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워낙 좋아해서 정규 방영시간을 놓치는 경우 다운을 받아서라도 보는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참 특이해’라는 말을 연발하곤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사회에 나오고 나서도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현장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 쪽으로의 전향해 볼까도 생각을 했으니, 또래 여자들의 성향과는 좀 다르긴 한 듯하다. 다큐멘터리가 왜 좋아? 라고 묻는 질문에는 딱히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픽션이 아닌 진정성이 있는 세계이자 그곳에는 언제나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찾아보는 것 같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그저 하나의 관찰자에 지나지 않으며 동물의 세계를 보노라면 그들도 우리만큼이나, 때론 우리보다 훨씬 더 이 지구상에서의 적응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다.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서 편안히 모니터만으로 마주할 수 있으니 그 매력에 빠질 수 밖에. 꽤나 오랜 시간 다큐멘터리를 시청해 온 애청자이다 보니 TV 프로그램이나 책이나 관련된 내용들을 보면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해서 보게 되는데 이 책 또한 그런 느낌이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끝까지 한 번에 읽게 하는, 다큐를 뛰어 넘는 다큐의 기록이었다. 황제펭귄의 내용에 대해서는 몇 번 본적이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그들의 서식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고, 황제펭귄의 새끼들이 군집하여 있는 모습도 그렇고, 그래서 인지 표지만으로도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있는 남극은 영하 60~70도를 밑도는 곳이다. 황제펭귄이 자신이 낳은 알조차도 외부에 노출되어 있을 경우 단 분이면 얼어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환경을 그들을 자신들의 은신처로 삼아 지내고 있다. 이 자발적 유배를 택한 주인공은 남극의 신사 ‘황제펭귄’입니다. –본문 대체 왜 그런 것일까? 너무 추운 것이 누구에게는 피해야 할 이유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본문 이 별 거 아닌 듯 한 단순한 질문이 내 뇌리에 깊숙이 꽂히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다큐를 보면서도 생각지 못했던 질문. 왜 그들은 이 냉혹한 현실을 그들의 보금자리로 한 것일까. 실제로 현장에서 있어보니까, 내 한 몸만 고통을 감내하면 새끼를 키우기에 안전하다. 거기는 너무 추워서 바이러스도 안 산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 인내하는 거다. –본문 암컷의 개체수보다 수컷의 개체수가 확연하게 적은 황제펭귄. 아마도 수컷의 임무가 막중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라 한다. 부성애가 그 어떠한 동물보다도 뛰어난 수컷 황제펭귄을 보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알을 낳는 암컷, 그리고 그 이후부터 3~4개월가량 꼼짝 않고 알을 품는 수컷. 알을 품고 있는 기간 동안 수컷은 먹이를 먹을 수도 없다. 그저 주변의 얼음만으로 간신히 목을 축일 뿐이다. 유독 부성애가 뛰어나기로 유명한 수컷의 뱃가죽에는 ‘배란낭’이라는 주머니가 있습니다. 마치 자궁처럼 부화를 위한 최적의 장소가 수컷의 몸에 있는 것입니다. –본문 가만히 서서 암컷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수컷은 때론 그 자리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한다고 한다.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 선택한 최악의 조건이자 최선의 선택이었던 남극행. 그들은 그 곳에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목숨 걸고 자식들을 지키고 있다. 예전에 ‘줄탁동시’라는 영화 제목을 보며 이게 무슨 뜻일까 라며 갸우뚱하고 지나갔었는데 다음과 같은 뜻이란다. 병아리가 껍질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쪼는 것을 ‘탁’이라 하는데, 이 둘이 함께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는 뜻의 고사성어가 ‘줄탁동시’입니다. –본문.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새끼는 새끼 나름대로 또 부모는 부모 나름대로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야만 빛을 볼 수 있는 그 위대한 순간. 이 탄생의 신비로움은 황제펭귄을 시작으로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하고 부모님을 떠올리게 한다. 2+1이 되기까지. 그들은 부모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을까.
어미가 알을 낳고 먹이를 찾아 바다로 향한 4개월이 지난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수컷과 암컷의 상봉은 짧은 시간 동안 이뤄지고 수컷은 다시 굶주린 배를 채우고 새끼를 위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떠나게 된다. 오롯이 새끼를 위한 삶. 그것이 그들이 남극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황제펭귄은 번식을 위해 얼음대륙에 찾아왔습니다. 새끼가 아니라면 이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딜 이유가 없지만, 새끼를 낳기 위해서라면 이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몇 번이고 더 겪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본문
점차 부모의 모습을 닮아 간다는 것은 이제 부모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이다. 새끼로서의 삶은 고작 6개월 남짓인 이 황제펭귄은 자신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또 다시 그들의 삶을 재현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별한다는 것 그리고 떠난다는 것 –본문 언제나 다큐를 보면 울컥하게 하는 그런 느낌이 있다지만, 책을 통해서 보는 그들의 삶은 영상으로 보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마음을 뒤흔들게 한다.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면 그들의 시작이 끝을 향할수록 그들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페이지를 뒤척이게 된다. 자신의 새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걸고 남극으로 향한 그 뒤뚱거리는 발걸음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부모란 그런 존재인가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모든 것을 주고 내달릴 수 있는 존재. 처음엔 황제펭귄의 삶에 대해 빠져들다가 또 그 평행선 상의 우리네 삶의 모습도 바라보게 된다. 남극처럼 시린 바람은 없다지만 그 만큼이나 매서운 사회 속에서 우리를 보듬어 주시는 부모님. 그들 또한 이 혹독한 세상에서 우리를 지키며 뒤뚱거리는 그들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