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 뇌과학과 신경과학이 밝혀낸 생후배선의 비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2월

생명은 특별하다.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면 그 생명은 일종의 설계도를 따라 성장하고 살아가고, 죽음을 맞는다. 그런데 이 설계도가 정말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 설계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진 대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개방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방형 설계도’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좋은 부모를 만나 유전적으로 우수한 형질을 미리 물려받고 태어나면 아무래도 더 나은 출발선에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가 다 그런 것이 아니란 게 또 인생의 묘미다. 날 때부터 인생 최적화를 갖추고 태어난 사람 같아도 살다 보면 최악의 과정과 결론으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고, 반대로 도저히 희망이 없어 보이는 환경에서도 빛나는 삶의 가치를 구현해내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은 우리의 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뇌는 내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을 통해서도 변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뇌는 내적 동력뿐만 아니라 외부 요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형태를 만들며 회로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뇌는 바깥 상황에 맞춰 내부의 회로를 최적화하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뇌과학과 관련하여 일반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용어가 바로 ‘뇌 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쉽게 말해 ‘뇌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며, 이는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이 흥미로운 뇌 가소성을 넘어 또 다른 개념을 제시한다. 이른바 ‘생후배선’(livewired)이다. 이것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라는 기존의 개념을 넘어 ‘라이프웨어’(lifeware)라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 개념이 더 적절한 이유는, ‘뇌 가소성’이 변화 이후 고정되는 느낌의 의미를 가진 반면, ‘생후배선’은 계속적인 변화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나’라는 세계, ‘나’라는 생명을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알려준다. 우리의 뇌 속 세포 하나하나가 연결되고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인식과 세계를 만들어내듯이, 우리의 삶 자체도 독립적으로 성립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전부’를 가능하게 하는 나머지 반쪽을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이라고 표현한다. 이 경험은 수많은 세포와 연결점의 상호작용의 흥미로움, 상호작용의 효율성이라는 전략과 맞물리며 각 인간마다 고유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인간의 대표적인 특징은, 인간이 가능성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는 보통의 다른 동물들이 ‘완성형’으로 설계되어, 태어나 본능대로 살다 죽는 것과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며, 때로는 환경을 개척하고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시스템을 품고 있는 존재다. 더욱 주목되는 점은, 이것이 외부의 변화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역량도 증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대세 생물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은 가능성의 존재, 태어나는 순간부터 최적화하는 것이 운명인 생명체다. 이 책은 또한 ‘사회성’이 왜 인간의 또 다른 핵심 특징 중 하나인지를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