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개정증보판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이 시대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낸 시집으로 본격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된 시점 전후에 주로 쓴 시들이 담겨 있는 종교색이 짙은 시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딸에 대한 깊은 사랑, 지식인의 고독한 내면 등 예수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사연을 밝힌 이어령 선생님은 이 책에 담긴 시들을 통해 한층 부드럽고 정제된 영적 고백을 들려주고 있다.

   이 시집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먼저 1장 ‘눈물이 무지개 된다고 하더니만 - 어머니들에게’ 에서는 유년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외로움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을, 2장 ‘혼자 읽는 자서전 - 나에게’ 에서는 시인의 자전적 요소와 지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시들을 담고 있다. 3장 ‘시인의 사계절 - 시인에게’ 에서는 작가가 생각하는 시와 시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계절과 자연의 모습을 통해 노래하고 있으며 4장 ‘내일은 없어도 - 한국인에게’ 에서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며 한국사회에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시를 통해 가르쳐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5장 ‘포도밭에서 일할 때 - 하나님에게’ 부분을 통해 지금까지 닫혀 있던 영성의 문을 열고 들어가 하나님 앞에 겸허한 자세로 남은 인생을 굳건히 살아갈 것을 맹세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몇몇 작품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어미 곰처럼’이란 시를 통해 부모가 자식을 품는 사랑만큼이나 놓아주는 사랑도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반짇고리’라는 시를 통해서는 문명의 미래는 미래학자들이 논하는 어려운 이론과 분석이 아닌 ‘어머니’, ‘모성’과 같은 가치가 담고 있는 감성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또한 ‘메멘토 모리’라는 시에서는 어린 시절 뜻 모르게 흘렸던 눈물 한 방울을 인간의 삶과 죽음의 본능적인 인식의 의미로 읽어내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상의 풍경을 통해 삶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는 ‘세븐일레븐의 저녁시간’, 나뭇잎 하나의 흔들림을 통해 마음과 우주의 의미를 탐색한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글 쓰는 이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대장장이와 사냥꾼, 목수의 모습을 통해 일깨우는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등 보석 같은 시들이 넘쳐난다.

   시라는 것은 한 번 읽어서 감탄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몇 번을 읽으면서 그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평생을 학문과 지식의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이어령 선생님께서 가장 높은 경지인 영성의 길로 발을 내딛으시면서 남긴 이 자취들은 두고두고 다시 읽고 깨우침을 받을만한 훌륭한 멘토 같은 느낌을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