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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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생각이 났다. 혼자서 수능 공부를 할 때였다. EBS로 수능을 준비할 때 한 회당 수업 시간이 50분이 좀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수업을 듣다 보니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것 같았다. 마침 플레이어에 배속 기능이 있어 조금 빠르게 돌려보았다. 강사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를 기준으로 최대한 빨리 해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간을 단축하며 만든 여분의 시간을 알차게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결이 다를지는 몰라도 이렇게 시간을 아끼거나 단축하는 행위가 시대의 특징처럼 느껴진다. 어느샌가 ‘가성비’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본적 사고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든 돈이든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싶다는 것, 여기에서 핵심은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하는 모든 것이 ‘소비’의 관점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일찌감치 “작품 감상에서 콘텐츠 소비로” 예술 작품이나 대중적인 창작물을 대하는 대중의 속성이 변화된 것을 체감하고 있다.

대중의 성향이 이렇게 바뀌니 콘텐츠 제작자들도 거기에 맞춰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여 작품을 생산한다. ‘빨리 감기’로 봐도 좋고 ‘건너뛰기’로 봐도 무리 없는 작품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영상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조금만 길어져도 읽지 않는 인터넷 뉴스 기사들, 일상적인 글도 약간의 생각을 요구하면 외면당한다. ‘세 줄 요약’이라는 현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진 것은 유튜브 시대의 도래가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초반에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면 집중하지 못하고 건너뛰거나 아예 다른 영상으로 넘어가버린다. 크리에이터들이나 블로거들의 콘텐츠 단골 포맷으로 줄거리 요약이나 핵심만 간결히 전달하는 것이 있을 정도다. 요즘에는 아예 이것을 대표 서비스로 내세우며 광고하는 업체도 볼 수 있다.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내러티브는 없고 단편적인 흥밋거리나 쾌락, 자극, 순간적인 쾌감 같은 것만 넘쳐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경향 속에서 자신들의 선택이 자기 삶을 온전히 향유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처럼 느끼는 이상한 감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돈을 벌어들이기 위한 상술에 의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그것이 능동적인 선택인 양 착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쯤 되면 개성 따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개성을 말하고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소비가 미덕인 것처럼 속여야 한다. 이것이 극에 달하면 소비가 본질이 아닌 영역까지 침범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 팔고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의 자리까지 경제논리가 장악하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모든 것을 비용의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폐단이 가성비 사회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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