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 - 이어령 산문집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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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뜻하는 해(海)라는 한자에는 어머니(母)가 들어 있고, 어머니를 뜻하는 프랑스어 ‘me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다고 한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존재감, 어머니의 사랑의 깊이, 큰 자비와 긍휼, 은혜가 바다라는 이미지로 은유되어 인류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느낌을 준다. 애초에 생명의 근원을 바다로 보는 과학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바다는 모든 보는 이에게 그 광대함 속의 포용성을 통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룩하고 경건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것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 혹은 존재가 어머니라는 존재 안에 구현되어 있는 것 같다.

이어령 선생에게 어머니란 존재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에 응축되어 있다. ‘현존하는 거대한 부재’, 즉 이미 오랜 옛날, 어린 이어령 선생을 남겨 두고 돌아가신 분이지만, 평생에 걸쳐 이어령 문학의 근원으로 계속 살아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유형과 무형,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뛰어넘는 실존으로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근원적인 에너지로 현실에서는 문학이라는 형태로 이어령 선생을 통해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낙타의 혹, 모든 식물들과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선인장의 내부, 사람의 몸 속 적혈구를 통해 내면의 풍요를 상상하고 문장으로 전개하는 이어령 선생님의 발상에 감탄하게 된다. 그 내면의 풍요는 글 쓰는 사람의 심장이 되고 재창조의 재료가 된다. 흔히 사람을 소우주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이것을 다시 내면의 우주-흐르는 강-내리는 비라는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발상으로 치환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분리와 대립, 투쟁이라는 갈등적 요소를 글로 풀어낸 젊은 시절의 문학을 ‘프로메테우스의 언어’로,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는 전령사로서의 언어를 받아들인 30대 시절의 문학을 ‘헤르메스의 언어’로 규정한 이어령 선생은, 이 모든 찢김과 넘나듦의 언어들을 결합의 언어인 ‘오르페우스의 언어’로 마무리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단 한 번의 과정이 아닌, 평생을 거쳐 반복하게 될 운명의 원리임을 엿보게 한다. 이 순환 속에서 인간은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것이고, 어쩌면 죽음에서 그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어령 선생의 삶이, 그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모범은 아니었을까?

다이아몬드와 진주의 속성을 비교하며 진정한 삶의 가치를 비교한 글도 눈에 띈다. 둘 다 귀한 보석에 속하지만 그것이 형성되는 과정의 스토리들을 비교해보면, 진주에서 오히려 인생의 값진 교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어령 선생의 글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던 두 차원의 이야기, 예를 들면 진주와 인생은 그냥 봐서는 바로 연결점을 찾을 수 없지만, 진주가 형성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과 인생에서 경험하는 다사다난이라는 각각의 서사가 덧입혀지고 연결되면, 이 둘은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물음과 답변이라는 인문학적 통찰로 귀결되는 식이다.

이어령 선생의 글은 대체로 앞서 언급한 문체적 특징을 중심으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산문집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는 특히 좀 더 아련하고 그리운 것에 초점을 맞추어 다양한 관념 혹은 개념들을 참신하게 풀어낸 책으로 다가왔다.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나 사유의 깊이와 폭은 일반 독자들이 간단하게 쫓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읽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환기를 경험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번 더 읽어보면 내면은 한층 더 풍성해질 것이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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