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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평점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미국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20년 9월 18일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미국 법조계의 아이콘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진보 성향이었으며, 시민들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일생 헌신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녀는 우리가 지금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젠더’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의 낙태를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난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긴즈버그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는지 확인하게 하는, 재판에서 제출한 그녀의 대표적인 의견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다수의견이거나 소수의견, 반대의견 등이 선별되어 있다. 법조인이 되기 전에 경험했던 성별에 따른 차별에 굴하지 않고 남편과 함께 고군분투하며 뛰어난 성적으로 법대를 졸업한 긴즈버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교수의 도움으로 재판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그녀는 이후 교수로서, 또 ACLU(미국시민자유연맹)의 조력자로 활약했다. 이후 판사로 임명되고, 마침내 대법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이 책에 소개된 그녀의 의견문들을 보면 수정헌법 14조 평등 보호 조항을 근거로 자유와 평등의 의미와 범위를 여성은 물론이고 모든 시민들에게 확대 적용시키며 법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원래 주어졌어야 할 권리와 의무, 혜택을 되찾게 해주기 위한 노력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라는, 다시 말해 낙태의 합법화라는 사안은 사실 여성에게 낙태하는 권리를 준다는 의미보다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사회적, 국가적이라는 외부적 제약과 뿌리 깊은 편견이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애써온 긴즈버그이지만, 그것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약자, 법적 사각지대에 있는 시민들을 평등과 자유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디딤돌로 삼은 것이라는 알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오히려 여성에게 더 이익이 되는 내용으로 보이는 조항도 결국 남녀를 차별하는 인식을 갖게 하는 교묘한 장치이기 때문에 부정하는 긴즈버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추구했던 것은 능력과 자격 이외의, 선천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차별하는 구시대적 인식과 관습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읽었던 여성 인권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단순한 남녀 대립과 갈등, 혐오, 복수심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저급한 페미니즘 논란의 현주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경제 체제에서 그것을 모든 시민이 온전히 공평하고 정당하게 누리고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런 분들의 행적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공감해본 적이 있을까? 이 책의 내용은 적어도 진정한 성 평등과 정상적인 성인지 감수성, 그리고 차별 없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 한국 사회에 보편화되기 위해 한국의 페미니즘 및 진보 성향의 운동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네이버 「리뷰어스 클럽」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