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시간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박경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자동으로 대하소설 토지의 저자, 소설가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문단 데뷔 이후에 꾸준히 시를 발표했다는 이 시집의 서문을 읽으면서도 내게는 소설가 박경리가 아닌 시인 박경리는 낯설기만 했다. 소설만을 집필했다고 알고 있던 내게 그녀의 시집은 신비로운 또 다른 세상이었다.

토지는 1969년에서 1994년까지 26년 동안 집필된 대하소설이다. 소설로 쓴 한국 근대사라 일컬어 진다. 그 세월을 지내온 사람이기에 20권의 대하소설은 어찌 보면 그녀가 겪은 인생을 축약해 놓은 것이라 할 것이다. 소설가 박경리가 살아온 한국의 역사를 조명한 것이 대하소설 토지라면, 이 시집은 그녀가 고백한 것과 같이 그 시대를 살아온 그녀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과 같은 선물이다.

먼저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의 담대한 고백이자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한 페이지의 길지 않은 문장으로 나열되어 있다. 토지와 같이 한 페이지 마다 가득히 글자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이 가볍다고 말할 수 없다. 툭툭 던져지는 한 마디 한 마디 안에 느껴지는 삶의 묵직한 무게가 아련하게 가슴에 박힌다.

20권이라는 대하소설의 토지를 보면서 나는 대체 이 책을 내가 사는 동안에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단순히 읽는 것에 대해 그 강한 기운에 눌려 감히 손을 대지 못했었다면 이 시집은 그나마 한번 즈음 그의 삶 속에 녹아 든 기나긴 여운과 함께 따스하면서도 가슴 아련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시에 대해 그 어떠한 지식도 그 안에 담긴 의미도 모르지만 읽는 내내 뭔지 모를 어렴풋한 그리움을 느꼈다. 더 이상의 그의 시를 만날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남긴 유대한 유산은 잠깐이나마 지친 일상에서 발견하는 수림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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