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이슬로 몸과 마음을 씻고 - 조선의 귀양터 남해 유배지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여름 휴가 기간 중에 어디로 가면 좋을까? 에 관해 여러 곳을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남해였다. 수려한 절경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서 있는 서울 한복 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 누구와도 마주치는 일 없이, 잠시나마 세상과의 단절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은 곳이었다.

 자유의지로 잠시 동안의 재 충전 시간을 갖고자 선택한 단절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시간일 것이다.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시끌시끌한 도심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세상과의 접선인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중심에 있던 자들에게 한 순간에 그들의 의지와 상관 없는 진행된 남단행은 만개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낙화시켜야 하는, 참담함의 나락이었을 것이다.

꽃은 중립이다. 사사로운 감정도 없고 국경도 없다. 자연에 핀 꽃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으며, 저마다 색다른 느낌을 준다. 꽃은 그저 꽃이다. 그러나 인간 세계로 오면 꽃은 꽃이 아니다. 인간은 중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마다 감정이 다르고 국경이 있다. 서양 사람들은 꽃말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했고,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군자, 절개, 충과 같이 관념화했다- 본문

교통이 발달된 지금도 수도권에서 3시간 반 가량을 가야 만나볼 수 있는 남해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대표적인 귀양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어디에도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관광 명소 중 한 곳인 남해가 그 당시에는 귀양지였다니. 위치는 그대로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일한 그 자리는 시시각각 자태를 변모시킨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가야 하는 이들의 발걸음이야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두려웠을 것이다. 격정의 시대이기에 그들은 풍향이 원하는 대로 변방의 섬 안에 그들 스스로를 가둘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세상과의 단절을 꾀한다 한 들 흐르는 바다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능하지만 그들의 잠재력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류의상, 이순신, 김만중, 김구의 이야기가 이 책 안에서 몇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전해지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알고 있었다. 적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정에도 있다는 것을, 무능하고 옹졸한 선조, 전쟁 통에도 당쟁을 일삼는 부패 조정이 그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중략)

전쟁이 끝나면 영웅이 아니라 역적이 되는 것이다. 전쟁 중에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뒤에 무엇을 바라고 살려주겠는가. 장군은 차라리 전쟁터에서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 – 본문

충렬사 경내의 나무는 살아있는 것을 포함하여 삭정이 하나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안에는 이수신 장군의 넋이 여전히 그 곳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제시대에 충렬사 옆 세워진 파출소에 부임한 일제 순사들은 채 1년도 되지 않아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죽어서도 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이수신 장군의 깊은 심혼은 임진왜란을 거슬러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관음포에서 해전이 벌어지고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하늘의 별처럼 떨어졌다. 뒷날, 별이 떨어진 자리에 사당을 세웠으니 곧 이락사. (중략)

 순신은 급히 부하 장수와 아들 회에게 명하여 방패로 자신의 몸을 가리게 하고 곡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

 돌아가셨습니다.”

 별이 떨어졌구나. 나라의 큰 별이 떨어졌구나!.”

 이락사는 별이 떨어진 자리다- 본문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자비로운 힘을 빌려 왜구를 물리쳐 보겠다는 뜻으로 지어진 관음포는 일제의 묘략으로 더 이상 포구가 아닌 내륙으로 변해버렸다.

 왜구도 사라지고 귀양자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래이지만 200여년 전 류의양이 남긴 남해견문록과 함께 남해는 여전히 이 곳에 모두의 발자취를 안고 있다. 단순한 여행의 한 페이지로 장식하기에는 남해에는 무수한 역사를 안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패전의 장소였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간마저 비켜간 하나의 장소였을 것이다. 전설이 아닌 역사로 남아있는 이곳을 한 장의 사진을 따라 거니는 것이 아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진정으로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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