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역사
데이비드 존스턴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하버드 교수가 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작년 한 해, 그리고 조금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열기를 띠고 있는 '정의'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기적이고 자신의 살 길을 우선시한다고는 하지만 이상적인 세상, 사회에 대한 염원 같은 것은 본능처럼 누구나 한 번 쯤 품어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태초부터 부여받은 본능인지 필요에 의해 대대로 학습되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올바름'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올바름,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이 그 시대의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정의되어 왔다는 것이다. 잉영생산물의 발생과 축적이 가능해지고, 지배-피지배 계급이 생겨나면서 초기의 정의는 온전히 지배자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권리, 정의 등에 대한 의식이 깨어나면서 상대적인 정의관, 절대적, 목적론적 정의관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런
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의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역사를 돌아봤을 때나 문화가 상이한 곳의 사례를 봤을 때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기준 같은 것은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정의의 역사라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정의라는 가치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의 역사다. 

   오늘날의 정의의 문제는 주로 경제적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왕이 지배하는 사회든, 민주정치가 발달된 사회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풍요롭고 다툼이 적다면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배계급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타락하면 어느 사회나 혼란과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도 거대자본의 장난으로 인한 정치적, 경제적 불균형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어 거대한 규모의 집단 지도 체제를 구축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조직이나 시간이 지나면 중심 인물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기존의 망하는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니까. 사실 이런저런 복잡한 얘기는 사실 다 곁가지에 불과하다. 정의, 평등 운운하는 것은 누군가는 더 잘 사는 것 같고 나는 그에 비해 못하다는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정의의 문제는 존재의 영역과 소유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면서 인간성을 지키는 동시에 돈 문제도 중요하게 여기는 이중적인 가치구조로 인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