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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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원래 추상적인 학문이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의문을 추궁하다가 탄생한 것이 철학이다. 물론 학문의 발생은 노예 제도라는 비인간적 토대 위에서 성립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자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인간과 자연을 탐구하는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 인류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철학의 발생 배경을 확인했다면 우리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철학이 사변적인 학문으로 방치될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학문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진석 선생의 저서들은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의 경우 자유로운 신분으로 저자 특유의 사상을 마음껏 펼쳐 놓은 특징이 두드러지기에 철학이 좀 더 실용적이면서도 그 본분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기에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먼저 목적과 목표를 구분함으로써 삶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 것인가, 그림자에 머무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목적은 기능적이고 제한적인 것으로, 목표는 가치와 의미의 문제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교회의 사례를 드는데 매우 와닿았다. 교회가 세워지는 원래 의미는 복음을 전하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데 덕이 되기 위해서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별이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교회가 정도를 넘어 신도 수를 늘리는 데 집중하고 교회를 크게 짓는 일에 몰두하다 갈등하고 사회적으로 지탄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기능적 목표에 빠져 본질을 망각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철학이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우는 봉건사회에서 시민사회로 전환된 혁명을 들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아무 의심 없이 자신의 신분에 순응하며 살 때,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역사의 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앞서 언급한 ‘별’의 역할을 왕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짊어지자는 것이다. 모두 별이 되어 빛날 수 있다는 의식의 전환, 혁명이 세상을 바꾸었다.

저자는 ‘내가 별이 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다른 사람이 뿜는 별빛에 박수만 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나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바로 시민사회이며 민주주의의 올바른 모습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정치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그 이유가 제대로 주인 역할을 하는 시민이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진단한다. 저자는 여기서 성숙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돈은 많은데, 그 많은 돈이 자본으로 바뀌는 것이 아직 부족한 상태’, 그리고 ‘부자는 있는데 그 부자가 아직 자본가로 바뀌지 않은 상태’를 미성숙한 사회 시스템의 예로 들며, 오늘 우리 사회가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참다운 인간됨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사는 일은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는 일”과 같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도 절묘한 비유를 드는데, 대답만 하는 사람과 질문하는 사람으로 나누어, 앞서 언급했던 기능적 존재에 머무는 것과 그 사람 특유의 가치를 드러내는 존재로 승화하는 경우를 설명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내면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인격적 활동을 통해 참다운 인간됨을 실현하는데, 이때 겉으로 나타나는 두드러지는 특징이 바로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고 장애의 단계까지 나아가는 경지라고 한다. 여기서도 교회의 예가 적절히 활용된다.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주차한 차들 때문에 사람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사실 이 불편은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근처 주민들을 위해서 차를 몰고 가지 않거나, 가져오더라도 스스로 더 먼 곳에 주차하고 걸어오는 수고를 감수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 정도다. 그렇게 교회에 나오는 목적과 이유를 실현시키는 과정을 성숙의 한 예로 든다.

저자는 경박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당하며 공공의 책임을 기꺼이 지고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덕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저자는 동양철학과 서양의 하이데거 철학을 연결시키는데,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을 ‘덕’이 활동하는 곳으로 파악한다. 여기서 우리는 ‘덕’이라는 개념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활동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참된 시민의식을 구현하는 진정한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여러 수단으로 ‘문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내용을 설명했다. 최진석 교수도 여기에 동참하는데, 무척 설득력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문화란 ‘무언가를 만들고 제조하고 생산하여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자연적 상태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 다시 말해 항상 무언가를 만들거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그는 참다운 인격적 존재라고 보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탁월한 통찰은 ‘허무’와 ‘무한확장’이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을 통합하는 시도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인생이 매우 허무하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심리적인 현상만이 아니라 우주의 속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허무를 근거로 무한이 성립될 수 있다는 독특한 발상을 보여준다. 사실 이런 역발상이 바로 인간을 인간답게 했고 지금까지 생존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음을 밝힌다.

이 책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근거, 그 사람만의 바탕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고, 기능적인 존재에서 본질을 탐구하는 존재로, 편리함보다 불편을 자초하면서 인격적 성숙을 이루고, 문화적 존재로서 항상 자신과 세계에 대한 변화를 야기함으로써 가치를 입증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진 환경과 형편에 순응하거나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항상 질문해야 한다. 더 나은 상태, 개선책이 없는지 궁금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비루한 현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볼 때, 그런 노력들의 총합, 정수가 어쩌면 철학이라는 형태로 결정화된 건지도 모르겠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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