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 여행에서 만나다
양병호 외 지음 / 경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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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시가 나오는 페이지에는 어김없이 다양한 색의 펜이 등장하여 밑줄을 긋고 촘촘하게 필기를 하곤 했었다.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은유적인 의미와 은율, 심상, 주제 등을 따지다 보면 짧은 글 하나에 다른 문학 작품들보다도 방대한 것들이 담겨 있었고 그 잔해를 보면 새삼 놀라곤 했었다. 아마 그때부터 시는 그저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 듯 하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이해해야 하는 노고가 내겐 너무 버겁게만 느껴졌다.

이 책 안에서는 그 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 있다. 맛집 투어를 하듯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의 생가나 고향을 가서 그들이 남긴 시 안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다. 보는 내내 나를 그토록 압박했던 시의 함축적 의미보다는 그 안에서 자연스레 녹아있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기에 편안하게 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다. 입시를 위해 1점을 얻기 위한 시의 대면이 아니라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 가며 들리는 내음을 맡는 듯한 느낌에 참으로 편한 시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라는 틀 안에 담겨 있었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네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들이 쓴 글을 나는 현재 보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져 버려 아스라한 그 느낌만 쥐고 있는 느낌이다.

발전이라는 명목하게 이미 그들의 자리가 사라져 잡초가 자리를 대신 하거나 이미 현대의 장소로 탈바꿈 되어 있는 곳도 비일비재하다. 그들의 삶의 자취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시만 존재하는 현재는 영혼을 잃어버린 인간의 모습 일 것이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하게 흘러가는 것이 옳다고 그 흐름에 내 맡기고 있지만 우리는 그 안에 중요한 시간의 힘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라는 그 짧은 글 안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 있었고 그러기에 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시간을 돌아볼 수 있었기에 그들이 남긴 글 하나하나가 새로이 살아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나의 현재에도 한 줄기 빛이 드는 따스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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