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휴가 기간 중에 어디로 가면 좋을까? 에 관해 여러 곳을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남해였다. 수려한 절경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서 있는 서울 한복 판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그 누구와도 마주치는 일 없이, 잠시나마 세상과의 단절을 꿈꾸며 설레는 마음으로 집은 곳이었다.
자유의지로 잠시 동안의 재 충전 시간을 갖고자 선택한 단절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한 시간일 것이다.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시끌시끌한 도심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새로운 세상과의 접선인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중심에 있던 자들에게 한 순간에 그들의 의지와 상관 없는 진행된 남단행은 만개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낙화시켜야 하는, 참담함의 나락이었을 것이다.
꽃은 중립이다. 사사로운 감정도 없고 국경도 없다. 자연에 핀 꽃에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으며, 저마다 색다른 느낌을 준다. 꽃은 그저 꽃이다. 그러나 인간 세계로 오면 꽃은 꽃이 아니다. 인간은 중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마다 감정이 다르고 국경이 있다. 서양 사람들은 꽃말을 만들어 의미를 부여했고,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사군자, 절개, 충과 같이 관념화했다- 본문
교통이 발달된 지금도 수도권에서 3시간 반 가량을 가야 만나볼 수 있는 남해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대표적인 귀양터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어디에도 견주어도 빠지지 않을 관광 명소 중 한 곳인 남해가 그 당시에는 귀양지였다니. 위치는 그대로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일한 그 자리는 시시각각 자태를 변모시킨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가야 하는 이들의 발걸음이야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두려웠을 것이다. 격정의 시대이기에 그들은 풍향이 원하는 대로 변방의 섬 안에 그들 스스로를 가둘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세상과의 단절을 꾀한다 한 들 흐르는 바다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능하지만 그들의 잠재력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류의상, 이순신, 김만중, 김구의 이야기가 이 책 안에서 몇 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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