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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이후의 삶 - 지속가능한 삶과 환경을 위한 '대안적 소비'에 관하여
케이트 소퍼 지음, 안종희 옮김 / 한문화 / 2021년 11월
평점 :
신간 『성장 이후의 삶』은 예전에 녹색평론사에서 출간되었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책을 떠오르게 한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경제 분야에서 ‘성장’이라는 키워드, 즉 성장 중심의 소비주의를 지향하는 자본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장이 수없이 나왔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것이 뭔가 잘못된 것을 말하는 것처럼, 가능하지 않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매체에서 이전 대비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기준으로 경제를 평가한다. 심지어 성장하지 못한 상황조차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표현으로 절대 경제에서 번영이란 개념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다.
마치 청교도적인 집착으로 소비를 줄이고 쾌락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의 지나친 노동 중심적이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생산과 소비의 방식이,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풍요가 반드시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왜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도 양보하고 양보해서 겨우 쥐어짜낸 개념에 불과하다. 이미 발전이란 명제 속에 여전히 자연에 대한 착취와 환경 파괴가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대안적 쾌락주의’라는 명제를 꺼내놓는데, 이는 전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갈 길이 순탄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유한한 지구 자원과 환경 조건에서 끝없는 진보와 번영, 성장을 지향하는 지금의 경제 체제가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논증하고 있다. 이 책은 먼저 진보와 번영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 다음, 노동 해방을 적극적으로 사고했던 초기 전통을 되살려 덜 탐욕적인 생활방식에 따른 즐거움을 주장하는 대안적 쾌락주의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즉 노동의 감소가 자연과 우리 모두를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 다시 말해 스트레스를 줄이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노동의 감소라는 주장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근대 이전의 사회관계 및 제한적인 즐거움을 떠올리면서 수공예 장인들의 노동방식을 끌어와 소비주의 이후의 새롭고 전위적인 정치적 상상력의 한 요소로 활용할 수 있음을 제안한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느린 삶, 반소비주의적 추세 및 네트워크를 보다 영향력 있는 정치적 운동으로 증폭시킬 수 있는 문화적 힘으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벌써부터 아득한 느낌이다. 새로운 노동형태의 제안은 정치적 기반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인간 중심의 철학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경제 시스템은 이미 임계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지구 곳곳에서 재앙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전 지구적인 재앙의 공감대는 미미한 수준이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지구를 거덜내는 생산과 소비 시스템은 포기할 수 없는 꿀단지와도 같다. 우리는 몇 년 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강력한 지진을 단시간에 몇 차례 경험하면서 자연 재앙에 대한 상당한 공포심을 겪은 바 있다. 착취적이고 소비지향적 경제 시스템이 몰고 올 위기가 꼭 이와 닮은 것 같다. ‘블랙 스완’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돌려야 한다.
*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