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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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 제목과 홍보 문구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과거 제국주의 시절의 일본이 저지른 마루타 실험이었다. 의학이나 과학이라는 표현을 갖다 붙이기도 혐오스러운 역사지만, 도외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할 당시, 미국이 일본의 마루타 실험에서 얻은 막대한 양의 인체 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거래했기 때문이다. 유용성이 없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과학이나 의학적 데이터를 얻는 과정이 윤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서도 실행될 수 있다는 여지를 이 사건만큼 확실히 입증해 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책은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어두운 본성까지 포함된 에피소드들을 전해준다. 이야기들 중에는 이미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그 내막이 자세히 전해지지는 않은 것들도 있고, 처음 들어본 내용들도 있었다. 이미 있는 재료를 다시 흥미롭게 재구성하는 능력,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하는 저자의 글쓰기 능력이 돋보였다.

이 책은 먼저 과학과 노예제도가 얼마나 밀접하게 얽혀 있는가를 보여준다. 참혹한 노예선의 실상은 여러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해진 바가 있는데, 이 노예제도의 역사에서 적잖은 혜택 혹은 이익을 취한 이들 중에 과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리적인 딜레마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용적인 이유나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의 합리화가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결합하여 빛나는 과학 발전의 이면에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얼마나 불편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 있는지를 상기시켜주었다.

하지만 역서 제목에서처럼 내용이 잔혹하기만 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두 경쟁자 간의 질투심이 폭발하여 여러 소동이 일어나지만 결국 해당 학문의 큰 발전을 이룬 고생물학, 다시 말해 공룡과 관련한 에피소드에서는, 물론 윤리적인 문제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유혈이 낭자한다거나 끔찍한 살인사건 같은 것이 얽혀 있지 않아 이 책에서 일종의 휴게소 역학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 책 원서 제목이기도 한 ‘얼음송곳 외과의’ 에피소드의 경우, 송곳처럼 생긴 수술 도구로 전두엽을 제거하거나 전두엽과 변연계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끊는 방법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 우리 시대의 윤리 기준과 당대의 인식의 차이도 역사를 볼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기준이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 시대는 사실 해결해야 할 과학적, 의학적 문제들이 많기는 하지만, 반면에 지나치게 발전했다는 인상도 준다. 연구자들로서는 선을 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서도 학문적 업적을 이뤄야 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 책은 욕심과 열정도 중요하지만, 이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전망할 줄 아는 혜안, 그리고 절제라는 미덕이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이제는 왜 필수가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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