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시 에디션 D(desire) 2
제임스 발라드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성적 흥분과 욕구 충족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테지만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과 현대 테크놀로지의 결합이 이처럼 끔찍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니 충격이었다. 자동차 사고를 통한 충격과 상처의 아픔에서 더 큰 성적 흥분과 욕구 충족의 희열을 발견한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이 문장으로는 이해가 되어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힘들고 불편해서 읽는 내내 거북하고 고통스러웠다. 

   이 소설은 스토리적인 재미보다는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인간의 욕망이 충족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특징인 작품이다. 사고 현장의 끔찍하게 훼손된 시신이나 남은 흔적, 파괴된 자동차 부품들의 형태를 보면서 테크놀로지가 개입된 인간의 성행위를 더 높은 단계의 쾌락의 열쇠로 여기고 심지어 그 궁극의 경지를 그런 상태에서 죽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습들은 인간의 자기파괴적인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 그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게 한다. 


   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욕구 충족의 수단들이 인간 대 인간을 넘어 인간과 기술의 산물들과의 결합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향후 인간의 건전한 욕망의 정의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해볼 수 있게 한다. 예전에는 금기시되었던 많은 것들이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극단적인 일들이 계속해서 새롭게 드러나고 있으니... ‘크래시’는 오늘날 우리가 점점 인간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요소들이 포함됨으로써 인간성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것인지를 묻고 있는 문제작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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