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유럽사를 배울 때 자주 들으면서도 그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신성로마제국’이란 표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 점이 좋았다. ‘제국’은 “여러 민족과 국가를 통합한 군주국”을, ‘신성’이란 “로마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며 가톨릭의 맹주임을 보증”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다시 말해 “가톨릭의 권위와 고대 로마제국의 계승을 결합한 상징적 호칭”이라는 것이다. 직접적인 부와 권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당대에 “절대적인 심리적 위엄과 권위”는 엄연히 존재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특정한 누군가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꺼렸던 선제후들은 교황의 재촉에 마지못해 자기들이 보기에 가장 무능한 사람을 고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라는 인물이었다.
선제후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루돌프는 사실 야심이 있었고, 그만큼의 저력을 감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대 최고의 유력자였던 보헤미안의 왕 오타카르 2세를 물리치고 황제의 자리를 지켜낸다. 루돌프 1세의 활약으로 합스부르크가는 앞으로 650년 동안 누릴 영광의 걸음을 순조롭게 내딛을 것으로 보였지만, 왕의 계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50년 뒤의 일이 된다. 그만큼 치열했던 중세의 권력 다툼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