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앞에서는 언제나 무릎을 꿇게 된다 - 천양희, 시인의 채근담
천양희 지음 / 모루와정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힐링이 대세라고 이야기들 하는 요즘을 바라보면 모두들 너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터라 잠시도 쉬어갈 틈이 없는 듯 하다.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24시간 내에 경쟁이라는 끝없는 사각링 링에 던져져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만 하기에 초등학생부터 직장인들까지, 아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급박한 하루를 따라가기가 바쁠 것이다.

 

 젊을 때 혜성처럼 나타났다 빨리 사라지는 것보다 나이 들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일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처럼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잘 끝맺는 것도 없다. 앎의 가치는 단순히 아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앎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다. –본문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저자인 천양희씨는 현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너무도 느린, 느리다 못해 도태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남들과 비교해서 달팽이보다도 느릿한 세월을 더디게 지나온 자신의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련만, 그는 18년만에 첫 번째 시집을 내놓으며 그 어떠한 불평 불만도 없었다. 채근담을 만나 배웠던 지성과 행동의 일치를 실현시키며 남들의 눈에는 비록 늦깍이일지 모르나 그는 오래 기다린 사람에게 오는 기회를 실감하며 18년만의 도래한 첫 탈고의 기쁨을 더욱 달콤히 만끽하고 있다.

 

저자의 그 정신이 오롯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어서인지, 사실 책 자체의 두께나 그 안의 내용은 그리 많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빨리 읽어야지하고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는 순간 그 안의 내용은 그저 글자로만 남아있었다. 분명 읽었는대도 불구하고 아무런 내용이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아 당황하면서 앞 페이지로 돌아가기를 몇 차례 한 결과, 천천히 음미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가야만 그 안의 문구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고 생각들이 두둥실 떠올라 내 안으로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수평선을 한번 바라보라, 수평선을 보다 보면 수평한 것의 평등함을 알게 되고, 넓은 것이 높이와 깊이를 다 포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물결이 바다를 물보라 치게 하듯 실패가 삶을 굽이치게 하지만, 파도가 바다를 깨우듯이 실패가 삶을 깨우기도 한다. –본문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구이다. 텔레비전 스크린 속으로 혹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가끔은 실제로 수평선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단 한번도 그 안의 광활한 세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저 바다에 왔구나, 일상에서 해방되었구나, 라는 생각에만 빠져 그 순간의 광경만 눈에 담기 급급했는데 그는 수평선 안에서 삶의 또 다른 진리 하나를 꼬집어 낸다. 바다의 수심을 제 각각이고 수 많은 암석들이 있음에도 넓은 바다를 두고서는 그들 모두 평화로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리는 새장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 매달려 새장처럼 흔들린다. 마음이 새처럼 자유롭지 못하면 몸은 닫힌 새장과 같다. –본문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갖고 여유를 가져보자던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자꾸 속도를 내지 못하여 안달하는 내 모습을 보며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집어 들기 시작한 책 안에서 또 다시 울타리를 만들어 종종거리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 참 어쩜 이렇게도 내 스스로를 곤혹스럽게 해야만 오늘을 살고 있다고만 느끼는 것인지, 미련스러울 정도로 이 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내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새장을 치는 것도 새장 속에 갇히는 것도 순전히 내가 만드는 허상에 불과하다. 과연 언제쯤 자유로이 모든 것을 놓고서 유영할 수 있을는지. 아직도 바둥거리는 나를 보면 저자가 말하는 꿈꾸며 허상 속에 사는 것이 아닌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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