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
주디스 그리셀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12월

약물 중독의 가장 치명적인 점은 바로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계속 발버둥 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이다. 요즘 학습과 관련해서 잘 알려져 있는 개념인 ‘뇌 가소성’이 중독을 통해 느끼는 만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쓰면 쓸수록 뇌의 특정 기능이 죽을 때까지 발달할 수 있는 것처럼, 약물에 길들여진 뇌는 계속해서 자극을 추구하게 만들기 때문에 결국 그 끝은 파멸인 것이다.

약물 중독의 또 다른 특징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해결될 가능성도 없는데 어떤 문제에 대해서 그저 낙관적으로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번에 출간된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의 저자 주디스 그리셀 교수는 맨정신의 자각을 두려워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있어 음주는 마음의 평안을, 마약은 순수한 즐거움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날것 그대로의 지난 삶을 들려주는 저자의 담담한 고백이 처음에는 매우 놀랍고 불편했지만, 읽을수록 중독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진심으로 다가와 읽을수록 거북함은 줄어들었다.

저자는 상당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약물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생의 탈바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벌써 몇 번은 죽었을지도 모르는 그 처참한 시간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 저자의 타고난 기질은 극단적으로 약물을 추종하거나, 아니면 다른 어떤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 끝까지 몰두하게 하는 ‘모 아니면 도’ 식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운 좋게 작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특정 물질에 중독되는 이유가 뇌의 신경학적 기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뇌의 척수를 일컫는 중추신경계는 구조는 매우 복잡하지만 주로 하는 일은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하는 두 가지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본 기능이 약물 중독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한다. 환경과 상호 작용, 외부 조건에 대한 반응이라는 뇌의 특징과 약물의 자극이 주는 쾌락의 만남은 인간의 진화의 흐름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파괴력을 보여준다.

중독에 특별히 약한 유전적인 요인이 있는지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가장 일반적으로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이미 알려진 요인들을 나열한다면 먼저 가족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유년기의 학대나 방치, 긍정적인 롤 모델이 없는 환경, 기회가 부족한 삶 같은 예들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한 마디로 스트레스라고 정의할 수 있는 중독의 결정적인 요인도 사람에 따라 각각의 변수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니 원인도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다.

약물의 사용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중독의 위험성과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이 책에서는, 당연하게도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인생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와 확신, 스스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 느낌, 건강한 타인과의 연대를 들고 있다. 결국 중독의 문제는 우리가 부적절한 방법으로 마음의 안정, 즐거움, 자유를 좇다가 빠지게 되는 함정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또는 함정 자체를 사회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의 시행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