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비행
헬렌 맥도널드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자연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그리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말한다다른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세상 모든 생명과 사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인식하려는 노력이다영원할 것만 같았던 친밀한 느낌의 자연의 풍경과 그것을 꾸며주는 계절의 변화는 부쩍 그 양상이 달라졌다익숙했던 것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과거의 추억이 되었으며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에 깊은 회한이 들어선다전반적인 책의 분위기는 이렇게 진행되며 자연과 동물뿐만 아니라 저자의 개인적인 삶의 궤적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교훈과 진리 등이 다채롭게 엮여 있는 책이다.

 

둥지를 주제로 한 글에서는 새로운 세계로 나오기 위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새알 속 어린 생명의 특별한 힘을 통해 인간의 상처외로움과 아픔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두 날개로 힘껏 날아오르는 어린 알 속 생명의 미래처럼 저자 자신의 삶도 비슷한 경로를 따라왔음을 상기하며 눈물을 흘린다인간과 야생동물 사이의 갈등동물을 단순한 객체가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명체일 뿐만 아니라 야생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특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까지 거론한다앵무새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 짧지 않은 순간아름다운 영원을 품은 듯 펼쳐진다.

 

야외 도감을 주제로 한 글에서는 간략한 자 도감의 변천사와 함께 아울러 오늘날까지 발전해온 탐조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자연에서 새를 식별하며 경험하는 지적인 즐거움이 점차 자연친화적이고 윤리적인 수준으로 변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인간의 관점에서 단순하게 비춰지던 자연이 비로소 복잡하고 다양하면서도 아름답고 놀라운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지식과 경험의 매개체로서의 야외 도감의 역할을 흥미롭게 설명한다과거에 깃든 다양성존재의 진정한 힘... 이것이 파괴되는 시대에 인간의 미학적 조경과 자연의 윤리적 풍경을 일치시키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 중 하나다.




 



고층 건물을 주제로 한 글에서는 창공그러니까 우리 머리 위의우리가 올려다보는 확 트인 공간도 텅 비어 있는 곳이 아닌 다양한 생명체로 가득한 광대한 서식지임을 알려준다오히려 고층 건물이 광대한 하늘에서 바다의 심해 잠수정 같은 역할을 해 보통의 인간은 접근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게 해주고 자연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전초 기지 혹은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자연에 대한 도시 문명의 역설을 느낄 수 있다또 생태학과 창공의 관계를 연구하는 항공 생태학이라는 과학 분야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밤하늘을 비추는 고층 건물의 강렬한 조명은 새들로 하여금 이동 경로를 이탈하게 하거나 어지럽게 하여 생명을 잃게 할 위험이 높다이밖에 도시의 건물이 가진 특성으로 인해 뉴욕에서만 한 해에 1만 마리 이상의 새들이 죽는다고 한다.

 

철새인 찌르레기가 무리를 지어 수많은 개체가 마치 하나의 개체인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이다생존을 위한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또 저자는 철새의 이동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로부터 유럽의 대규모 난민 이동과 그것을 막으려는 국가들의 통제 정책과 사람들의 인식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고민한다.

 

여왕개미는 한 번의 혼인 비행즉 짝짓기를 통해 받은 정자를 저장해서 이후 30년 동안 이용하며 산란한다고 한다개미들과 포식자들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축제가 벌어지는 창공을 보며 세상에 작동하는 섭리의 증거를 본다그 섭리는 사람을 겸허하게 한다저자의 만성 증상인 편두통과 지구 생태계의 전반적 파괴 현상을 연결시켜 거대한 문제에 바로 대응할 수 없도록 전략적으로 설계된 인간 뇌혹은 진화심리학적 작용에 대해 사색한다이윽고 저자는 종말적 현상과 전망에 반응하는 현대의 묵시적 사고방식은 모든 게 끝이라는 절망이 아닌우리에게 다시 되돌릴 만한 충분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라는 통찰에 이른다.

 

겉보기에 숲은 나무와 나뭇잎흙으로 이루어진 공간 같지만 버섯의 존재를 깊이 알게 되면 숲 아래에서 거대한 생명 순환의 균근 네트워크를 이루며 모든 숲속 살아 있는 것들의 기본적인 젖줄 역할을 하는 균류의 광대함 신비함을 확인할 수 있다버섯은 숨겨진 생명의 신비가 깃든 존재인 것이다겨울 숲은 여름 숲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능성과 잠재성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시간과 역사에 관해 사색하는 것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는 저자만의 독특한 성찰은독자로 하여금 자연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혹은 태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일식 때 태양과 달의 가장자리가 처음 맞닿는작은 어둠으로 가려지기 시작하는 첫 순간을 퍼스트 컨택트완전히 가려지는 두 번째 접점을 세컨드 컨택트라고 부른다는 걸 처음 알았다일식이라는 길지 않은 순간을 통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죽음과 부활의 메타포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풍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천문생물학자이자 행성지리학자인 나탈리 캐브롤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지구 너머 행성에서 생명을 찾는 과학적 탐색과 삶의 의미를 찾는 영적 탐색이 어떻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지 그 심오한 의미를 탐색한다과학과 영성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과 해답은 이 책의 중심 주제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과 변화의 풍경을 바탕으로 풀어내는 저자의 글들은 하나하나가 거듭 읽어보고 싶을 만큼 수려하다과학과 인문학적 감성의 균형과 조화가 무엇인지 이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또한 이 책은 무엇보다 읽는 동안 번역이 무척 잘되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번역문인데도 문장을 읽는 데 전혀 부대낌이 없으며 마치 유려한 한국어 산문을 읽는 것처럼 편안했다원문의 느낌을 한국어로 살리는 저자의 실력이 다른 번역서들까지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