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여성 철학사
리베카 벅스턴.리사 화이팅 외 지음, 박일귀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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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이후 모든 서양 철학의 역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는 화이트헤드의 말은 예전부터 종종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서두만 읽어보아도 그들의 각주가 아무리 뛰어나고 어렵다 한들 중요한 한 가지 점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저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플라톤이 그의 저서 ‘국가’에서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00년의 서구 철학사에 엄청나게 치명적인 공백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인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애초에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플라톤을 근거로 여성의 권리나 의무를 주장하지 않은 것일까? 여러분은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우선 이 하나만으로도 중요한 가치 하나를 독자들에게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성 중심의 권력 사회가 역사를 이끌었던 지난 날 속에서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오롯이 가지고 활동할 수 있었던 여성이 극히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그래서 저자들은 감춰진 역사 속 여성 철학자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철학자의 정의를 넓게 적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철학 행위 자체가 특정 틀이나 규범에 얽매일 이유가 없으니 이런 접근 방법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철학뿐 아니라 이런 관점의 전환은 언제나 유익하다.

소크라테스가 아름다움의 본질에 관해 디오티마라는 여성과 토론했다는 장면이 ‘향연’에 나온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 디오티마를 가상의 인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실존 인물이든 아니든, 여성이 어엿한 철학 토론의 주체로 여겨졌다는 사실 아닐까? 플라톤도 그렇고 소크라테스도 할 일 없이 여성을 끌어들였을리 없지 않은가.

한편 수학사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거론되는 4세기 경의 히파티아라는 인물도 주목해야 한다. 그녀는 비기독교인이면서도 기독교인들과의 깊이 있는 교류를 했고, 동시에 유용한 지식을 전달하는 입장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기독교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당대 권력자들의 정치적 다툼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도들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음으로써 후대에 큰 안타까움을 주었다.

헤리엇 테일러 밀은 존 스튜어트 밀의 아내이기도 했는데, 남편의 업적에 오랜 시간 가려져 있던 인물이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사회적 성을 의미하는 ‘젠더’라는 용어는 1950년대에 나왔지만, 이미 그 이전, 그러니까 19세기 중후반에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의 개념이 테일러 밀에 의해 구분되었다는 사실이다.

20명의 저자들이 20명의 여성 철학자를 소개하는 구성인 이 책은 자체적으로도 큰 가치와 의미가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철학사에서 여성들은 많은 외면을 받아왔지만, 그중에서도 아시아나 아프리카계 여성들은 더 소외된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시아인으로는 고대 중국에서 한 명, 인도인 한 명, 아프리카계로는 두 명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발상의 전환 혹은 다른 관점으로의 역사적 접근이라 하더라도 우선은 서구를 중심으로 한 관점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학문적 풍토가 언제쯤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게 될까? 이런 질문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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