사료를 마주하면서도 아무런 생각 없이 꿀꺽 먹어 삼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의 점검은 필요하다는 루푸스의 말에 뜨끔하게 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당연하다, 라고만 생각했지 그러한 당연함 속에 자유의지에 대해서 가지는 권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손에 의해서 결정된 것들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생각 없이 따라 흐르고 그리고 나서 내가 원하던 삶은 이게 아니야! 라며 뒤늦게 후회하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선택하고 그 결정에 책임질 수 있는. 마치 내가 루푸스라면 매일 같은 사료를 당연시 받아 먹는 것이 아니라 이게 싫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를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일생 동안 자연이 우리에게 부과해 준 필연성만을 따른다면, 우리는 인과 법칙만 따르게 될 거예요.그러면 우리는 개성이나 이성이 필요가 없지요. 우리는 자연이 끝을 잡아당길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꼭두각시나 다름없을 거예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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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 최재천저

독서 기간 : 2013.07.25 ~ 07.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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