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나 - 한없이 다정한 야생에 관하여
캐서린 레이븐 지음, 노승영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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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에서도 존재의 본질과 그 가치를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지고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초반에 저자는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으며, “그 대가로 과학적 방법이야말로 앎의 토대이며 야생 여우에겐 인격이 없다고 배웠다”고 말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두 문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일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어느 날 개들에게 쫓기다가 저자의 집에 피신하면서 시작된 야생 여우의 정기적인 방문,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해진 오후 4시 15분의 만남, 그리고 저자는 이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고 여우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한다. 여우에게 책을 읽어주고 말을 건넨 후 이어지는 15초의 응시 혹은 침묵, 그것은 여우의 생각을 들어보려는 시간으로 정의된다.

책 속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밭쥐, 말코손바닥사슴, 수리, 까치, 여우, 족제비 등 저자가 생활하는 오지 거처 주변에 일상의 풍경처럼 자리 잡은 존재들이다. 그들 중에는 저자가 이름을 지어준 것들도 꽤 많다. 그들의 이름은 테니스공, 회오리손, 찢긴꼬리, BB 등 일반적인 감각은 아니다.

저자는 스스로의 삶을 “논리에 구애받지 않는 인생”으로 설명한다. 어린 시절부터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일반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감각과는 또 다른 정서를 저자에게 심어주었다. 그래서 문장 곳곳에서 그들과 다른 자기 존재의 특징을 농담처럼 설명하는 부분들이 눈에 띈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는 개인의 형편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와 여우의 소통은 직접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저자의 독백이나 다름없는 말하기 방식, 다시 말해 ‘보여주며 말하기’라는 방식이 어느새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형태로 전환되는 흐름이었다. 물론 이것은 저자의 감각이며, 타인이 그것을 바라봤더라면 상당히 기묘한 광경이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소통을 자의식을 가라앉힘으로써 내성적인 아이들이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육방식과 비슷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야생 여우의 수명은 걸어도 5년 내외라고 한다. 인간에 비하면 여우의 생은 그만큼 압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우가 저자와 매일 일정한 시간을 함께 하기로 한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여우에게 있어 저자와 보내는 굉장히 중요했거나 적어도 여우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자신의 생에서 매우 많은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종 소설 ‘어린 왕자’와 ‘모비 딕’의 문장들을 인용하며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를 드러낸다. 동물에 대한 인식이 최근 들어 많이 바뀌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생태계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되고 있다.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공동체적 가치로 전환하는 움직임이다. 아직까지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인용된 소설들의 문장들은 이미 이와 같은 미래적 가치를 포함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저자 역시 그들과 공유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야생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신비한 이야기이지만 점점 현실성을 띠게 될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 네이버 「디지털감성 e북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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